1분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밑도는 2.7% 수준에 그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본(5.3%)의 회복세나 중국(9.5%)의 약진과 비교되면서 “너무하지 않느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원화절상, 국제유가 상승, 위안화 평가절상 등의 대외적인 불안요소 때문에 ‘낙관은 금물’이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임·단협 시기를 맞아 노·사·정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된다면 한국경제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노동계가 비리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부와 재계는 근로대중으로부터 신뢰받고 있지 못해 노사관계에 불안요소가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글로벌(Global·세계화) 경쟁시대에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주목, 본지는 5회에 걸쳐 노·사·정 경제3주체가 당면한 노사관계 현안을 살펴보고,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노사관계를 21세기형 ‘상생(相生)의 노사관계’로 전환·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 GM에 쇠락의 기운이 엄습하고 있다. 1928년 이래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 왔지만, 최근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5일(현지시각)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GM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일명 정크본드)인 ‘BB’로 두 단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올 1분기에 13년 만의 최고치인 11억 달러 규모로 분기 적자를 낸 탓이다.
반면 GM의 강력한 라이벌인 일본 도요타는 117억1000만 달러 규모 당기순이익(2004년 4월~2005년 3월)을 낸 데 힘입어, 업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2006년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22% 증가한 850만대로 늘려 세계시장 점유율 15%를 차지, 같은 해 840만대로 예상되는 GM을 제치겠다는 방안이 그것이다.
도요타와 GM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노사관계 측면에서 보면 종업원을 대하는 두 회사의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도요타 경영진에게는 ‘종업원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최고의 품질이 나온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체질화돼 있다. 반면 GM 경영진은 종업원을 비용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경영난에 봉착하면 인원감축 카드부터 빼들곤 했다.
다수의 경영컨설턴트들은 GM의 부진을 ‘복지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 5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직원은 19만1000명에 불과한 데 ‘복지혜택 해당자’는 이들을 포함해 퇴직자, 부양가족 등을 합쳐 총 1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1대당 1500달러가 복지비용에 쓰이고, 릭 왜고너 회장이 “최우선 해결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복지비용은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GM의 쇠락은 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데 따른 복지비용 증가는 GM에만 해당하는 난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GM의 1인당 인건비는 6만4100달러(2003년말 연봉 기준)로, 도요타의 1인당 인건비 10만4000달러보다 40%나 밑돌았다.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면 도요타의 1인당 인건비가 7만7000달러로 떨어져 그 차이가 줄어들지만, 1만3000달러나 적은 쪽은 GM이다.
또 지난해 야심차게 내놨던 폰티악 G6는 3000달러(300만원)를 깎아준다고 해도 팔리지 않고 있다. “고비용구조로 인해 차 값이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판매가 부진해 적자가 났다”고 해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사례다.
반면 도요타가 내놓은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는 품귀현상으로 인해 중고차 값이 새 차 가격(2만1939달러)보다 1000~3000달러 더 나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새 차를 사고 싶어도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웃돈을 얹어서 중고차를 구입하는 지경이다.
무엇보다 GM이 생산한 자동차는 품질 면에서 도요타에 뒤쳐진다. 지난 2000년부터 4년간 GM시보레에서 생산된 중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블레이저’의 운전자 사망률은 도요타의 포러너(4Runner) 등 중형 SUV보다 치사율이 25배가량 높았다.
‘품질 높이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종업원들로부터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 GM공장을 경험했던 이들은 종업원들에게서 주인의식이나 애사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한다. 사석에서 만난 공장 직원들 가운데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해 있는 것에 대해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회사가 망해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내도 상급자들이 책임소재를 두려워해 묵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도요타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현장 관리자는 조립라인 노동자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자신이 일했던 현장의 노하우를 노동자에게 전수해 주면서 가족 같은 신뢰관계를 쌓아간다. 또 현장의 건의사항이 최고 경영진에게 즉각 전달될 수 있는 보고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영진과 현장 관리자, 노동자 모두가 도요타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자각한다.
도요타는 잉여인력이 발생해도 해고란 없다.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종업원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경영자는 종업원을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경영철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도요타 경영진들의 이런 원칙은 지난 1950년 노사분규를 끝으로 올해로 55년째 무분규를 지켜낸 원동력이었다.
반면 GM은 경영난에 봉착하면 어김없이 인원감축을 추진했다. 지난 1992년 한해 적자가 235억 달러에 이르자 전체 인력의 30%, 6만4000여명을 줄였다. 3년이 못돼 경영이 정상화됐지만 시장점유율은 35%에서 31%대로 오히려 떨어졌다. 그러자 회사는 1998년 8월부터 22만4000여 직원 중 5만여명을 다시 정리해고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반발을 거듭, 1996년 이래 3년 동안 무려 13번이나 파업을 벌였다. 특히 1998년 파업 때는 직원 18만여명이 일손을 놔버려 손실이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번에도 GM은 사무직원의 28%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인원감축 위주의 GM식 구조조정이 단기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변화하는 시장과 소비자 욕구를 이해하지 못해 고객의 외면을 초래해 놓고, 직원들을 자른다고 근본적인 치유가 되겠냐”는 반문인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을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한 GM 경영진들은 당장 어려운 고비를 넘기자는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지 내쫓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업원들에게서 애사심을 갖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히 소비자가 만족하는 품질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가 정착돼 악순환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도요타 조 후지오 사장이 “정리해고를 통해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려다 회사가 통째로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요타와 GM이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한 적이 있다. 1984년 두 회사가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합작회사 누미(NUMMI)를 설립하고 디자인과 생산은 공동으로, 판매는 독자적으로 한 경우였다.
도요타 브랜드가 붙은 차가 GM 브랜드의 차보다 300달러나 더 비쌌지만, 소비자들은 도요타 차를 선호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똑같은 자동차였는데도, GM보다 도요타라는 브랜드를 더 신뢰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1980년대 후반 도요타 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자,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쓰리 업체들이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Way)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도요타 웨이’가 도요타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때로는 자생적으로, 때로는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사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핵심 이념을 등한시한 것이 벤치마킹에 실패한 이유였다.
도요타의 장점을 배우고 GM의 단점을 극복하려면 겉으로만 흉내 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노·사가 ‘종업원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신뢰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승부수를 던질 때”라는 여론이 노동계 안팎에서 조성되고 있다.
시간은 탄력적이다
기업 수명, 길 수도 때로는 짧을 수도
정보통신산업의 과제는 ‘좀 더 빨리’인 반면, 생명공학산업의 과제는 ‘시간을 늦추는 것(생명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 길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분명 탄력적이다.
기업 수명도, 기업을 꾸리고 있는 구성원(경영자·중간관리자·현장 근로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일하는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뜻과 마음과 힘을 합치면 수명이 길어지고, 정반대라면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다.
20세기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경영서적의 하나로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 1982년 출간)’이 꼽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선정된 초우량기업중 3분의 2가 5년 만에 간판을 내린 까닭에, 피터스는 “초우량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강변해야 했다.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지난 세기 동안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1935년 90살에서 1955년 45살, 1975년 30살, 1995년 22살을 거쳐 올해엔 평균 15살 수준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창업과 수성의 경영학’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30년간 생존율이 16%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했다. 예를 들어 지난 1965년 당시 10대 기업중 1995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기업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기업을 통해 제공되는 ‘일자리’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영위시키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쇠락해간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고, 생활기반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수명과 고용안정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려면 팽창속도가 임계속도(臨界速度, 어떤 물리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계점의 속도)보다 커야 하는 것처럼, 기업의 수명을 무한대에 접근시키려면 구성원 모두의 변화 의지가 현실에 안주하려는 정서보다 당연히 커야 하는 것이다.
/이강연 기자 lkyym@naeil.com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임·단협 시기를 맞아 노·사·정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된다면 한국경제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노동계가 비리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부와 재계는 근로대중으로부터 신뢰받고 있지 못해 노사관계에 불안요소가 유령처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글로벌(Global·세계화) 경쟁시대에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주목, 본지는 5회에 걸쳐 노·사·정 경제3주체가 당면한 노사관계 현안을 살펴보고,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노사관계를 21세기형 ‘상생(相生)의 노사관계’로 전환·정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 GM에 쇠락의 기운이 엄습하고 있다. 1928년 이래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 왔지만, 최근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5일(현지시각)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GM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일명 정크본드)인 ‘BB’로 두 단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올 1분기에 13년 만의 최고치인 11억 달러 규모로 분기 적자를 낸 탓이다.
반면 GM의 강력한 라이벌인 일본 도요타는 117억1000만 달러 규모 당기순이익(2004년 4월~2005년 3월)을 낸 데 힘입어, 업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2006년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22% 증가한 850만대로 늘려 세계시장 점유율 15%를 차지, 같은 해 840만대로 예상되는 GM을 제치겠다는 방안이 그것이다.
도요타와 GM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노사관계 측면에서 보면 종업원을 대하는 두 회사의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도요타 경영진에게는 ‘종업원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최고의 품질이 나온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체질화돼 있다. 반면 GM 경영진은 종업원을 비용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경영난에 봉착하면 인원감축 카드부터 빼들곤 했다.
다수의 경영컨설턴트들은 GM의 부진을 ‘복지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 5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직원은 19만1000명에 불과한 데 ‘복지혜택 해당자’는 이들을 포함해 퇴직자, 부양가족 등을 합쳐 총 1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1대당 1500달러가 복지비용에 쓰이고, 릭 왜고너 회장이 “최우선 해결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복지비용은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GM의 쇠락은 이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데 따른 복지비용 증가는 GM에만 해당하는 난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GM의 1인당 인건비는 6만4100달러(2003년말 연봉 기준)로, 도요타의 1인당 인건비 10만4000달러보다 40%나 밑돌았다.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면 도요타의 1인당 인건비가 7만7000달러로 떨어져 그 차이가 줄어들지만, 1만3000달러나 적은 쪽은 GM이다.
또 지난해 야심차게 내놨던 폰티악 G6는 3000달러(300만원)를 깎아준다고 해도 팔리지 않고 있다. “고비용구조로 인해 차 값이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판매가 부진해 적자가 났다”고 해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사례다.
반면 도요타가 내놓은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는 품귀현상으로 인해 중고차 값이 새 차 가격(2만1939달러)보다 1000~3000달러 더 나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새 차를 사고 싶어도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웃돈을 얹어서 중고차를 구입하는 지경이다.
무엇보다 GM이 생산한 자동차는 품질 면에서 도요타에 뒤쳐진다. 지난 2000년부터 4년간 GM시보레에서 생산된 중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블레이저’의 운전자 사망률은 도요타의 포러너(4Runner) 등 중형 SUV보다 치사율이 25배가량 높았다.
‘품질 높이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종업원들로부터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 GM공장을 경험했던 이들은 종업원들에게서 주인의식이나 애사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한다. 사석에서 만난 공장 직원들 가운데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해 있는 것에 대해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회사가 망해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내도 상급자들이 책임소재를 두려워해 묵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도요타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현장 관리자는 조립라인 노동자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자신이 일했던 현장의 노하우를 노동자에게 전수해 주면서 가족 같은 신뢰관계를 쌓아간다. 또 현장의 건의사항이 최고 경영진에게 즉각 전달될 수 있는 보고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영진과 현장 관리자, 노동자 모두가 도요타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자각한다.
도요타는 잉여인력이 발생해도 해고란 없다.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종업원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경영자는 종업원을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경영철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도요타 경영진들의 이런 원칙은 지난 1950년 노사분규를 끝으로 올해로 55년째 무분규를 지켜낸 원동력이었다.
반면 GM은 경영난에 봉착하면 어김없이 인원감축을 추진했다. 지난 1992년 한해 적자가 235억 달러에 이르자 전체 인력의 30%, 6만4000여명을 줄였다. 3년이 못돼 경영이 정상화됐지만 시장점유율은 35%에서 31%대로 오히려 떨어졌다. 그러자 회사는 1998년 8월부터 22만4000여 직원 중 5만여명을 다시 정리해고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반발을 거듭, 1996년 이래 3년 동안 무려 13번이나 파업을 벌였다. 특히 1998년 파업 때는 직원 18만여명이 일손을 놔버려 손실이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번에도 GM은 사무직원의 28%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인원감축 위주의 GM식 구조조정이 단기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변화하는 시장과 소비자 욕구를 이해하지 못해 고객의 외면을 초래해 놓고, 직원들을 자른다고 근본적인 치유가 되겠냐”는 반문인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을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한 GM 경영진들은 당장 어려운 고비를 넘기자는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지 내쫓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업원들에게서 애사심을 갖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히 소비자가 만족하는 품질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가 정착돼 악순환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도요타 조 후지오 사장이 “정리해고를 통해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려다 회사가 통째로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요타와 GM이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한 적이 있다. 1984년 두 회사가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합작회사 누미(NUMMI)를 설립하고 디자인과 생산은 공동으로, 판매는 독자적으로 한 경우였다.
도요타 브랜드가 붙은 차가 GM 브랜드의 차보다 300달러나 더 비쌌지만, 소비자들은 도요타 차를 선호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똑같은 자동차였는데도, GM보다 도요타라는 브랜드를 더 신뢰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1980년대 후반 도요타 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자,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쓰리 업체들이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Way)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도요타 웨이’가 도요타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때로는 자생적으로, 때로는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사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핵심 이념을 등한시한 것이 벤치마킹에 실패한 이유였다.
도요타의 장점을 배우고 GM의 단점을 극복하려면 겉으로만 흉내 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노·사가 ‘종업원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신뢰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승부수를 던질 때”라는 여론이 노동계 안팎에서 조성되고 있다.
시간은 탄력적이다
기업 수명, 길 수도 때로는 짧을 수도
정보통신산업의 과제는 ‘좀 더 빨리’인 반면, 생명공학산업의 과제는 ‘시간을 늦추는 것(생명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 길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분명 탄력적이다.
기업 수명도, 기업을 꾸리고 있는 구성원(경영자·중간관리자·현장 근로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일하는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뜻과 마음과 힘을 합치면 수명이 길어지고, 정반대라면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다.
20세기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경영서적의 하나로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 1982년 출간)’이 꼽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선정된 초우량기업중 3분의 2가 5년 만에 간판을 내린 까닭에, 피터스는 “초우량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강변해야 했다.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지난 세기 동안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1935년 90살에서 1955년 45살, 1975년 30살, 1995년 22살을 거쳐 올해엔 평균 15살 수준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창업과 수성의 경영학’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30년간 생존율이 16%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했다. 예를 들어 지난 1965년 당시 10대 기업중 1995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기업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기업을 통해 제공되는 ‘일자리’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영위시키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쇠락해간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고, 생활기반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수명과 고용안정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려면 팽창속도가 임계속도(臨界速度, 어떤 물리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계점의 속도)보다 커야 하는 것처럼, 기업의 수명을 무한대에 접근시키려면 구성원 모두의 변화 의지가 현실에 안주하려는 정서보다 당연히 커야 하는 것이다.
/이강연 기자 lkyy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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