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칼럼>사이공의 ‘남부해방둥이’(2005.05.06)

지역내일 2005-05-06
사이공의 ‘남부해방둥이’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베트남은 사이공이 떨어진 4월 30일을 ‘남부해방기념일’ 및 ‘통일 기념일’로 기념한다. 수도 하노이는 4월 29일에 통일 및 남부해방기념일 전야행사를 열었고, 호찌민 시는 30일의 남부해방기념일에 맞추어 다양한 기념행사를 벌였다. 당초에 나는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겪은 날인 4월 30일에 맞추어 호찌민 시로 ‘감상여행’을 떠날 요량이었으나, 졸저 ‘사이공 최후의 표정 컬러로 찍어라’의 출판관계로 발이 묶였다. 각 국 기자 400여명이 남부해방 30주년 현지를 취재하러 호찌민 시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미국 에이피 통신사의 사이공지국장이었던 조지 에스퍼가 있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대학 저널리즘 방문교수가 된 그는 ‘특파원, 사이공의 함락을 다시 가보다’라는 제목으로 30년 전 최후의 날을 회상하는 기사(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4월 30일자)를 썼다.

자주정신·애국심·유연성이 승리의 원천
사이공 중앙광장 곁의 에덴빌딩에 에이피 통신 지국 사무실이 있었다. 에스퍼의 30주년 ‘감상여행기’는 자기가 거주하던 에덴 빌딩 3층의 아파트를 방문하여 그곳에 사는 베트남 주민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큰 사건이 터지면 때를 가리지 않고 한 층 위에 있는 지국으로 뛰어올라가서 취재하고 송고한 일을 회상했다. 그는 사이공 정권의 말로를 전한 기사를 인용했다. “사이공(에이피)-남베트남 대통령 두옹 반 민은 수요일 북베트남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항복’이라는 영어단어 한 자였다. 에스퍼는 사이공을 해방한 직후 에이피 지국 사무실에 들어섰던 북베트남 전사와 30년 만에 재회한 장면으로 기사를 끝맺는다. 지금은 55세가 된 왕년의 해방군 전사가 한 말은 “양쪽 정부만이 전쟁을 원했지, 베트남과 미국의 대다수 국민은 전쟁을 원치 않았소.”였다는 것이다. 이는 21년이 걸려 항미전쟁을 승리로 이끈 해방전사의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만일 그대로 말했다면 유연하고 현실적인 베트남 사람의 ‘손님 접대용’ 언사라고 여긴다.
이 시점에서 베트남이 항미전쟁에서 승리한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다시 한번 짚어본다. 압도적인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적인 요소’ 즉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다. 쯔엉 쏜 산맥을 따라서 장장 1만 6000km를 잇는 정교한 보급망 호찌민 통로나, 게릴라전의 요새로 사이공 외곽까지 250km를 뚫어놓은 꾸찌 터널은 항미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적 요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 스스로는 독립심과 인내심과 유연성, 그리고 사회주의에 접목한 애국주의가 정치적·정신적 승리의 원천이라고 본다.

일제 침략으로 유랑한 안수명의 운명
한 가지 끝을 맺어야 할 것은 한국이 베트남과의 과거사를 진심으로 청산하는 일이다. 우리는 일본 정치권력과 우익세력이 과거사를 올바르게 평가하기를 거부하고 신군국주의 속셈을 들어내는 꼴을 보고 있다. 최근에 나는 안수명이라는 노인의 행적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호찌민 시와 한국에서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안수명은 30년 전 4월 28일 오전 사이공의 한국 대사관원들이 통신시설을 파괴하고서 황급히 빠져나간 뒤 텅 빈 대사관에 홀로 남은 수위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일가로 일제의 탄압을 받고 일본에 끌려갔다가 베트남까지 표류하여 유랑의 일생을 보냈다. 당시 그의 왼편 팔뚝에는 1920년에 하얼빈에 살던 누님이 일본으로 건너가 볼모잡힌 소년 안수명을 껴안고 울면서 새겨 주었다는 먹물의 문신이 남아 있었다. ‘안(安)’씨 성 한 자와 태극기 한 쌍, 그리고 1919년 ○월 ○일(흐려서 식별 안 됨)이라는 날짜와 ‘그리스도의 사랑 밑에서’라는 러시아 어의 문신이다. 나이로 보면 금년에 100세가 되었을 안수명 노인은 베트남에서 흔적도 없이 인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안수명 노인의 유랑과 희생은 바로 일본 침략의 과거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같은 이치로 비록 한국이 베트남과 정치적·경제적으로 화해했다고 하지만 베트남에 대해 과거사를 철저히 가려서 청산하는 도덕적 과제를 안고 있다.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는 하노이 국회의사당의 30주년 전야 기념식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증진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는 미국대사 마이클 머린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를 말하지 않고 장래의 실리를 내다보는 베트남의 현실주의가 들어 나는 말이다. 베트남 통일 30주년이라면 우리 광복 60주년의 절반이 되는 세월로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한반도의 해방둥이는 장년기를 훌쩍 넘어서 환갑을 1년 앞둔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 통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의 ‘남부해방둥이’는 금년에 30살로 연부역강한 청년기에 도달했다. 전쟁을 전혀 겪지 않은 그들은 평화1세대로서 경제성장의 견인차를 운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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