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충남검사소 선임검사원 정필영 씨
“기술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올 겁니다”
지역내일
2005-05-11
(수정 2005-05-11 오후 12:47:26)
정필영 씨(41세)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상민이 상호만큼이나 소중한 두 개의 가방이 있다. 그 하나가 공구가방이다. 007 가방처럼 생긴 튼튼한 사각의 케이스에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손때 묻은 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디를 가든 몸에 지니고 다니는 이 가방은 그의 분신과도 같다. 92년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충남검사소에 입사한 뒤로 벌써 가방만 몇 개를 ‘해먹었는지’ 모른다. 그의 별명은 ‘한국형 맥가이버’. 집안의 가전제품부터 기중기, 굴삭기 등의 중장비에 이르기까지 못 고치는 게 없다.
정필영 씨가 애지중지하는 또 하나의 가방을 보면 그가 단순히 ‘눈썰미’로만 일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하도 들고 다녀 손잡이가 나달나달해진 이 낡은 가방 안에는 책이며 각종 수험 자료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는 책이 1미터 이내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하루에 ‘다믄 한 자씩이라도’ 책을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린다.
가방 안의 책들은 수시로 바뀐다. 책이 바뀔 때마다 자격증도 하나씩 는다. 현재 정필영 씨가 보유한 국가기술자격증은 모두 26개. 1983년 천안농고 시절에 딴 농업기계정비사 자격증부터 2004년에 거머쥔 건설기계기술사 자격증까지, 저마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 자격증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획득한 기술사 자격증이 특히 감회가 새롭다. 건설기계 종목 최초로 기능사·산업기사·기사·기능장·기술사로 이어지는 국가기술자격 5개 분야를 석권했다는 만족감도 만족감이려니와, 3년여의 악전고투 끝에 얻은 자격증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기술사 시험이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시험 보는 날이면 우리 안식구가 김밥을 싸줘요. 서너 번 떨어지니까 어느 날 김밥을 주면서 그러더라구요. ‘당신, 그만 포기하지?’ 몇 년을 해왔는데 어떻게 포기해요? ”
정필영 씨는 독학파다. 집이나 도서관에서 틈나는 대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그의 유일한 공부법이다. 만일 그가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콕콕 집어 주는’ 학원에 다녔다면 기술사 자격증 따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는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내딛는 한 걸음을 좋아하고, 똑똑한 사람보다 평소에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사 공부를 할 때 만든 천 페이지 짜리 노트를 갖고 있지만, ‘남이 공부한 걸 대충 카피해서 쉽게 공부하려는’ 얌체족들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공부 안 하던 사람이 자료 받는다고 공부합니까, 안 합니다. 평상시에 자기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독학으로 해야 진짜 공부가 돼요. 제 신조가 그래요. 저는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시간 쪼개 가매 공부했어요. 책이며 자료도 다 내 돈 들여 구입했구요. 그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흘러가는 것 보세요. 기술자들 공부 안 해도 몇 년 지나면 자동으로 1급 대우를 해줘요. 또, 대학 나와서 몇 년 현장 경험이 있으면 1급 자격 있는 걸로 인정해 줘요. 인정기술자제도라는 게 그런 거예요. 정작 열심히 공부해서 기술자격증 딴 사람들은 대우도 못 받고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요. 이러니 누가 힘들게 공부를 하겠어요? 이력서 한 통 채우려고 자격증 따나요?”
더듬거리는 어눌한 말씨와 느릿한 충남 억양의 어느 구석에 저런 결기를 숨겨 두었을까. 기술인들의 자부심을 꺾는 학·경력 인정기술자제도 문제로 화제가 넘어가면서, 정필영 씨의 한없이 순해 보이던 눈매가 도끼자루처럼 꺾인다.
“가끔 천안농고에 강의를 나가면 후배들이 그래요. 차라리 접시 닦는 게 낫겠다고.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아무리 건의해도 말로만 기술인 육성한다 그러지, 윗분들이야 밑엣 사람 배고픈 게 보이나요? 게다가 요즘 민원이 왕 아닙니까? 인정기술자제도로 혜택 받는 기득권 세력 있잖아요. 못 잘라요. 자르면 또 과천에 깃발 섭니다.”
하긴, 그처럼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 온 기술인이 화내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화를 낸단 말인가. 새까만 얼굴에서 빛나는 기술인으로서의 단단한 자부심과 근기는 농기계와 뒹굴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것이었다. 1965년 충남 천안군 북면 명덕리에서 태어난 정필영 씨는 농사를 지으며 방앗간을 했던 아버지의 근면함과 눈썰미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좋아해서 아버지하고 일을 많이 했어요. 한겨울에 기계를 만지면 손이 얼마나 시려워. 나는 손 시려 죽겄는데 아버님은 옆에 화로가 있어도 일 끝내기 전에는 절대 불을 안 쬐요. 그렇게 독하신 데가 있어요. 근데 제가 아버님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거 같애요.”
올 3월, 정필영 씨는 단국대 산업정보대학원 생산기술학과에 입학했다. 자기 분야에서 더 이상 딸 자격증이 없다면, 맥가이버의 공부 인생도 적당히 쉼표를 찍을 때가 온 게 아닐까. 대체 그는 공부가 그리도 좋단 말인가?
“공부를 좋아서 하나요? 특출 난 게 없으니까 하는 거죠. 아는 사람 없고 빽 없고 유명한 학교 출신도 아닌 저 같은 사람이 장래를 대비하려면 공부밖에 더 있겠어요?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제 사업을 하는 게 목표기 때문에 제대로 자격을 갖추려고 해요. 사실 제가 ‘오리지날 기계과 출신’이 아니라 부족한 게 많거든요.”
그의 유난한 공부 욕심에 가족들의 불만은 없을까. 당장은 돈도 명예도 되지 않는 자격증을 26개나 따놓고, 없는 돈에 대학원까지 진학한 남편에게 불평 한 마디 없는 아내가 있을까. 그런데 정필영 씨는 당당하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공부한다고 집안일에 소홀한 건 아닙니다. 안식구가 직장을 나가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산에도 가끔 데리고 갑니다. 얼마 전에도 김밥 싸들고 충북 진천 못내산으로 가족 산행을 다녀왔어요. 제가 등산을 좋아하거든요. 요리도 가끔 하고 해마다 김장도 같이 담습니다. 남자라고 손도 까딱 안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시대는 갔잖아요. 애들 맛있는 거 해먹이려고 한식조리사하고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도 땄어요. 아마 초짜주부들보다는 솜씨가 나을걸요. 아이들도 밥 먹고 나면 숟가락 그릇은 설거지통에 갖다 넣는 게 습관이에요. 그런 게 교육인 거 같애요. 전 책상도 거실에 내놨어요. 공부해라 마라 하기 이전에 부모가 먼저 책상에 앉으면 애들이 텔레비전 보겠어요?”
정필영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현듯 그가 가진 자격증들이 ‘사람 자격증’, ‘아빠 자격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 40개까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모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과 그에 대한 선입견도 말끔히 가셨다. 정필영 씨에게 자격증이란 ‘아는 사람 없고 빽 없고 유명한 학교 출신도 아닌’ 사람이 인생이란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데 필요한 부표 같은 것일 뿐, 그는 자격증의 개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정필영 씨가 가진 자격증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훗날 ‘직업학교’를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직업학교를 통해 자기처럼 ‘특출 난 것 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갈 도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그래서 전기 기술자가 되고 싶어하는 큰 아들과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하는 작은 아들이 기 펴고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글 김기선·사진 백지순
정필영 씨가 14년째 다니고 있는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일반인에겐 다소 낯선 회사지만 건설기계를 다루는 개인이나 기업들에겐 잘 알려진 기관이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건설기계의 구조와 성능을 확인하여 사고를 방지하고, 배출가스나 소음, 진동 상태를 점검하며, 장비를 불법적으로 구조변경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건설기계검사 전문 비영리법인이다.
선임검사원인 정필영 씨는 충남검사소에선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다. 자동차검사 및 정비기사, 농기계·기중기·굴삭기·지게차·준설선운전 기능사 자격증, 특수용접, 전기용접 기능사보까지 한국에서 딸 수 있는 대부분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탓에 현장에선 ‘만물박사’로 통한다. 그 때문에 충남 지역에서 굴착기나 덤프트럭, 기중기 등 대형 중장비를 검사할 때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면 으레 그가 해결사 역할을 도맡는다.
정식 출퇴근 시간은 9시~6시이지만, 업무에 따라 출퇴근 시간도 그때그때 다르다. 업무의 특성상 현장에서 지내는 일이 많다 보니 밖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이 직장 동료처럼 친숙하다. 충남검사소의 하루 검사 건수는 평균 10여 건. 뙤약볕 아래서 대형 중장비를 검사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내려 애쓴다. 퇴근 후에는 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도 일단 출근하면 업무 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 업무 개선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던 덤프트럭 제동장치의 캠시스템을 국산화했고, 건설기계 엔진의 냉각 시스템이나 주행 장치의 구조를 개선하기도 했다.
선임검사원인 그의 연봉은 3천만 원을 조금 밑돈다. 수많은 기술자격증과 경력을 감안하면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액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네 식구가 ‘먹고살만한 돈’이라고 말한다. 검소한 생활과 아내의 알뜰살뜰한 살림 솜씨 덕분에 몇 년 전 아파트도 마련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정필영 씨는 기계와 더불어 사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기계는 정직해서 요령과 술수로 자기 한계를 극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기술 있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정부의 정책도 그리로 방향을 틀고 있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 기술인의 자긍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필영 씨가 애지중지하는 또 하나의 가방을 보면 그가 단순히 ‘눈썰미’로만 일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하도 들고 다녀 손잡이가 나달나달해진 이 낡은 가방 안에는 책이며 각종 수험 자료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는 책이 1미터 이내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하루에 ‘다믄 한 자씩이라도’ 책을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린다.
가방 안의 책들은 수시로 바뀐다. 책이 바뀔 때마다 자격증도 하나씩 는다. 현재 정필영 씨가 보유한 국가기술자격증은 모두 26개. 1983년 천안농고 시절에 딴 농업기계정비사 자격증부터 2004년에 거머쥔 건설기계기술사 자격증까지, 저마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 자격증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획득한 기술사 자격증이 특히 감회가 새롭다. 건설기계 종목 최초로 기능사·산업기사·기사·기능장·기술사로 이어지는 국가기술자격 5개 분야를 석권했다는 만족감도 만족감이려니와, 3년여의 악전고투 끝에 얻은 자격증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기술사 시험이 일 년에 두 번 있는데, 시험 보는 날이면 우리 안식구가 김밥을 싸줘요. 서너 번 떨어지니까 어느 날 김밥을 주면서 그러더라구요. ‘당신, 그만 포기하지?’ 몇 년을 해왔는데 어떻게 포기해요? ”
정필영 씨는 독학파다. 집이나 도서관에서 틈나는 대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그의 유일한 공부법이다. 만일 그가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콕콕 집어 주는’ 학원에 다녔다면 기술사 자격증 따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는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내딛는 한 걸음을 좋아하고, 똑똑한 사람보다 평소에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사 공부를 할 때 만든 천 페이지 짜리 노트를 갖고 있지만, ‘남이 공부한 걸 대충 카피해서 쉽게 공부하려는’ 얌체족들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공부 안 하던 사람이 자료 받는다고 공부합니까, 안 합니다. 평상시에 자기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독학으로 해야 진짜 공부가 돼요. 제 신조가 그래요. 저는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시간 쪼개 가매 공부했어요. 책이며 자료도 다 내 돈 들여 구입했구요. 그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흘러가는 것 보세요. 기술자들 공부 안 해도 몇 년 지나면 자동으로 1급 대우를 해줘요. 또, 대학 나와서 몇 년 현장 경험이 있으면 1급 자격 있는 걸로 인정해 줘요. 인정기술자제도라는 게 그런 거예요. 정작 열심히 공부해서 기술자격증 딴 사람들은 대우도 못 받고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요. 이러니 누가 힘들게 공부를 하겠어요? 이력서 한 통 채우려고 자격증 따나요?”
더듬거리는 어눌한 말씨와 느릿한 충남 억양의 어느 구석에 저런 결기를 숨겨 두었을까. 기술인들의 자부심을 꺾는 학·경력 인정기술자제도 문제로 화제가 넘어가면서, 정필영 씨의 한없이 순해 보이던 눈매가 도끼자루처럼 꺾인다.
“가끔 천안농고에 강의를 나가면 후배들이 그래요. 차라리 접시 닦는 게 낫겠다고.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아무리 건의해도 말로만 기술인 육성한다 그러지, 윗분들이야 밑엣 사람 배고픈 게 보이나요? 게다가 요즘 민원이 왕 아닙니까? 인정기술자제도로 혜택 받는 기득권 세력 있잖아요. 못 잘라요. 자르면 또 과천에 깃발 섭니다.”
하긴, 그처럼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 온 기술인이 화내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화를 낸단 말인가. 새까만 얼굴에서 빛나는 기술인으로서의 단단한 자부심과 근기는 농기계와 뒹굴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것이었다. 1965년 충남 천안군 북면 명덕리에서 태어난 정필영 씨는 농사를 지으며 방앗간을 했던 아버지의 근면함과 눈썰미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좋아해서 아버지하고 일을 많이 했어요. 한겨울에 기계를 만지면 손이 얼마나 시려워. 나는 손 시려 죽겄는데 아버님은 옆에 화로가 있어도 일 끝내기 전에는 절대 불을 안 쬐요. 그렇게 독하신 데가 있어요. 근데 제가 아버님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거 같애요.”
올 3월, 정필영 씨는 단국대 산업정보대학원 생산기술학과에 입학했다. 자기 분야에서 더 이상 딸 자격증이 없다면, 맥가이버의 공부 인생도 적당히 쉼표를 찍을 때가 온 게 아닐까. 대체 그는 공부가 그리도 좋단 말인가?
“공부를 좋아서 하나요? 특출 난 게 없으니까 하는 거죠. 아는 사람 없고 빽 없고 유명한 학교 출신도 아닌 저 같은 사람이 장래를 대비하려면 공부밖에 더 있겠어요?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제 사업을 하는 게 목표기 때문에 제대로 자격을 갖추려고 해요. 사실 제가 ‘오리지날 기계과 출신’이 아니라 부족한 게 많거든요.”
그의 유난한 공부 욕심에 가족들의 불만은 없을까. 당장은 돈도 명예도 되지 않는 자격증을 26개나 따놓고, 없는 돈에 대학원까지 진학한 남편에게 불평 한 마디 없는 아내가 있을까. 그런데 정필영 씨는 당당하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공부한다고 집안일에 소홀한 건 아닙니다. 안식구가 직장을 나가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산에도 가끔 데리고 갑니다. 얼마 전에도 김밥 싸들고 충북 진천 못내산으로 가족 산행을 다녀왔어요. 제가 등산을 좋아하거든요. 요리도 가끔 하고 해마다 김장도 같이 담습니다. 남자라고 손도 까딱 안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시대는 갔잖아요. 애들 맛있는 거 해먹이려고 한식조리사하고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도 땄어요. 아마 초짜주부들보다는 솜씨가 나을걸요. 아이들도 밥 먹고 나면 숟가락 그릇은 설거지통에 갖다 넣는 게 습관이에요. 그런 게 교육인 거 같애요. 전 책상도 거실에 내놨어요. 공부해라 마라 하기 이전에 부모가 먼저 책상에 앉으면 애들이 텔레비전 보겠어요?”
정필영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현듯 그가 가진 자격증들이 ‘사람 자격증’, ‘아빠 자격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 40개까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모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과 그에 대한 선입견도 말끔히 가셨다. 정필영 씨에게 자격증이란 ‘아는 사람 없고 빽 없고 유명한 학교 출신도 아닌’ 사람이 인생이란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데 필요한 부표 같은 것일 뿐, 그는 자격증의 개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정필영 씨가 가진 자격증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훗날 ‘직업학교’를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직업학교를 통해 자기처럼 ‘특출 난 것 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갈 도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그래서 전기 기술자가 되고 싶어하는 큰 아들과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하는 작은 아들이 기 펴고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글 김기선·사진 백지순
정필영 씨가 14년째 다니고 있는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일반인에겐 다소 낯선 회사지만 건설기계를 다루는 개인이나 기업들에겐 잘 알려진 기관이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건설기계의 구조와 성능을 확인하여 사고를 방지하고, 배출가스나 소음, 진동 상태를 점검하며, 장비를 불법적으로 구조변경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건설교통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건설기계검사 전문 비영리법인이다.
선임검사원인 정필영 씨는 충남검사소에선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다. 자동차검사 및 정비기사, 농기계·기중기·굴삭기·지게차·준설선운전 기능사 자격증, 특수용접, 전기용접 기능사보까지 한국에서 딸 수 있는 대부분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탓에 현장에선 ‘만물박사’로 통한다. 그 때문에 충남 지역에서 굴착기나 덤프트럭, 기중기 등 대형 중장비를 검사할 때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면 으레 그가 해결사 역할을 도맡는다.
정식 출퇴근 시간은 9시~6시이지만, 업무에 따라 출퇴근 시간도 그때그때 다르다. 업무의 특성상 현장에서 지내는 일이 많다 보니 밖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이 직장 동료처럼 친숙하다. 충남검사소의 하루 검사 건수는 평균 10여 건. 뙤약볕 아래서 대형 중장비를 검사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내려 애쓴다. 퇴근 후에는 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도 일단 출근하면 업무 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 업무 개선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던 덤프트럭 제동장치의 캠시스템을 국산화했고, 건설기계 엔진의 냉각 시스템이나 주행 장치의 구조를 개선하기도 했다.
선임검사원인 그의 연봉은 3천만 원을 조금 밑돈다. 수많은 기술자격증과 경력을 감안하면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액수다. 그러나 그는 그저 네 식구가 ‘먹고살만한 돈’이라고 말한다. 검소한 생활과 아내의 알뜰살뜰한 살림 솜씨 덕분에 몇 년 전 아파트도 마련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정필영 씨는 기계와 더불어 사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기계는 정직해서 요령과 술수로 자기 한계를 극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기술 있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정부의 정책도 그리로 방향을 틀고 있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 기술인의 자긍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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