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각 학교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내신시험이 끝난 후면 아이들의 학원이동이 활발하다. 학원을 옮기려고 어머니들이 동분서주한다. 정보를 얻고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느라 바쁘다.
상담스케줄을 잡고 입학을 위한 테스트와 면담 등을 거치고, 원비를 내게 된다. 어머니들의 이 열정과 헌신이 국가적 낭비는 아닌지 고심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안타깝고도 뜨거운 눈빛은 이 나라 교육열의 뿌리이면서 사교육시장에서는 태양과 같다. 오! 쏠레 미오.
학원에서 중학교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지 벌써 8년을 꽉 채웠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교육과정은 6차에서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흔하던 국어 자습서가 없어졌다. 특목고 열풍이 휩쓸더니, 내신중심으로, 서술형문제 30% 출제까지 변화가 많았다.
아이들의 눈빛은 크게 차이가 없다. 꼭 부모를 닮은 얼굴에 행동거지, 판박이 스티커 같은 성격들이 드러난다. 새 학기 시작할 때, 학부모 간담회를 열 때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확실히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좋고 싫음이 있다. 이쁜 아이도 있고, 어째 정이 가질 않는 아이도 있다. 같은 말도 이쁘게 하는 아이가 있으면 삐딱하게 꼬아 던지는 아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쩌랴.
강의실에서 욕이나 비속어를 쓰는 아이가 있으면, 면박을 주기보다 웃으며 비타민 한 알이라도 쥐어주는 센스(!)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착한 남학생이 있었다. 중3이고 키는, 선생인 나보다 머리통 하나쯤 더 컸다. 게다가 생긴 건 현빈이나 조인성 중간쯤? 게다가 싹싹한 성격에 매너 좋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였다. 어느 날 수업에 오질 않아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대뜸, 하는 말이 “아! 맞다!”였다. 깜빡 했단다. 알았으니 어서 오라고 했다.
녀석은 푸시시- 웃더니 “지금 가도 오늘은 수업 못 듣는 걸요” 라고 한다. 무슨 소리지? “이거 들어보세요.”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것은 물! 소리였다. 무수한 물방울들을 터지면서 내지르는 시원한 소리. 발을 적시고 모래를 적시고 귀를 적시고 끝내는 머리 속마저 깨끗하게 비울만한 힘찬 소리. 파도소리였다.
녀석은 그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 수업을 빠지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땅 끝에 서서 하염없이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가 내가 건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핸드폰의 건전지가 다 될 때까지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녀석이 왜 거기에 갔는지는 지금도 나는 모른다.
교육정책이 바뀌고 학교가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사교육시장이 널뛰기를 하든 말든 아이들은 자란다. 자라서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어른도 한 때는 아이였다. 왜 그걸 잊을까. 묻게 된다, 스스로에게.
내신시험이 끝난 후면 아이들의 학원이동이 활발하다. 학원을 옮기려고 어머니들이 동분서주한다. 정보를 얻고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느라 바쁘다.
상담스케줄을 잡고 입학을 위한 테스트와 면담 등을 거치고, 원비를 내게 된다. 어머니들의 이 열정과 헌신이 국가적 낭비는 아닌지 고심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안타깝고도 뜨거운 눈빛은 이 나라 교육열의 뿌리이면서 사교육시장에서는 태양과 같다. 오! 쏠레 미오.
학원에서 중학교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지 벌써 8년을 꽉 채웠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교육과정은 6차에서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흔하던 국어 자습서가 없어졌다. 특목고 열풍이 휩쓸더니, 내신중심으로, 서술형문제 30% 출제까지 변화가 많았다.
아이들의 눈빛은 크게 차이가 없다. 꼭 부모를 닮은 얼굴에 행동거지, 판박이 스티커 같은 성격들이 드러난다. 새 학기 시작할 때, 학부모 간담회를 열 때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확실히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좋고 싫음이 있다. 이쁜 아이도 있고, 어째 정이 가질 않는 아이도 있다. 같은 말도 이쁘게 하는 아이가 있으면 삐딱하게 꼬아 던지는 아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쩌랴.
강의실에서 욕이나 비속어를 쓰는 아이가 있으면, 면박을 주기보다 웃으며 비타민 한 알이라도 쥐어주는 센스(!)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착한 남학생이 있었다. 중3이고 키는, 선생인 나보다 머리통 하나쯤 더 컸다. 게다가 생긴 건 현빈이나 조인성 중간쯤? 게다가 싹싹한 성격에 매너 좋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였다. 어느 날 수업에 오질 않아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대뜸, 하는 말이 “아! 맞다!”였다. 깜빡 했단다. 알았으니 어서 오라고 했다.
녀석은 푸시시- 웃더니 “지금 가도 오늘은 수업 못 듣는 걸요” 라고 한다. 무슨 소리지? “이거 들어보세요.”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것은 물! 소리였다. 무수한 물방울들을 터지면서 내지르는 시원한 소리. 발을 적시고 모래를 적시고 귀를 적시고 끝내는 머리 속마저 깨끗하게 비울만한 힘찬 소리. 파도소리였다.
녀석은 그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 수업을 빠지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땅 끝에 서서 하염없이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가 내가 건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핸드폰의 건전지가 다 될 때까지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 녀석이 왜 거기에 갔는지는 지금도 나는 모른다.
교육정책이 바뀌고 학교가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사교육시장이 널뛰기를 하든 말든 아이들은 자란다. 자라서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어른도 한 때는 아이였다. 왜 그걸 잊을까. 묻게 된다, 스스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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