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사의 필수덕목으로 떠오르는 ‘인품’은 정진규 (60·사시15회·사진) 대표변호사를 소개할 때면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올해 초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던 정 변호사는 김종빈 검찰총장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동기가 총장이 되면 사퇴하는 관행에 따라 옷을 벗었지만 검찰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정 변호사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검찰이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은 김종빈 총장이 있기 때문”이라며 김 총장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 3월 28일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대륙의 공동대표변호사로 취임한 후 두 달가까이 지났다. 아직 변호사라는 직업이 어색하지만 경쟁력 있는 법무법인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고민은 검찰에서 근무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처벌예방제’ 시행으로 관행 바꿔 = “구속 몇 건했다는 실적 위주로 검찰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검찰이 잘만하면 수십년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검찰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88년 충무지청장에 근무하던 시절 엉망이던 어민들의 수산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간 수사 유예기간’을 뒀다. ‘3개월간 단속하지 않을 테니 그동안 알아서 고치라’는 메시지였다. 그 결과 소형기선의 저인망(일명 고대구리)을 비롯한 불법어업이 크게 줄었다.
2000년 울산지검장으로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다. 울산은 공장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악취방지 시설 등이 부족해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정 변호사는 업체들이 법적 기준에 맞는 정화시설 설치를 위해 ‘6개월 동안 단속하지 않겠다’며 유예기간을 줬다. 그리고 검찰이 환경보호협의회와 함께 환경운동을 직접 전개했다. 잘못을 스스로 고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업체들이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는 “처벌을 최후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처벌 기준을 알리고 계획을 세워 스스로 고치도록 하면 바뀐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미지를 ‘처벌’이 아닌 ‘공익의 대변자’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검사·변호사 재교육 전문성 강화 = 그는 검사들의 재교육, 소위 ‘훈련’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검사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장으로 근무할 때 초임 검사가 독자적으로 사건을 맡기까지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뒀다. 능력과 책임감을 갖출 때까지 사건배당을 유보한 것이다.
법무연수원장 시절 검사들의 연수 커리큘럼을 대폭 늘리고 4개 분야의 전문수사과정을 3년 안에 끝마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교육을 진행했다. 정 변호사는 최근 대검 중수부에서 ‘첨단범죄수사 아카데미’를 만든 것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대표변호사를 맡으면서 이러한 자세는 그대로 이어졌다. 정 변호사는 최근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에게 ‘각자 전문분야를 선정해 제출하라’는 업무요청서를 보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2년 내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 변호사가 되라고 했다”며 “젊고 진취적인 변호사들이 모인만큼 가능성이 큰 로펌”이라고 말했다.
◆진취적 조직 ‘법무법인 대륙’ = 96년 설립된 법무법인 대륙은 국내 최초로 외국에 1호 분사무소(중국 상하이)를 내는 등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진취적인 조직이다.
그는 이시윤 전 감사원장(대륙 고문)의 권유로 ‘대륙’을 선택했지만 스스로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전 감사원장은 그가 존경하는 둘도 없는 은사이다. 정 변호사는 대표변호사로 취임한 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대륙 변호사들은 회사의 고문변호사를 맡으면 이름만 올려놓는 형식적인 관계에 그치지 않고 직접 회사를 찾아가고 있다. 회사의 각종 법률문제들을 논의하면서 ‘법률파트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고객 위주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며 “사건을 맡기 위해 승소를 장담하기보다 사건의 한계와 승소 가능성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우석 교수와의 인연 등 각종 일화 = 그의 취임식에는 뜻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황우석 교수가 그 주인공.
정 변호사가 서울고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검찰의 외부강사로 초빙된 황 교수가 운전기사 없이 낡은차로 대검찰청을 찾은 것를 보고 국가의 중요인물에 대한 ‘경호’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가 대검에 제안, 청와대에 ‘황 교수의 신변보호’를 건의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대검 공안2과장, 서울지검 공안1, 2부 부장검사를 맡으면서 선거풍토를 바로잡은 것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90년대 초반 지방자치제 첫 출범 당시 선거사범에 대한 입건· 구속· 기소 기준이 각 지역마다 다르면 안된다고 생각, 선거사범 통합수사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선거사상 최초로 사전선거운동혐의로 10명을 구속하고 입건된 선거사범의 과반수 이상을 기소하는 성과를 이뤘다.
수준급인 테니스 실력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정 변호사는 ‘국궁’을 법무연수원의 정규수업으로 만들기도 했다. 연간 1만5000여명의 법무부 직원들이 일주일간 교육을 받는 법무연수원에 체육활동 등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과정들을 도입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변호사는 “검사로 근무하면서 국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변호사로 나온 지금, 의뢰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법률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력
△1946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1978년 서울지검 수원지청 검사 △1987년 대검 공안1과장 △2001년 대검 기조부장 △2002년 인천지검장 △2003년 서울고검장 △2004년 법무연수원장
/김기수 이경기 기자 kskim@naeil.com
올해 초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던 정 변호사는 김종빈 검찰총장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동기가 총장이 되면 사퇴하는 관행에 따라 옷을 벗었지만 검찰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정 변호사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검찰이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은 김종빈 총장이 있기 때문”이라며 김 총장을 높게 평가했다.
지난 3월 28일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대륙의 공동대표변호사로 취임한 후 두 달가까이 지났다. 아직 변호사라는 직업이 어색하지만 경쟁력 있는 법무법인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고민은 검찰에서 근무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처벌예방제’ 시행으로 관행 바꿔 = “구속 몇 건했다는 실적 위주로 검찰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검찰이 잘만하면 수십년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검찰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88년 충무지청장에 근무하던 시절 엉망이던 어민들의 수산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간 수사 유예기간’을 뒀다. ‘3개월간 단속하지 않을 테니 그동안 알아서 고치라’는 메시지였다. 그 결과 소형기선의 저인망(일명 고대구리)을 비롯한 불법어업이 크게 줄었다.
2000년 울산지검장으로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다. 울산은 공장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악취방지 시설 등이 부족해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정 변호사는 업체들이 법적 기준에 맞는 정화시설 설치를 위해 ‘6개월 동안 단속하지 않겠다’며 유예기간을 줬다. 그리고 검찰이 환경보호협의회와 함께 환경운동을 직접 전개했다. 잘못을 스스로 고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업체들이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는 “처벌을 최후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처벌 기준을 알리고 계획을 세워 스스로 고치도록 하면 바뀐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미지를 ‘처벌’이 아닌 ‘공익의 대변자’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검사·변호사 재교육 전문성 강화 = 그는 검사들의 재교육, 소위 ‘훈련’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검사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장으로 근무할 때 초임 검사가 독자적으로 사건을 맡기까지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뒀다. 능력과 책임감을 갖출 때까지 사건배당을 유보한 것이다.
법무연수원장 시절 검사들의 연수 커리큘럼을 대폭 늘리고 4개 분야의 전문수사과정을 3년 안에 끝마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교육을 진행했다. 정 변호사는 최근 대검 중수부에서 ‘첨단범죄수사 아카데미’를 만든 것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대표변호사를 맡으면서 이러한 자세는 그대로 이어졌다. 정 변호사는 최근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에게 ‘각자 전문분야를 선정해 제출하라’는 업무요청서를 보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2년 내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 변호사가 되라고 했다”며 “젊고 진취적인 변호사들이 모인만큼 가능성이 큰 로펌”이라고 말했다.
◆진취적 조직 ‘법무법인 대륙’ = 96년 설립된 법무법인 대륙은 국내 최초로 외국에 1호 분사무소(중국 상하이)를 내는 등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진취적인 조직이다.
그는 이시윤 전 감사원장(대륙 고문)의 권유로 ‘대륙’을 선택했지만 스스로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전 감사원장은 그가 존경하는 둘도 없는 은사이다. 정 변호사는 대표변호사로 취임한 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대륙 변호사들은 회사의 고문변호사를 맡으면 이름만 올려놓는 형식적인 관계에 그치지 않고 직접 회사를 찾아가고 있다. 회사의 각종 법률문제들을 논의하면서 ‘법률파트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고객 위주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며 “사건을 맡기 위해 승소를 장담하기보다 사건의 한계와 승소 가능성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우석 교수와의 인연 등 각종 일화 = 그의 취임식에는 뜻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황우석 교수가 그 주인공.
정 변호사가 서울고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검찰의 외부강사로 초빙된 황 교수가 운전기사 없이 낡은차로 대검찰청을 찾은 것를 보고 국가의 중요인물에 대한 ‘경호’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가 대검에 제안, 청와대에 ‘황 교수의 신변보호’를 건의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대검 공안2과장, 서울지검 공안1, 2부 부장검사를 맡으면서 선거풍토를 바로잡은 것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90년대 초반 지방자치제 첫 출범 당시 선거사범에 대한 입건· 구속· 기소 기준이 각 지역마다 다르면 안된다고 생각, 선거사범 통합수사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후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선거사상 최초로 사전선거운동혐의로 10명을 구속하고 입건된 선거사범의 과반수 이상을 기소하는 성과를 이뤘다.
수준급인 테니스 실력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정 변호사는 ‘국궁’을 법무연수원의 정규수업으로 만들기도 했다. 연간 1만5000여명의 법무부 직원들이 일주일간 교육을 받는 법무연수원에 체육활동 등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과정들을 도입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변호사는 “검사로 근무하면서 국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변호사로 나온 지금, 의뢰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법률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력
△1946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1978년 서울지검 수원지청 검사 △1987년 대검 공안1과장 △2001년 대검 기조부장 △2002년 인천지검장 △2003년 서울고검장 △2004년 법무연수원장
/김기수 이경기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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