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 중 러도 못 믿는다...고립감도 핵 추구 핵심배경

내정간섭 우려 중 영향력 경계... 미국의 중국의존은 오산

지역내일 2005-06-14 (수정 2005-06-14 오후 9:33:32)
북핵 협상관건은 미국의 북한 체제 보장


발문
“이라크 전쟁 당시 김정일은 미국이 북한을 공습해 정권을 해체할 것이라 굳게 믿고 50일 동안 지하 벙커에 몸을 숨겼다.”
“우리가 아무리 북한정권의 생존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북한 정권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해 주는 것이다.”

6월 12일자 워싱턴 포스터 기고문
로버트 S. 리트워크(Robert S. Litwak), 캐서린 웨더스비(Kathryn Weathersby)
로버트 리트워크는 1990년대 중반 미 NSC(국가안보회의) 임원을 지냈으며 현재 워싱턴의 우드로 윌슨센터 국제연구 소장으로 있다. 케서린 웨더스비는 우드로 윌슨센터 ‘냉전 국제역사 프로젝트’의 선임연구원이며 연구소의 ‘코리아이니시에이티브(Korea Initiative)’의 조정관이다.

***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닌 체제 초기부터 존재해 온 것이며 여기에는 미국의 북한체제 전복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우드로 윌슨 연구소의 두 연구원이 워싱턴 포스터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이들은 또 북한이 내정간섭을 우려해 중국을 완벽히 신뢰하지 않고 있는데도 부시정부의 북핵전략에 중국의 비중이 큰 것이 아이러니하다면서 부시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북한 정권이 곧 붕괴될 위험에 있다는 가정이나 헛된 희망에 근거해 접근할 수 없으며 협상의 관건은 신뢰할 수 있는 북한 체제 보장에 있다고 분석했다.
기고문은 우드로 윌슨센터 냉전 국제역사프로젝트(Woodrow Wilson Center''s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CWIHP) 연구원들이 수집한 50~80년대 북한관료와 소련 및 동유럽 관료들의 접촉 내용을 담은 구소련과 동구권의 각종 외교문서를 바탕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형태와 심리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미국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는데 우리는 핵무기 제조를 생각하는 것조차 금지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1962년 8월 북한 외무성 부상의 입에서 나온 분노와 아이러니를 담은 발언이다.
북한 외무성 부상이 소련 대사에 이런 말을 던진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 발언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으로 인한 안보위협을 해결하려 애쓰는 미 고위 관리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수십년 된 외교문서와 다른 여러 자료에서 북한의 핵에 대한 사고방식의 상당 부분과 도대체 무엇이 아버지와 아들이 반세기 동안 통치해온 이 정권을 움직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구의 시각에서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김일성 통치하의 북한만큼 폐쇄적이지 않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을 통치했다. 그 이후 아들 김정일이 미국 및 기타 몇몇 나라와 여러 차례 외교협상을 시도했지만 매번 시작됐다 중단되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과 서방과의 외교 협상의 역사가 짧은 관계로 비 공산 서방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중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를 알아내고자 갖은 물밑 활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수집한 자료들은 북한이 핵 야욕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특히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에 공개돼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경책’과, ‘6자회담’을 택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하는 이 6자회담이 중단 된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 주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넌지시 내 비추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많은 경우처럼 서방 외교관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북한이 이런 성명을 발표했는지 확신이 없다. 게다가 3월 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회담에 “미국이 야기하는 핵 위협 문제도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미군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주변국 간섭 받지 않겠다는 집착 = 자료에서 우리는 특히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미군의 공격 위협과 강대 공산국가들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뿌리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덜 명시적이지만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있어 주변국들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북한의 집착이다.
자료들은 또 북한 정권에게 한국전쟁(6.25)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1953년 어려운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김일성은 미국과 한국이 새로이 공격해 올 것으로 기대했다. 북한은 3년 동안 미국의 대대적 폭격과 핵무기 사용 위협을 견뎌내야 했다. 이런 경험은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은 핵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자신감을 갖게 했다.
1963년 2월 김일성은 구소련 대사에게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지리적 조건 상 북한에 유리하다. 산들이 핵폭발의 위력을 반감시킬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려면 많은 폭탄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미국의 핵 기술이 점점 발달되면서 김일성의 시각도 서서히 변했다. 김일성은 여전히 미국이 한반도를 공격할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1984년 5월 독일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에서 “우리가 미국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지 못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우리가 한반도에서 미국보다 강하다는 구실을 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계속해서 남한을 점령하기 위해 내세우는 변명이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절대 떠날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김일성은 도전적이라기보다는 체념한 듯 보여 당시 미국의 핵 억지 정책이 성공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2년 후 1986년 10월 다시 호네커 서기장과의 회담에서 김일성은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그럴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라는 표면적 이유로 1000개의 미국 핵탄두들이 남한에 배치돼 있으며 이 가운데 2개만으로도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수세적 인식 전환을 보였다.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60년대부터 시작돼 =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십 년 지난 외교 대화기록은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지겠지만 오늘날 외교에 있어서는 큰 가치가 없다. 아무도 아이젠하워 시대의 대화나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 대화기록을 가지고 현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의 이면을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언론들은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를 부시 41, 부시 43로 표현하지만 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정책의 유사성 보다는 차이를 대비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체제 수립이후 김Ⅰ세, 김Ⅱ세 단 2명의 부자에 의해 통치됐을 뿐이며 기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안보적 이슈와 핵무기 추구에 있어 놀랄만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구 소련연방 국가들로부터 핵무기 제조 기술을 획득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됐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1963년 동독 대사는 구 소련연방 대사에게 “북한이 핵무기에 관한한 무슨 정보라도 찾으려고 혈만이 돼 있다”고 전했다. 또 당시 북한에서 근무하고 있던 구소련의 우라늄 전문가는 “북한은 대규모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정권은 계속해서 구소련에 핵발전소를 건설을 재촉했다. 소련은 이것이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 의심했다.
1976년 소련연방이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핵기술 이전 요구를 거절하자 화가 난 북한은 ‘비우호국과 인접한 북한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소련을 비난했다.
구소련 지도부는 김일성 정권에게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는 것이 북한에 이득이 된다고 설득해보기도 했다.
1969년 헝가리 대사의 북한에 보내는 전보에 따르면 구소련 외교관들은 북한에게 일본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타진했다. 그러자 북한은 평소와는 달리 핵확산금지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의 내정간섭 우려하는 ‘민족주의적’ 태도 = 이번에 밝혀진 문서들은 김일성의 소련과 중국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동안 소련연방 지도자인 조제프 스탈린은 북한이 미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되고 있는데도 소련 공군의 역할을 극히 제한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 소련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했다.
중국이 북한의 형제와 같은 공산국가며 한국전에서 북한을 도왔지만 김일성은 중국왕실이 한반도를 지배한 역사에 매우 민감히 반응하고 중국이 북한 내부 정치에 개입할 것을 우려하는 ‘민족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공산주의가 국제적으로 전성기를 누릴 당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현재 중국이 북한의 핵프로그램 포기하도록 권유 혹은 강요하는 부시 행정부의 전략 차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김일성이 우려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러시아 문서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북한에 대해 스탈린 격하 정책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일성은 1956년 10월 헝가리 민중봉기로 소련 정부의 정신이 온통 헝가리로 쏠렸을 때서야 소련 지도자가 부추긴 심각한 정치적 도전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북한은 중-미간 관계회복과 소련연방의 몰락,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붕괴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배신감은 북한으로 하여금 안보를 위해서는 공산국가를 포함한 어떤 다른 나라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끔 했다.

◆핵무기 위협의 핵심배경은 체제 생존 = 이 정보가 북한의 정책 형성의 전망과 태도를 대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다’다. 외부로부터 고립되고 내부적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북한의 전략적 입장을 결정짓는 조건들은 1994년 김정일이 정권을 이은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김일성 숭배의식은 그의 아들인 김정일에까지 영향력을 미쳤으며 권력 계승을 지나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강력한 힘의 계승은 북한의 과거가 얼마나 현재에까지 계속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인가. 새로운 정보들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 뒤에 숨어있는 핵심 동기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바로 체제의 생존이다.
약 50년 전, 김일성은 미국의 의도에 대해 통렬히 비난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로 지목한 데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이 두려움과 호전성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체제 전복과 정권의 태도 변화 사이에서 방황하는 미국 =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의 복합적 메시지를 두고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권을 교체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단지 정권의 태도만 변화시키기를 원하는가.
미국 관리들의 성명들에서 우리는 둘 모두를 읽을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동안 김정일은 이참에 분명히 미국이 북한까지 공습해 정권을 해체할 것이라 굳게 믿고 50일 동안 지하 벙커에 몸을 감췄다.
새로이 밝혀진 이번 문서들은 북한이 그들의 핵 인프라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단순한 ‘핵확산 방지행위’로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북한의 정권을 몰락하게 하는 ‘전면전’으로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북한 정권이 곧 붕괴될 위험에 있다는 가정이나 헛된 희망에 근거해 접근할 수 없다.
내부적 경제 문제와 기아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인하고 끈질기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가 아무리 북한정권의 생존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게 북한 정권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신뢰할 수 있는 보장을 해 주는 것이다.
번역·정리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기고문의 바탕이 된 자료는 http://wilsoncenter.org/cwihp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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