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문의 후손으로 상하이에서 태어나 정계에 입문, 국회의원과 장관직·인수위원장과 국정원장까지…. 81년 종로구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을 때부터 따지면 정치와 연을 가지고 살아온 게 20년 세월은 족히 넘는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시간이니 이 정도면 정치를 바라보고 인생을 바라보는 관조섞인 혜안이 생길 만하다. 이종찬 전국정원장에겐 바로 그런 류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이 전원장을 만나 최근의 근황과 정국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어른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할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늙은이 잔소리 정도로 취급할 일도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새기면서….
◆남이 못할 때 국민목숨 살리는 게 정보기관 몫 = 아직도 전국정원장으로 불리는 그이기 때문에 최근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고 국민을 감시하자는 건 아니죠. 내가 국정원장할 때 (비정치적 방향으로) 상당히 개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국정원을 너무 무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10월 6일, 케네스 버글이라는 영국 사람이 이라크 알카에다에게 납치됐습니다. 이때 영국 정보기관이 총동원됐는데 당시 카다피 대통령 아들이 영국에 유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내곤 그 사람을 설득했죠. 결국 그 아들이 아버지한테 가서 말했고, 아버지는 강경파한테 버글을 죽이지 말라고 했어요. 알 카에다가 죽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자 영국쪽에서 그 남자는 영국 사람이 아니고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여권도 (아일랜드 여권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왔거든요. 그게 정보기관이 하는 일이에요. 그거 어떤 시각에서 보면 불법일 수도 있는 것인데 정보기관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이 전원장이 보기에 지금의 국정원은 ‘개혁’이라는 것을 거쳐서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났다기보다 새로운 관료집단으로 커가고 있다. 국정원의 권위주의는 해체시키고 해외정보를 강화하겠다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국정원 사람들에게 이라크에 가라고 하면 내가 왜 가느냐고 합니다. 젊음을 그 쪽에서 불태울 수 있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무슨 조직을 뜬구름처럼 만들고 경험있는 사람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이건 무능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해체해버리는 게 낫습니다.”
사실 이 전원장은 고영구 전원장이 취임하기 전에도 이런 비슷한 충고를 해주었다. 김승규 신임원장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권력 = 이 전원장은 정치인생이 긴 만큼 그가 흥망성쇠를 바라본 권력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특히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집안 내력 때문에 권력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은 편이었다. 최근 벌써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에게 권력과 레임덕에 대해 물었다. 는 “레임덕의 시초는 정권 실세들의 부패”라고 했다.
“DJ 때 보면 정권 실세들이 제일 먼저 부패와 유착이 되고 권한을 행사하고 뭐든지 좌지우지 하는 자의적인 것이 생기면서부터 레임덕이 옵디다. 그 때 한참 권노갑씨가 어쩌고, 박지원씨가 어쩌고 하는 말이 많았죠. 결국 권력실세의 타락이 레임덕의 시초라고 보면 됩니다. 계속해서 레임덕이 오는 텀이 빨라지고 있는데 권력실세의 타락이 빨라졌다고도 볼 수 있고 5년 단임제의 한계가 좀 더 빨리 드러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레임덕일까. 노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시작할 때부터 레임덕이었다’고 말했지만 노 대통령이 말한 레임덕의 뜻은 집권당의 힘이 처음부터 약해서 일이 제대로 안됐다는 의미였다. 이 전원장은 거기에 대해선 이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광재는 뭐요. 행담도가 뭐고.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 아닙니까. 탄핵 때문에 빈 집에 소가 들어왔다고 그래서 흥청망청하고 잔치를 벌여라 하면서 나온 일이라고 봐야죠. 문제는 레임덕이 오면 분열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너는 왜 많이 먹냐 적게 먹냐 싸우게 되고, 아부하는 놈은 많이 생기고 바깥에서 욕하는 사람도 생겨나죠. 결국 동심원이 커지면서 지지세력이 분열되는데 노 대통령이 그런 길을 걸을까 걱정입니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고 다잡고 하면 레임덕이 아니고 그냥 밀고 나가면 정말 레임덕이 된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우중씨는 경제쓰나미에 공중분해 = 김우중 전대우회장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DJ 시절 일부 언론에선 당시 잘나가던 김우중씨의 든든한 정치적 그늘이 바로 이종찬 전국정원장이라고 할 정도로 김씨와 이 전원장의 사이는 돈독했다. 최근 김 씨의 귀국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우중씨는 제 죽마고우이고 김씨 때문에 가슴이 아픈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IMF는 경제 쓰나미였는데 김씨는 그것에 휩쓸려서 공중분해가 됐습니다. 내가 바라는 건 일단 나가 있지를 말았어야 옳았다는 것이고, 나갔다가도 자기 부하들이 재판받는다 하면 들어와서 나를 처벌해라 했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지금처럼 코너로 몰리지 않았을텐데 ….”
◆선진화포럼 만들 것 = 이 전원장은 요즘 국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한국경제 및 선진화를 논할 수 있는 ‘한국선진화 포럼’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 경제가 아직도 정부가 앞장서는 식인데 시장경제를 올바르게 정착시켜서 올바른 국가정책도 제시, 기업이 앞장서게 만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이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 진념 전 장관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남북문제를 3화주의(세계평화, 민족화해, 국민화합)의 관점에서 연구한 책도 쓸 준비를 하고 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사진 이의종 기자
오랜만에 이 전원장을 만나 최근의 근황과 정국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어른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할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늙은이 잔소리 정도로 취급할 일도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새기면서….
◆남이 못할 때 국민목숨 살리는 게 정보기관 몫 = 아직도 전국정원장으로 불리는 그이기 때문에 최근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고 국민을 감시하자는 건 아니죠. 내가 국정원장할 때 (비정치적 방향으로) 상당히 개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국정원을 너무 무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10월 6일, 케네스 버글이라는 영국 사람이 이라크 알카에다에게 납치됐습니다. 이때 영국 정보기관이 총동원됐는데 당시 카다피 대통령 아들이 영국에 유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내곤 그 사람을 설득했죠. 결국 그 아들이 아버지한테 가서 말했고, 아버지는 강경파한테 버글을 죽이지 말라고 했어요. 알 카에다가 죽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자 영국쪽에서 그 남자는 영국 사람이 아니고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여권도 (아일랜드 여권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왔거든요. 그게 정보기관이 하는 일이에요. 그거 어떤 시각에서 보면 불법일 수도 있는 것인데 정보기관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이 전원장이 보기에 지금의 국정원은 ‘개혁’이라는 것을 거쳐서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났다기보다 새로운 관료집단으로 커가고 있다. 국정원의 권위주의는 해체시키고 해외정보를 강화하겠다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국정원 사람들에게 이라크에 가라고 하면 내가 왜 가느냐고 합니다. 젊음을 그 쪽에서 불태울 수 있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무슨 조직을 뜬구름처럼 만들고 경험있는 사람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이건 무능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해체해버리는 게 낫습니다.”
사실 이 전원장은 고영구 전원장이 취임하기 전에도 이런 비슷한 충고를 해주었다. 김승규 신임원장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권력 = 이 전원장은 정치인생이 긴 만큼 그가 흥망성쇠를 바라본 권력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특히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집안 내력 때문에 권력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은 편이었다. 최근 벌써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에게 권력과 레임덕에 대해 물었다. 는 “레임덕의 시초는 정권 실세들의 부패”라고 했다.
“DJ 때 보면 정권 실세들이 제일 먼저 부패와 유착이 되고 권한을 행사하고 뭐든지 좌지우지 하는 자의적인 것이 생기면서부터 레임덕이 옵디다. 그 때 한참 권노갑씨가 어쩌고, 박지원씨가 어쩌고 하는 말이 많았죠. 결국 권력실세의 타락이 레임덕의 시초라고 보면 됩니다. 계속해서 레임덕이 오는 텀이 빨라지고 있는데 권력실세의 타락이 빨라졌다고도 볼 수 있고 5년 단임제의 한계가 좀 더 빨리 드러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레임덕일까. 노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시작할 때부터 레임덕이었다’고 말했지만 노 대통령이 말한 레임덕의 뜻은 집권당의 힘이 처음부터 약해서 일이 제대로 안됐다는 의미였다. 이 전원장은 거기에 대해선 이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광재는 뭐요. 행담도가 뭐고.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 아닙니까. 탄핵 때문에 빈 집에 소가 들어왔다고 그래서 흥청망청하고 잔치를 벌여라 하면서 나온 일이라고 봐야죠. 문제는 레임덕이 오면 분열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너는 왜 많이 먹냐 적게 먹냐 싸우게 되고, 아부하는 놈은 많이 생기고 바깥에서 욕하는 사람도 생겨나죠. 결국 동심원이 커지면서 지지세력이 분열되는데 노 대통령이 그런 길을 걸을까 걱정입니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고 다잡고 하면 레임덕이 아니고 그냥 밀고 나가면 정말 레임덕이 된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우중씨는 경제쓰나미에 공중분해 = 김우중 전대우회장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DJ 시절 일부 언론에선 당시 잘나가던 김우중씨의 든든한 정치적 그늘이 바로 이종찬 전국정원장이라고 할 정도로 김씨와 이 전원장의 사이는 돈독했다. 최근 김 씨의 귀국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우중씨는 제 죽마고우이고 김씨 때문에 가슴이 아픈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IMF는 경제 쓰나미였는데 김씨는 그것에 휩쓸려서 공중분해가 됐습니다. 내가 바라는 건 일단 나가 있지를 말았어야 옳았다는 것이고, 나갔다가도 자기 부하들이 재판받는다 하면 들어와서 나를 처벌해라 했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지금처럼 코너로 몰리지 않았을텐데 ….”
◆선진화포럼 만들 것 = 이 전원장은 요즘 국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한국경제 및 선진화를 논할 수 있는 ‘한국선진화 포럼’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 경제가 아직도 정부가 앞장서는 식인데 시장경제를 올바르게 정착시켜서 올바른 국가정책도 제시, 기업이 앞장서게 만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장’이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 진념 전 장관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남북문제를 3화주의(세계평화, 민족화해, 국민화합)의 관점에서 연구한 책도 쓸 준비를 하고 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사진 이의종 기자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