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쟁력엔 경쟁만한 보약이 없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와 소니가 2조1000억원을 공동 투자해 액정표시장치(LCD) 합작사인 ‘S-LCD주식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외 관련업계는 이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특히 일본열도에선 소니가 일본의 LCD 생산업체들을 외면하고 삼성과 손을 잡았다며 불편해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곧이어 일본의 히타치와 마쓰시타는 LCD패널을 공동생산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한국 LCD산업의 세계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LCD산업의 종주국은 원래 일본이었다. 한국보다 10여년이나 앞서 기술개발에 나선 일본은 이미 70년대부터 LCD산업에 손을 댔다. 샤프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후지츠 미츠비시 NEC 등 세계적인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첨단기술을 앞세워 LCD시장 선점에 몰두했다.
우리나라가 LCD산업에 뛰어든 것은 1987년.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LCD에 관한 첫 연구를 시작해 8년이 지난 95년도 첫 제품을 출시했다.
일본은 2001년까지 LCD산업에서 세계 최고 지위를 누려왔다. 그때까지 세계 LCD시장은 주로 노트북용 화면이 중심이었다.
2002년부터 시장상황은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처음으로 세계시장의 1·2위에 나란히 올라선 것이다. 이는 국내업체들이 2000년 4세대(15인치 모니터용) 생산라인과 2002년 5세대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LCD 시장점유율은 44.2%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 39.2%, 일본 16.5% 순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이 LCD시장에서 일본을 이긴 이유에 대해 수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기 꺼리는 일본과 달리 국내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생산라인 확충과 연구개발에 자금을 쏟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을 눈여겨보면 국내 LCD업체들이 수십년간 TV 브라운관 등 디스플레이사업을 하면서 얻은 기술적 자신감과 국내 업체간 벌여온 선의의 경쟁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또 전기·전자 등 연관사업을 함께 수행하면서 터득한 연구개발 경험도 일본을 이기는데 큰 몫을 했다. 여기에 국내업체간 끝없이 벌여온 선의의 경쟁도 한국 업체들의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에 한몫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벌여온 경쟁은 생산라인 투자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마케팅, 표준화 등 전 영역에 걸쳐 이뤄졌다”며 “양사는 어느 한순간에도 경쟁사에 뒤쳐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을 누른 또 다른 대표적인 산업분야는 조선업종이다.
1980년대까지도 세계 조선시장은 일본이 주도해왔다. 80년말까지만 해도 일본은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 같은 시장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였다. 우리나라가 93년 일본의 33.3% 점유율을 앞질러 36.7%를 기록했다. 이후 일본과 각축전을 벌이다가 99년엔 40.9%로 일본의 30.30%를 눌렀으며, 2000년 이후 일본과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7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1973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완공을 필두로 주요 대기업들이 대형 조선시설을 건설해 조선업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선은 후진성을 완전히 탈피해 일약 국제적 규모로 성장했다.
1975년 수리조선 전문인 현대미포조선이 설립됐고, 1978년 대한조선공사는 옥포에 초대형 제1도크를 완공했으나 후에 대우그룹에 매각했으며, 삼성그룹은 1977년에 우진조선소를 인수, 1979년 1도크를 완공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1973년 조선소 준공과 더불어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VLCC)을 건조, 우리나라 조선업은 본격적으로 세계 조선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산업의 급성장에 대해 사업초기부터 세계시장을 무대로 경쟁을 벌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줄곧 내수시장에 의존해온 일본의 경우 굳이 세계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업환경은 국내업체들에게 대규모 투자와 함께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1400명의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고수준”이라며 “발주사의 어떤 설계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도록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개발, 쏘나타에 탑재한 쎄타엔진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로 꼽힌다.
현대차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합작법인인 GEA(Global Engine Alliance LLC)를 미국에 설립했고, 두 회사는 기술이전 대가로 총 5700만 달러(약 740억원)의 로열티를 받았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올해 말부터 쎄타엔진의 양산을 시작하며 승용, MPV, SUV 등의 차량에 2000/2400cc 엔진을 순차적으로 탑재하게 된다. 미쓰비시도 연내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강경흠 이재호 기자 khkang@naeil.com
지난해 3월 삼성전자와 소니가 2조1000억원을 공동 투자해 액정표시장치(LCD) 합작사인 ‘S-LCD주식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외 관련업계는 이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특히 일본열도에선 소니가 일본의 LCD 생산업체들을 외면하고 삼성과 손을 잡았다며 불편해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곧이어 일본의 히타치와 마쓰시타는 LCD패널을 공동생산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한국 LCD산업의 세계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LCD산업의 종주국은 원래 일본이었다. 한국보다 10여년이나 앞서 기술개발에 나선 일본은 이미 70년대부터 LCD산업에 손을 댔다. 샤프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후지츠 미츠비시 NEC 등 세계적인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첨단기술을 앞세워 LCD시장 선점에 몰두했다.
우리나라가 LCD산업에 뛰어든 것은 1987년.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LCD에 관한 첫 연구를 시작해 8년이 지난 95년도 첫 제품을 출시했다.
일본은 2001년까지 LCD산업에서 세계 최고 지위를 누려왔다. 그때까지 세계 LCD시장은 주로 노트북용 화면이 중심이었다.
2002년부터 시장상황은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처음으로 세계시장의 1·2위에 나란히 올라선 것이다. 이는 국내업체들이 2000년 4세대(15인치 모니터용) 생산라인과 2002년 5세대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LCD 시장점유율은 44.2%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 39.2%, 일본 16.5% 순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이 LCD시장에서 일본을 이긴 이유에 대해 수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기 꺼리는 일본과 달리 국내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생산라인 확충과 연구개발에 자금을 쏟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을 눈여겨보면 국내 LCD업체들이 수십년간 TV 브라운관 등 디스플레이사업을 하면서 얻은 기술적 자신감과 국내 업체간 벌여온 선의의 경쟁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또 전기·전자 등 연관사업을 함께 수행하면서 터득한 연구개발 경험도 일본을 이기는데 큰 몫을 했다. 여기에 국내업체간 끝없이 벌여온 선의의 경쟁도 한국 업체들의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에 한몫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벌여온 경쟁은 생산라인 투자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마케팅, 표준화 등 전 영역에 걸쳐 이뤄졌다”며 “양사는 어느 한순간에도 경쟁사에 뒤쳐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을 누른 또 다른 대표적인 산업분야는 조선업종이다.
1980년대까지도 세계 조선시장은 일본이 주도해왔다. 80년말까지만 해도 일본은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 같은 시장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였다. 우리나라가 93년 일본의 33.3% 점유율을 앞질러 36.7%를 기록했다. 이후 일본과 각축전을 벌이다가 99년엔 40.9%로 일본의 30.30%를 눌렀으며, 2000년 이후 일본과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7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1973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완공을 필두로 주요 대기업들이 대형 조선시설을 건설해 조선업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선은 후진성을 완전히 탈피해 일약 국제적 규모로 성장했다.
1975년 수리조선 전문인 현대미포조선이 설립됐고, 1978년 대한조선공사는 옥포에 초대형 제1도크를 완공했으나 후에 대우그룹에 매각했으며, 삼성그룹은 1977년에 우진조선소를 인수, 1979년 1도크를 완공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1973년 조선소 준공과 더불어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VLCC)을 건조, 우리나라 조선업은 본격적으로 세계 조선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산업의 급성장에 대해 사업초기부터 세계시장을 무대로 경쟁을 벌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줄곧 내수시장에 의존해온 일본의 경우 굳이 세계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업환경은 국내업체들에게 대규모 투자와 함께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1400명의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고수준”이라며 “발주사의 어떤 설계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도록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개발, 쏘나타에 탑재한 쎄타엔진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로 꼽힌다.
현대차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합작법인인 GEA(Global Engine Alliance LLC)를 미국에 설립했고, 두 회사는 기술이전 대가로 총 5700만 달러(약 740억원)의 로열티를 받았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올해 말부터 쎄타엔진의 양산을 시작하며 승용, MPV, SUV 등의 차량에 2000/2400cc 엔진을 순차적으로 탑재하게 된다. 미쓰비시도 연내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강경흠 이재호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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