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마다 재판 운영 편차 크다”
22일 서울고등법원 판사 104명 대토론회 … “곧 ‘권고적 기준’ 마련”
지역내일
2005-08-26
(수정 2005-08-26 오후 3:35:17)
법원은 지난 2001년 3월 1일부터 민사소송재판의 심리방식을 대폭 바꿨다. 이른바 ‘신모델’로 불리는 이 제도는 50년 동안의 재판방식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정에 10회 이상 출석하던 것이 2∼3회로 줄고 한 달 간격으로 있던 재판이 일주일로 줄어드는 등 재판의 간소화와 신속화가 빠르게 정착됐다.
하지만 시행 4년째를 맞으면서 법관마다 이 제도를 다르게 운영하는 등 편차를 보이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법원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지난 22일에 서울고등법원 판사 104명이 모여 편차를 줄이기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편집자 주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은 법원장을 포함, 민사부 부장판사 26명과 배석판사 52명, 예비판사 25명이 참석하는 ‘민사재판의 적정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민사부 판사들이 모두 모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구욱서 부장판사는 ‘민사신모델 시행 상의 편차 해소방안’을 주제로 재판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변론준비기일 지정부터 차이 = 구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임의로 선택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해서는 소송당사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는 재판받는 당사자에게 큰 혼란을 줘 재판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사신모델’의 경우 원칙적으로 모든 사건이 변론준비기일을 거치도록 돼 있다. 변론준비기일은 법정에서 재판을 하기에 앞서 소송 당사자들과 판사가 한 곳에 모여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 기간을 거치고 나면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진행은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준비기일 지정 비율은 보면 가장 많은 재판부가 사건의 81.3%인데 반해 가장 적은 곳은 23.3%에 그치는 등 많은 차이를 나타냈다.
즉 같은 사건이라도 재판부에 따라 준비기일을 거치지 않고 곧장 법정에서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변론준비기일 회수 역시 재판부마다 달라 2.67회부터 4.58회 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간할당·행정조치도 달라 = 서울고등법원 24개 민사재판부 중 변론준비기일을 매주 1번씩 여는 재판부는 12개다. 반면 격주로 여는 재판부 10개다.
1주일에 한번씩 기일을 잡는 재판부는 보통 6~1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이는 격주로 기일을 잡는 재판부(11~15건)보다 사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24개 중 17개 재판부가 30분 단위로 통상 2~4건, 간혹 5~6건의 사건을 다루는 반면, 7개 재판부는 1시간 단위로 3~6건을 처리하는 등 배당 시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느 재판부로 가느냐에 따라 내 사건에 할당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초동의 김 모 변호사는 “판사에 따라 매정하게 준비기일을 마치는 경우가 있다”며 “때론 그게 필요할 때도 있지만 충분히 입장정리가 안된 상황에서는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쌍방의 주장에 부족함이 있을 때 이를 보충하기 위해 자료를 내라고 재판부가 발송하는 ‘석명준비명령’발송도 재판부마다 제각각이다. 기록 인계 후 즉시 보내는 재판부가 1곳인 반면, 기록인계 후 1주일 내 (4개 재판부) 심지어는 기록인계 후 3주일 내(6개 재판부)에 보내는 곳도 있는 등 편차를 보였다.
◆‘소송지연땐 과감히 불이익’ 판사간 의견 차이 = 쌍방이 공방을 벌이는 민사소송에서는 공격과 방어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소송진행에 문제가 없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론을 펴야하는 쪽에서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소송이 한없이 길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신모델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권리를 잃는다는 의미의 ‘실권효’ 규정을 두고 있다. 불성실한 상대방의 경우 신청을 각하해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법정에서 ‘실권효’를 이유로 ‘각하’결정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구욱서 부장판사는 “당사자의 무성의를 차단해 신속한 심리를 하겠다는 것이 신법의 입법취지”라며 “그로 인해 당사자 본인이 입는 손해는 당사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관설문조사 결과 부장판사 39명 중 26명(66%), 판사의 경우 51명 중 33명(65%)의 법관이 실권효 규정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한 반면 나머지 판사들은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절차에서 미흡하다고 해서 결론을 바꿀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활발한 구두변론 미흡 = 신모델은 ‘글로 하는 절차’인 서면공방과 ‘말로 하는 절차’인 변론준비기일·변론기일로 나눠 진행된다. 신모델 이전 재판 방식이 서면 중심의 ‘글로 하는 재판’ 이라면 신모델은 ‘말로 하는 재판’이 중심이다.
하지만 신모델이 시행된 이후에도 구두변론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법관과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도 구두변론에 익숙하지 않고 시간상의 제약과 사건수의 증가 등이 그 원인이다. 판사들도 구두변론 활성화에 소극적이다. 법관설문조사에서 구두변론 활성화에 적극적인 부장판사가 39명 중 24명(61%)이고 판사는 대상자 51명 중 35(69%)인 반면 나머지 판사들은 소극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울고법 모 판사는 “구두변론이 활성화되면 일반 방청객도 사건의 윤곽을 알 수 있게 되고 당사자는 그 진행결과를 보아 승패 여부도 예측할 수 있어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진다는 구 부장판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판사들이 실천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형기 수석부장판사도 “신모델은 국민들의 사법신뢰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위원회를 구성, 이날 나온 토론회 의견을 중심으로 ‘권고적 기준’을 마련해 재판부간 편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권고적 기준’은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적용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정에 10회 이상 출석하던 것이 2∼3회로 줄고 한 달 간격으로 있던 재판이 일주일로 줄어드는 등 재판의 간소화와 신속화가 빠르게 정착됐다.
하지만 시행 4년째를 맞으면서 법관마다 이 제도를 다르게 운영하는 등 편차를 보이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법원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지난 22일에 서울고등법원 판사 104명이 모여 편차를 줄이기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편집자 주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은 법원장을 포함, 민사부 부장판사 26명과 배석판사 52명, 예비판사 25명이 참석하는 ‘민사재판의 적정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민사부 판사들이 모두 모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구욱서 부장판사는 ‘민사신모델 시행 상의 편차 해소방안’을 주제로 재판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변론준비기일 지정부터 차이 = 구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임의로 선택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해서는 소송당사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는 재판받는 당사자에게 큰 혼란을 줘 재판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사신모델’의 경우 원칙적으로 모든 사건이 변론준비기일을 거치도록 돼 있다. 변론준비기일은 법정에서 재판을 하기에 앞서 소송 당사자들과 판사가 한 곳에 모여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 기간을 거치고 나면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진행은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준비기일 지정 비율은 보면 가장 많은 재판부가 사건의 81.3%인데 반해 가장 적은 곳은 23.3%에 그치는 등 많은 차이를 나타냈다.
즉 같은 사건이라도 재판부에 따라 준비기일을 거치지 않고 곧장 법정에서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변론준비기일 회수 역시 재판부마다 달라 2.67회부터 4.58회 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간할당·행정조치도 달라 = 서울고등법원 24개 민사재판부 중 변론준비기일을 매주 1번씩 여는 재판부는 12개다. 반면 격주로 여는 재판부 10개다.
1주일에 한번씩 기일을 잡는 재판부는 보통 6~1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데 이는 격주로 기일을 잡는 재판부(11~15건)보다 사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24개 중 17개 재판부가 30분 단위로 통상 2~4건, 간혹 5~6건의 사건을 다루는 반면, 7개 재판부는 1시간 단위로 3~6건을 처리하는 등 배당 시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느 재판부로 가느냐에 따라 내 사건에 할당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초동의 김 모 변호사는 “판사에 따라 매정하게 준비기일을 마치는 경우가 있다”며 “때론 그게 필요할 때도 있지만 충분히 입장정리가 안된 상황에서는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쌍방의 주장에 부족함이 있을 때 이를 보충하기 위해 자료를 내라고 재판부가 발송하는 ‘석명준비명령’발송도 재판부마다 제각각이다. 기록 인계 후 즉시 보내는 재판부가 1곳인 반면, 기록인계 후 1주일 내 (4개 재판부) 심지어는 기록인계 후 3주일 내(6개 재판부)에 보내는 곳도 있는 등 편차를 보였다.
◆‘소송지연땐 과감히 불이익’ 판사간 의견 차이 = 쌍방이 공방을 벌이는 민사소송에서는 공격과 방어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소송진행에 문제가 없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론을 펴야하는 쪽에서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소송이 한없이 길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신모델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권리를 잃는다는 의미의 ‘실권효’ 규정을 두고 있다. 불성실한 상대방의 경우 신청을 각하해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법정에서 ‘실권효’를 이유로 ‘각하’결정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구욱서 부장판사는 “당사자의 무성의를 차단해 신속한 심리를 하겠다는 것이 신법의 입법취지”라며 “그로 인해 당사자 본인이 입는 손해는 당사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관설문조사 결과 부장판사 39명 중 26명(66%), 판사의 경우 51명 중 33명(65%)의 법관이 실권효 규정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한 반면 나머지 판사들은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절차에서 미흡하다고 해서 결론을 바꿀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활발한 구두변론 미흡 = 신모델은 ‘글로 하는 절차’인 서면공방과 ‘말로 하는 절차’인 변론준비기일·변론기일로 나눠 진행된다. 신모델 이전 재판 방식이 서면 중심의 ‘글로 하는 재판’ 이라면 신모델은 ‘말로 하는 재판’이 중심이다.
하지만 신모델이 시행된 이후에도 구두변론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법관과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도 구두변론에 익숙하지 않고 시간상의 제약과 사건수의 증가 등이 그 원인이다. 판사들도 구두변론 활성화에 소극적이다. 법관설문조사에서 구두변론 활성화에 적극적인 부장판사가 39명 중 24명(61%)이고 판사는 대상자 51명 중 35(69%)인 반면 나머지 판사들은 소극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울고법 모 판사는 “구두변론이 활성화되면 일반 방청객도 사건의 윤곽을 알 수 있게 되고 당사자는 그 진행결과를 보아 승패 여부도 예측할 수 있어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진다는 구 부장판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판사들이 실천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형기 수석부장판사도 “신모델은 국민들의 사법신뢰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위원회를 구성, 이날 나온 토론회 의견을 중심으로 ‘권고적 기준’을 마련해 재판부간 편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권고적 기준’은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적용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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