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수사의 현주소 - 중

‘자백 위주’에서 ‘과학수사’로 전환 중

지역내일 2005-08-31
지난 95년 6월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7층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치과의사인 여성과 한살 된 딸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이 모씨는 살인혐의로 기소됐고 1심 사형, 항소심 무죄, 대법원 유죄 취지 파기환송 등을 선고받았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재판은 다시 고법에서 무죄 선고와 대법원 확정판결로 8년 만에 종결됐다. 대법원 최종판결이 2003년이었으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이씨는 오히려 8년 동안 파렴치한 살인범으로 몰렸던 것이다.
◆손등에 물 떨어뜨려 온도 추정 = 이 사건의 재판에서 최대 쟁점은 사망시간이었다. 사망시간이 이씨 출근시간인 오전 7시 이전이면 이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고 7시 이후면 제 3의 인물이 범인이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빈약했다.
사망시간 추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주검의 직장 온도를 재지 않은데다 주검이 담겨져 있던 욕조물 온도도 며칠이 지난 후에야 당시 수사관 손등에 물을 떨어뜨려 보고 추정했다. 심지어 감식반이 촬영한 사진도 사건현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고 화재를 재연하기도 했지만 오차가 너무 컸다.
결국 이 사건에서 검찰과 경찰은 제대로 된 과학수사 없이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경기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화성연쇄살인사건)도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
10건으로 추정되는 연쇄살인에 11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명 모(당시 21세)씨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등 오명을 남겼으며 공소시효 만료가 가까워진 현재까지 해결 못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반면 유력한 용의자였던 윤 모(당시 20세)씨를 조사하면서 경찰은 이례적으로 일본 경시청에 DNA검사를 의뢰했으며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검사 관련 장비들이 들여온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한국경찰의 수사가 ‘선 자백, 후 증거 취득’ 구조였다면 과학수사는 ‘선 증거, 후 자백 취득’을 뜻한다”며 “일선 형사들 사이에 농담처럼 통용되는 ‘과학수사’라는 용어가 자백을 중심으로 한 ‘가학(?)수사’를 의미하는 것은 경찰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과학수사는 의학과 물리학, 전자공학 등의 자연과학은 물론 심리학, 사회학, 통계학 등 사회과학을 활용해 수사의 모든 단계에서 증거를 수집, 분석해 범인을 식별하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특히 20세기 초 프랑스의 에드몽 로카르 박사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고 한 말은 과학수사의 기본이 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현장에 단서를 남기기 마련이고 현장에 있던 어떤 것을 지니고 돌아가기 때문이 이를 찾는 것이 과학수사의 출발이 된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수사라고 하면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학만을 연상하기 쉬운데 다른 분야도 과학수사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범죄현장에 나타난 특징들을 토대로 범인의 성격이나 심리, 직업, 가정환경 등 개인적인 특성을 추적하는 ‘크리미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은 과학수사에 심리학과 사회학을 접목한 경우다.
◆시민 협력해야 범죄해결 쉬워져 = 국민의 요구와 경찰의 노력이 결합되면서 최근 과학수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날치기 피의자를 검거하면서 흉기를 쌌던 신문지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 범행현장과 도주로를 뒤진 끝에 찾아낸 신문지에 피의자의 지문이 7개나 나온 것이다.
신문지에서 지문을 찾아내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고도의 과학적 기법이 사용된다.
강원도 동해 군부대 총기탈취사건에서도 범행시간을 전후해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한 차량의 통행권을 확보, 지문을 찾은 것이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됐다.
92년 서적판매원이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 이후로 활용되기 시작된 DNA감식 기법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의 과학수사는 아직 한계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전히 과학수사를 위한 장비가 충분하지 못하고 전문교육을 받은 수사관도 부족하다. 부검을 전담하는 의사인 검시관 제도는 도입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수사에 대한 국민의식도 바뀌어야 할 대목이다.
“고인을 2번 죽인다”며 부검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사망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고인과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검결과는 사망과 범죄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정확한 사망통계를 통한 보건의료제도 발전에도 기여한다.
범행현장의 보존과 증거수집은 경찰 몫이지만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훼손하지 않고 범죄해결에도 협조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2001년 5월 서울에서 발생한 어린이 토막살인 사건 당시 범인이 피해 어린이의 주검 일부를 버렸던 여관에 출동했지만 여관 주인이 현장을 미리 청소한 바람에 증거를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다행히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범인을 검거했지만 현장을 훼손해 허탈했다”고 털어놨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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