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피린과 위안부 할머니

지역내일 2000-08-09
매년 8월만 돌아오면 남모르게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다.
종군위안부란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순결한 청춘을 짓밟혔던 우리네 할머니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마음놓고 얘기할 처지도 못된다.
아직도 그들이 받은 고통을 함께 하기에는 사회적 시선이 차갑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매월 70∼80만원 정도의 금액이 그들의 아픈 과거를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에 본지는 현재 부천지역에 거주중인 종군위안부 할머니(시에 따르면 부천에는 현재 5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한 분을 만나 현재 생활모습과 아픔을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8월7일 오전 10시경, 기자는 김순임 할머니(가명·79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드렸다.
오전 중에 만났으면 했는데 할머니는 오전에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오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다시 잡은 오후 약속 시간이 됐다.
빈손으로 찾아 뵙기엔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근처 가게에서 음료수와 할머니들이 좋아할 만한 주점부리를 골랐다.
김 할머니 댁은 중동 신시가지 내에 위치한 10평 남짓한 영구임대 아파트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고 계시던 할머니는 선풍기 방향을 기자에게 돌리고 음료수도 내 놓았다.
소개를 한 후 할머니의 건강을 묻자 대뜸 “판피린을 한 달에 세 박스씩 먹어요”라고 전한다. 감기약으로만 알고 있던 기자가 다시 묻자, 방안 한 구석에서 정말 한 박스를 꺼내 보여줬다. 예상한 대로 여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대구 출생인 김 할머니는 1938년 꽃다운 나이인 15세 때에 끌려가 10년이 지난 25세 때 귀국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할머니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 당시 입은 상처로 할머니는 29세 때 끝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수술한 후에도 생리 때만 돌아오면 그렇게 고통이 심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이 판피린을 먹으면 고통이 덜 해진다고 해서 처음 먹었던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이제는 아침에 잠을 깨서 한 병씩 먹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 들 정도라고 한다. 온 몸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김 할머니에게 유일한 진통제인 것이다.
할머니가 끌려간 곳은 중국 천진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덕현을 지나 또다시 차로 한시간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천진까지는 수많은 여인들이 함께 갔는데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소식을 사흘 뒤인 8월18일에 들었는데 그 사흘 동안에 위안부에 대한 독가스 학살이 있었다는 얘기를 (자신을 숨겨줬던 중국인 부부로부터)들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할머니는 얼마 전에 중국방송에도 이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하늘의 도움인지 전쟁이 끝날 무렵 당시 일본군 장교(할머니는 그를 유부대장이라고 불렀다)로부터 아는 중국인이 있으면 그리로 피하라는 얘기를 듣고 몸을 피했는데, 그 사이에 전쟁이 끝나고 학살이 자행됐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에서 김 할머니는 거의 혼자 지내고 있다. 이웃과 왕래를 자주 하거나 여느 노인들처럼 경로당을 찾지도 않는다. 귀국 후 할머니가 살아온 삶의 고통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친구처럼 지내는 강아지와 대부분의 친척이 살고 있는 일본에 가끔 왕래하는 것이 할머니 생활의 전부다. 2년 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3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집안에 있는 각종 약봉지가 할머니의 현재 상태를 대신 말해 주었다.
현재 김 할머니가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 비용은 생활안정지원금 60만원(국비50만원+도비10만원)에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교통비 등 15만원 정도가 전부다.
이 가운데 아파트 관리비 8만원과 가스비 전화세 전기세 등을 제외한 후 다시 약값, 병원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는 제대로 되는 지 의문이었다.
병원비의 경우 현대 아산재단의 중앙병원(풍납동 소재)을 가면 평생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너무 멀고 힘이 들어 다니질 못하고 지역에 있는 병원을 다닌다고 한다.
이는 결국 고스란히 할머니의 부담으로 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역사의 짐을 그분들만 지고 있는 듯 보였다.
취재가 끝난 후 극구 만류했는데도 할머니는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그분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할머니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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