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몰린 여당이 일단 문희상 체제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기로 했다. 26일 오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단 회의는 “문희상 의장을 중심으로 단합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차기대권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직간접으로 같은 목소리를 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론’을 접으면서 두달 가량 끌어오던 ‘대통령 정치’를 ‘일단 멈춤’ 상태로 정지시켰고, 여당도 내부 갈등 소지를 ‘봉합’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일단 범 여권의 물 위 흐름은 문희상-정세균 체제 중심의 정기국회 운영과 노 대통령의 경제·민생 챙기기가 연말까지 이어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물론 두 대권주자 진영과 당내 각 세력의 물밑 움직임은 크게 다르다. 앞으로 펼쳐질 정국상황이 유동적일 것이란 예측 아래 내년 이후를 준비하며 꿈틀거리고 있다.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여권내에서 대체로 동의하는 정국시나리오는 ‘대통령 정치와 대권정치의 긴장’ 가능성이다. 향후 정치일정이 여당의 패배 가능성이 높은 10·26재·보선, 김근태·정동영 장관 등의 연말연초 당 복귀, 내년 2~3월께 조기전당대회, 5월말 지방선거로 이어지면서 현직 대통령과 차기 주자간의 주도권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다.
범 여권을 계속 관리해가려는 노 대통령과 차기주자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대권주자들간의 입지 차이가 ‘대통령 정치’와 ‘대권정치의 충돌’로 이어질 시점이 다가올 것이란 얘기다.
25일 당 상임고문단 회의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런 상황을 예견한 문 의장 등 현 지도부가 그 시간과 강도를 완화하려는 포석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현 지도부가 기댈 수 있는 가장 큰 카드는 노 대통령의 정국구상이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은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백 교수의 책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탐독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연정론과는 다른 또다른 거대 담론을 구상중”이라며 “이 책이 모티브를 제공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내가 모색중인 ‘담론’에 비하면 개헌 문제는 한참 아래의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며 “정국을 관리·주도하려는 대통령의 거대 담론 제기는 내년 이후 정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부동산 정책 등 경제 챙기기에 나선 대통령의 행보는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노 대통령은 26일 여당 재경위 소속 의원들과 만나고, 27에는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연정론을 강하게 지지했던 여당의 한 의원은 “현재의 국정지지도로는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판단이더라”며 “일단은 정치적인 문제만 살핀 대통령에서 국민들을 생각하는 대통령으로 모양새가 바뀔 것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우선은 멀어진 민심을 되돌리고, 내년쯤 거대담론을 던져서 정국을 관리해 나가겠다는 게 대통령의 구상인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 실무진들은 현재 정치분야도 아니고, 부동산·조세·양극화 해소도 아닌 ‘제3의 국민관심사’를 발굴, 정책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목표 시기는 정기국회 중간이다.
청와대가 내년초 조기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과 접촉했던 범 친노그룹의 한 의원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조기 전대가 김근태·정동영 두 주자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40대 젊은 의원 중심으로 당 상임중앙위원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청와대가 조기 전대를 기점으로 여권의 권력축이 대권주자로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당내 친노직계·참정연 등을 내세워 ‘40대 양성론’을 견제구로 던질 것이란 얘기다. 이 의원은 김부겸 유시민 의원 등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차기 대권주자인 김근태·정동영 장관 진영은 표면상 조심스럽지만, 속내는 단호하다. 김 장관측의 한 인사는 “정 장관은 남북교류협력기금 예산 확보, 김 장관은 복지예산 확보와 국민연금 문제 등이 마무리돼야 당 복귀가 가능하다”며 “현실적으로 내년 1월초 전에는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양 진영은 내년 이후 정국구도를 여러 가지로 그리며 대응방향을 모색하는 등 비공식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은 내년초 조기전대가 이뤄질 경우, 두 주자가 정면대결을 벌이는 당권정치에 시동이 걸리고, 이는 곧 대권정치의 1단계가 될 것이란 예측에 동의하고 있다. 정 장관측의 한 인사는 “정 장관은 이미 방송인터뷰에서 ‘당이 어려우면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공개했고 정·부통령제도 언급했다”고 말해 연말연초 이후를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인사는 “10월 재·보선 결과와 경제상황, 대통령이 구상하는 정치일정 등이 종합적으로 나오면 상황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김 장관측도 마찬가지다. 앞의 인사는 “변수는 많지만, 당권정치로 시작될 ‘대권정치’와 ‘대통령 정치’가 긴장관계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며 “대권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담론과 메시지 선정 등 물밑 준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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