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일기,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하얀 추억

지역내일 2000-12-31
주부일기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하얀 추억

채 녹지 않은 눈 밭 위로 저녁 햇살은 금실을 풀어놓은 듯 하려한 연출로 하늘 공원에 축제를 열고 있지만, 한 견으로 숨어버린 그리움들은 눈 꽃 위로 박꽃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가슴 시린 바람은 12월의 예쁜 겨울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어 너무들 기뻐했지요. 이런 날은 무슨 좋은 일이 함박눈처럼 쏟아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몇 번씩 창 밖을 내다보면서 흥분과 설레임으로 부푼 가슴 어쩌지 못하고, 하루종일 집 지키는 마네킹이 되어 있었지만,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눈이 내려 준 것만 해도 내겐 축복이었으니까요. 철들려면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큰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새 천년 밀레니엄을 이제 며칠 후면 미완성으로 보내야 하는데, 눈 내린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1주일이 어느 새 후딱 지나버렸는지 모릅니다.
만나야 할 사람 그리고 못다 한 일들이 후회의 연속 속에 미련만 남아 마음 한 구석이 서운하게 느껴집니다. 늘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면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아 안타까움은 그 만큼 켜져만 갔었지요. 맞이할 새해에는 노란 후리지아꽃 향기 그윽한 그 산길을 우아하게 밟아야겠기에 오늘은 비가 왔으면 싶습니다. 산 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면 그대로도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이 어두움이 깊어지면서 스러진 별들 뒤로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반짝입니다. 또 다시 축제인가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12월의 끝자락에서 이별 연습을 하고 있는 마지막 포옹을 하얀 추억으로 만들려나 봅니다.
정정숙 리포터 jslju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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