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학자들에게 기록이전의 시대(선사시대)가 석기, 청동기, 철기로 나뉜다는 구분은 사뭇 낯선 것이었다. 당시의 사회와 견주어 볼 때, 가난한 사람들은 돌로 된 것을, 좀 더 나은 사람들은 청동이나 철기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논리적으로 보였다. ‘선사의 세 시대’이론을 대중화한 사람은 18세기 말의 덴마크인 크리스천 유겐센 톰센이었다. 고화폐 전문 수집가였던 그는 부유한 해운업자의 맏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돕다가 27살 때 덴마크 왕립골동품보관기구 책임자가 된다. 그는 아버지의 선박수리창에서 배웠던 상식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물건들을 세밀하게 분류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819년 개관한 그의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유물이 석기, 청동기, 철기로 구분돼 진열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이론을 받아 고대유물을 최초로 발굴한 이는 그의 제자 옌스 야콥 보우다. 15살에 톰센의 조수가 된 그는 휴일마다 유틀란트의 고대 분묘를 파헤쳐, 19살 되던 해인 1840년 덴마크 분묘나 토탄 지의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톰센의 세 시대 이론을 확인하는 글을 발표했다.
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18세 나이에 명저 <자발적 복종="">을 쓴다. 종교전쟁의 광기 속에서 그는 ‘왜 많은 국가에서 그 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전제정치를 참고 견디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인민이 자발적 복종을 통해 독재자의 폭정을 승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인들은 18살에 명저 펴내
연암 박지원은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그는 이미 18세 무렵에 양반사회의 위선을 질타하는 〈광문자전〉을 지었다.
어떻게 옛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조숙할 수 있었던 지에 관해 경탄해본 경험이 없었던가? 옛사람들의 뛰어난 능력에 탄복하고, 이제는 천재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 범상한 시대를 탓하고 만다면 그것으로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적자생존’의 진화론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어떤 시대를 고비로 갑자기 조숙함, 지적 성숙함이 확연히 사라진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다.
근대 이후 확립된 오늘의 의무교육제도가 ‘효율적’이라거나 ‘옳다’는 증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는 없을까? 옛날 제사장의 지위가 이랬을까 싶을 만큼, 오늘날의 의무교육이라는 제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놓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 수업을 받는 일과 학습하는 일을 혼동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을 혼동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기만 하면 그것이 생산적이라고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혹시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점 어디에서나 수십 권씩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스스로 학습하는 법’ 류의 책은 역설적으로 이런 병통이 이미 뿌리 깊이 진행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나 어떤 사전통보도, 교육도 받지 못한 채로 지구라는 별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때 이 별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고, 인간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알도록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돕고, 사는 동안 행복하게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든지 교육의 기본일 것이다.
의무교육기관은 직업학교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학교에서 정규 커리큘럼으로 배워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의 의무교육기관은 단지 초등직업학교, 중등직업학교, 고등직업학교일 뿐이다. 혹은 그렇게 부르기에도 부족하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우지 못해 기껏 모이면 폭탄주를 돌리는 것밖에 할 줄을 모르고,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혼자 있는 여유시간이 생기면 거의 정신분열이 걸릴 만큼 당황해 하고, 자식이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벽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근대교육이 낳은 자랑스러운 성과다. 열여덟이면 예나 지금이나 진짜로 어른이다.
박 태 웅
(주)엠파스 부사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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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년 프랑스의 사를라에서 태어난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불과 18세 나이에 명저 <자발적 복종="">을 쓴다. 종교전쟁의 광기 속에서 그는 ‘왜 많은 국가에서 그 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전제정치를 참고 견디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인민이 자발적 복종을 통해 독재자의 폭정을 승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인들은 18살에 명저 펴내
연암 박지원은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공부에 전념해, 경학·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그는 이미 18세 무렵에 양반사회의 위선을 질타하는 〈광문자전〉을 지었다.
어떻게 옛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조숙할 수 있었던 지에 관해 경탄해본 경험이 없었던가? 옛사람들의 뛰어난 능력에 탄복하고, 이제는 천재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 범상한 시대를 탓하고 만다면 그것으로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적자생존’의 진화론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어떤 시대를 고비로 갑자기 조숙함, 지적 성숙함이 확연히 사라진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다.
근대 이후 확립된 오늘의 의무교육제도가 ‘효율적’이라거나 ‘옳다’는 증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는 없을까? 옛날 제사장의 지위가 이랬을까 싶을 만큼, 오늘날의 의무교육이라는 제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놓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 수업을 받는 일과 학습하는 일을 혼동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을 혼동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기만 하면 그것이 생산적이라고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혹시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점 어디에서나 수십 권씩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스스로 학습하는 법’ 류의 책은 역설적으로 이런 병통이 이미 뿌리 깊이 진행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나 어떤 사전통보도, 교육도 받지 못한 채로 지구라는 별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때 이 별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고, 인간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알도록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돕고, 사는 동안 행복하게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든지 교육의 기본일 것이다.
의무교육기관은 직업학교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학교에서 정규 커리큘럼으로 배워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의 의무교육기관은 단지 초등직업학교, 중등직업학교, 고등직업학교일 뿐이다. 혹은 그렇게 부르기에도 부족하다.
커뮤니케이션을 배우지 못해 기껏 모이면 폭탄주를 돌리는 것밖에 할 줄을 모르고,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혼자 있는 여유시간이 생기면 거의 정신분열이 걸릴 만큼 당황해 하고, 자식이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벽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근대교육이 낳은 자랑스러운 성과다. 열여덟이면 예나 지금이나 진짜로 어른이다.
박 태 웅
(주)엠파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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