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편협한 한국 사회
동국대 강정구 교수 발언과 기고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미숙성과 편협성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일제의 압제에서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 대한민국 건국 57년, 한국전쟁 발발 55년을 넘긴 시점에 살고 있다. 환갑 나이에 이런 문제로 바글바글 끓다 못해, 검찰에 대한 법무장관 지휘권 행사까지 나왔다.
역사에 대한 한 개인의 소신 피력이 이런 파장을 일으킨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편협성과 배타성을 말해준다. 강 교수 발언은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관련 공직자의 생각도 아니고, 정책에 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그야말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 수준이었다. 그걸 국회에서 문제 삼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의견을 내고, 검찰과 법무부 견해가 엇갈려 헌정사상 처음인 법무장관 지휘권 발동으로 번진 사태의 추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검찰이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정면으로 반발하지 않고 조직 내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대응키로 한 결정은 예상되었던 파국을 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검찰의 독립성만을 내세워 김종빈 총장이 자리를 사퇴했을 때의 혼란을 생각하면, 한 쿠션 여유를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을 떠올리면 혼란을 피할 시간여유를 갖게 된 셈이라 하겠다.
민주사회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사람의 얼굴모습이 다 다르듯이, 개개인의 생각도 다 다르다. 나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내가 존중받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체제와 법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사상과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
강정구 교수는 북한 편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2001년 8.15 민족대축전 방북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갔을 때 “만수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방명록에 사인한 일로 유명하다. 그런 사람을 재직 대학 당국과 학생들은 교수로 인정해 주었고, 다수국민도 그냥 넘어가 주었다.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3월 18일 데일리 서프라이즈 칼럼), “국방백서는 ‘대미 용비어천가’다.”( 5월 30일 토론회),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다.”(7월 27일 데일리 서프라이즈 칼럼), “6.25 전쟁으로 희생된 400만 명에게 맥아더는 원수다.”( 9월 30일 토론회)…. 근래 그의 발언은 좌 편향적인 한 지식인의 편협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에 동조할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고발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볼 수 없다. 그 일의 처리를 놓고 중요 국정현안이나 되는 양, 국회에서 문제를 삼은 것도 그렇고, 청와대와 집권당 사람들이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오해될 언사를 쓴 것도 적절한 대처는 아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 국가보안법 문제다. 경찰과 검찰은 강 교수의 발언과 기고 내용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 위반으로 고발되었기 때문에 구속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국가 단체 찬양고무 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공안을 책임진 국가기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쉬운 것은 여야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후속조치를 게을리 해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여야 대표는 작년 말 가장 큰 쟁점이었던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죄를 폐지하기로 했다. 반국가 단체도 ‘국가안전 침해 단체’로 완화해 대체입법을 하기로 합의돼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 되었다.
국가보안법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우리 대통령이 반국가단체의 ‘수괴’라 할 북한 통치자와 만나 민족의 평화를 논의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세상이다. 집권당 대표는 어제 국회 연설을 통해 북한 노동당과의 교류를 제안했다. 이제 무슨 명분으로 북한과의 접촉과 마음의 교류를 냉전시대 흑백의 잣대로 단죄할 것인가.
세상은 변했다. 밖에서 누가 뭐라 하건, 당장의 이해관계야 어떻건, 북한은 우리가 껴안아야 할 형제다. 이번 사태는 국가보안법 문제 정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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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강정구 교수 발언과 기고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미숙성과 편협성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일제의 압제에서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 대한민국 건국 57년, 한국전쟁 발발 55년을 넘긴 시점에 살고 있다. 환갑 나이에 이런 문제로 바글바글 끓다 못해, 검찰에 대한 법무장관 지휘권 행사까지 나왔다.
역사에 대한 한 개인의 소신 피력이 이런 파장을 일으킨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편협성과 배타성을 말해준다. 강 교수 발언은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관련 공직자의 생각도 아니고, 정책에 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그야말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 수준이었다. 그걸 국회에서 문제 삼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의견을 내고, 검찰과 법무부 견해가 엇갈려 헌정사상 처음인 법무장관 지휘권 발동으로 번진 사태의 추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검찰이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정면으로 반발하지 않고 조직 내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대응키로 한 결정은 예상되었던 파국을 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검찰의 독립성만을 내세워 김종빈 총장이 자리를 사퇴했을 때의 혼란을 생각하면, 한 쿠션 여유를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을 떠올리면 혼란을 피할 시간여유를 갖게 된 셈이라 하겠다.
민주사회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사람의 얼굴모습이 다 다르듯이, 개개인의 생각도 다 다르다. 나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내가 존중받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체제와 법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사상과 생각은 존중되어야 한다.
강정구 교수는 북한 편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2001년 8.15 민족대축전 방북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갔을 때 “만수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방명록에 사인한 일로 유명하다. 그런 사람을 재직 대학 당국과 학생들은 교수로 인정해 주었고, 다수국민도 그냥 넘어가 주었다.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3월 18일 데일리 서프라이즈 칼럼), “국방백서는 ‘대미 용비어천가’다.”( 5월 30일 토론회),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다.”(7월 27일 데일리 서프라이즈 칼럼), “6.25 전쟁으로 희생된 400만 명에게 맥아더는 원수다.”( 9월 30일 토론회)…. 근래 그의 발언은 좌 편향적인 한 지식인의 편협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에 동조할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고발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볼 수 없다. 그 일의 처리를 놓고 중요 국정현안이나 되는 양, 국회에서 문제를 삼은 것도 그렇고, 청와대와 집권당 사람들이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오해될 언사를 쓴 것도 적절한 대처는 아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 국가보안법 문제다. 경찰과 검찰은 강 교수의 발언과 기고 내용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 위반으로 고발되었기 때문에 구속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국가 단체 찬양고무 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공안을 책임진 국가기관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쉬운 것은 여야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후속조치를 게을리 해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여야 대표는 작년 말 가장 큰 쟁점이었던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죄를 폐지하기로 했다. 반국가 단체도 ‘국가안전 침해 단체’로 완화해 대체입법을 하기로 합의돼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 되었다.
국가보안법이 별 의미가 없어진 것은 오래 된 일이다. 우리 대통령이 반국가단체의 ‘수괴’라 할 북한 통치자와 만나 민족의 평화를 논의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세상이다. 집권당 대표는 어제 국회 연설을 통해 북한 노동당과의 교류를 제안했다. 이제 무슨 명분으로 북한과의 접촉과 마음의 교류를 냉전시대 흑백의 잣대로 단죄할 것인가.
세상은 변했다. 밖에서 누가 뭐라 하건, 당장의 이해관계야 어떻건, 북한은 우리가 껴안아야 할 형제다. 이번 사태는 국가보안법 문제 정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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