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천심이다
선거란 참 오묘한 것이다.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하지만, 당선자가 발표되면 역시 그랬구나 싶어진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새삼스레 반추하는 것도 번번이 되풀이되는 경험이다. 총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측이 자만감에 빠진 낌새만 보이면 민심은 재선거나 보궐선거 같은 기회에 반드시 제동을 건다.
오만과 자만이 엿보이지 않아도 한 쪽 힘이 너무 세다 싶으면, 그 의석을 빼앗아 다른 쪽에 줌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민심을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도 누누이 경험했다. 특히 재선거나 보궐선거는 번번이 집권당의 오만과 나태를 질책하는 민심의 거울이 되었다.
국회 의석 넷을 놓고 격돌한 이번 10· 26 재선거는 민심의 소재를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다. 집권당도 그것을 의식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야당은 공공연하게 ‘심판’이란 말을 입에 담으며 전력투구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대리전이라던 대구 동을구 재선거에서 집권여당 후보가 패배한 것은 지역 특성 때문이라 치더라도,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민심이반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한번도 한나라당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던 부천 원미갑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과, 경기 광주와 울산 북구에서 우리당 후보가 차점자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성난 민심을 대변해주었다.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한 여당 인사는 “하느님이 나와도 안 될 선거였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집권여당 간판으로는 당선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소회라 하겠다.
대구 동을 이강철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중 공식 홍보물 같은 데에 가급적 소속정당 이름을 숨기려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이 집권당 공천후보라는 것을 자랑하지는 못할지언정, 숨기고 싶어 했다면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울산과 광주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무소속 후보에게도 밀려 처음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구경하는 신세였다.
우리당은 올봄 4· 30 재· 보선에서도 전패했다. 여섯 곳의 국회의원 재선거, 일곱 곳의 기초 단체장 선거, 열 곳의 광역단체 의원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담한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 이번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23대 0이라는 스코어는 대학생과 중학생 간의 운동경기에서도 나오기 어려운 스코어다. 그렇게 지고 나면 왜 그랬는지 원인분석을 하고, 약한 곳을 보강하고, 맹훈련을 거듭해 다음 경기 때 스코어 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사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싫다는 사람을 추근거리며 구애하듯, 받을 사람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연정론에 대통령이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하면, 주가도 오르고 수출도 잘 되고 지표도 좋은데 무슨 말이냐고 했다. 그러다가 4대 0, 또 치욕적인 영패를 당했다.
문제는 아직도 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집권당 내에는 대외적으로 애써 태연해 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심지어 의석 넷이 뭐 그리 대수냐는 얘기도 나돈다고 한다. 한 청와대 인사는 투표 전날 기자들이 여론조사에 우리당이 불리하게 나왔다고 알려주자 “23대 0패도 당했는데 4대 0패가 대수냐”고 말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재선 결과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리 심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 달라”는 청와대 주문도 그렇고,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 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도 신경 쓸 것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내년 5월에는 지방선거, 내후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렇게 느긋한 이유가 궁금하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안다고 했다. 우수수 지는 낙엽을 보고도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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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란 참 오묘한 것이다.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하지만, 당선자가 발표되면 역시 그랬구나 싶어진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새삼스레 반추하는 것도 번번이 되풀이되는 경험이다. 총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측이 자만감에 빠진 낌새만 보이면 민심은 재선거나 보궐선거 같은 기회에 반드시 제동을 건다.
오만과 자만이 엿보이지 않아도 한 쪽 힘이 너무 세다 싶으면, 그 의석을 빼앗아 다른 쪽에 줌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민심을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도 누누이 경험했다. 특히 재선거나 보궐선거는 번번이 집권당의 오만과 나태를 질책하는 민심의 거울이 되었다.
국회 의석 넷을 놓고 격돌한 이번 10· 26 재선거는 민심의 소재를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다. 집권당도 그것을 의식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야당은 공공연하게 ‘심판’이란 말을 입에 담으며 전력투구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대리전이라던 대구 동을구 재선거에서 집권여당 후보가 패배한 것은 지역 특성 때문이라 치더라도,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민심이반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한번도 한나라당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던 부천 원미갑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과, 경기 광주와 울산 북구에서 우리당 후보가 차점자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성난 민심을 대변해주었다.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한 여당 인사는 “하느님이 나와도 안 될 선거였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집권여당 간판으로는 당선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소회라 하겠다.
대구 동을 이강철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중 공식 홍보물 같은 데에 가급적 소속정당 이름을 숨기려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이 집권당 공천후보라는 것을 자랑하지는 못할지언정, 숨기고 싶어 했다면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울산과 광주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무소속 후보에게도 밀려 처음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구경하는 신세였다.
우리당은 올봄 4· 30 재· 보선에서도 전패했다. 여섯 곳의 국회의원 재선거, 일곱 곳의 기초 단체장 선거, 열 곳의 광역단체 의원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담한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 이번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23대 0이라는 스코어는 대학생과 중학생 간의 운동경기에서도 나오기 어려운 스코어다. 그렇게 지고 나면 왜 그랬는지 원인분석을 하고, 약한 곳을 보강하고, 맹훈련을 거듭해 다음 경기 때 스코어 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사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싫다는 사람을 추근거리며 구애하듯, 받을 사람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연정론에 대통령이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하면, 주가도 오르고 수출도 잘 되고 지표도 좋은데 무슨 말이냐고 했다. 그러다가 4대 0, 또 치욕적인 영패를 당했다.
문제는 아직도 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집권당 내에는 대외적으로 애써 태연해 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심지어 의석 넷이 뭐 그리 대수냐는 얘기도 나돈다고 한다. 한 청와대 인사는 투표 전날 기자들이 여론조사에 우리당이 불리하게 나왔다고 알려주자 “23대 0패도 당했는데 4대 0패가 대수냐”고 말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재선 결과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리 심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 달라”는 청와대 주문도 그렇고,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 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도 신경 쓸 것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내년 5월에는 지방선거, 내후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렇게 느긋한 이유가 궁금하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안다고 했다. 우수수 지는 낙엽을 보고도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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