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마음의 독일 통일’을 막는 것들

지역내일 2005-10-11
3일로 독일이 통일된 지 꼭 15년이 됐다. 그런데 동서독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동과 서로 갈라져 있다. 법적으로 한 나라가 됐지만 ‘마음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독일인 4명 중 한명은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 동독인 85%는 스스로를 ‘2등 국민’이라고 느끼고 있단다.
15년 전 독일 통일 현장을 회상해 본다. 서독의 정치지도층이 통독을 역사적 과업으로 인식하고 추진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까지 그런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동독 주민들은 통일이 되면 서독 사람들처럼 잘 살게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통일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동기였다. 그들은 통독의 역사적 의미 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오만한 서독, 굴욕감의 동독
통일 직전 암시장에서 서독 마르크와 10대1 이하로 교환되던 동독 마르크를 90년 7월1일 1대1로 교환해 주는 화폐통합으로 휴지쪽지 같은 동독 마르크가 황금으로 바뀐다. 갑자기 ‘부자’가 된 동독인들이 마르크 뭉치를 들고 서베를린으로 몰려와 백화점과 상점의 물건을 싹쓸이 해간다. 서독 사람들은 자기들이 땀 흘려 번 돈을 동독인들이 공짜로 가져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오씨’(동독인을 경멸하는 호칭)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동독인들은 돈만 생각하는 오만한 ‘베씨’(서독인을 경멸하는 호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응수했다. 오씨 베씨의 서로 헐뜯는 이야기들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렸다. 언론이 갈등을 부추긴 셈이 됐다. 이때부터 머지않아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우자는 소리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독일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말이 동서독 사람들의 갈등을 과장해서 하는 소리로 들었지 오씨와 베씨가 정말 함께 못살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말로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통일 15년을 맞는 지금 독일 사람들의 입에서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네 명에 한 명꼴이란다. 동서독 사람들을 갈라놓은 마음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동서독이 정치적 통일은 했으나 “마음의 통일은 못했다”는 자성의 소리는 통일 1주년 기념식 때부터 매년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15주년을 맞는 지금 또 같은 말을 듣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 때나 지금이나 진단도 같고 처방도 같다. 자기들은 파산한 공산 동독을 흡수한 승리자들이고 따라서 자기들이 하는 일은 다 옳고, 동독인들이 하는 것은 다 그르다고 으스대는 서독인들의 오만이 동독인들의 자존심을 꺾고 그들에게 굴욕감을 준 것이 가장 큰 갈등의 불씨였다는 것이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진단이다. 그런데도 서독 사람들이 이런 오만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일 후 서독 기업은 동독의 공장을 헐값으로 접수하고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요직에서 쫓아내고 자기들이 차지했다. 동독인 대다수가 스스로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자학 신드롬을 갖게 된 배경이다. 실업률도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의 두 배나 높다. 임금도 동독 노동자는 서독 노동자의 80% 선이다. 9·18 총선에서 민주사회당(구 동독의 공산당)이 동독 지역에서 25%를 득표해 이 지역 제2당으로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만을 생각하며 당당하게
물론 동독 사람들에게 공산체제에서 몸에 밴 나쁜 습성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생산성이 서독 노동자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동독인의 자존심을 꺾고 굴욕감을 느끼게 해도 좋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동독인이 자존심 상하고 굴욕감을 느끼는 한 ‘마음의 통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관계나 국가관계를 불문하고 상대방을 오만하게 대하고 굴욕감을 주는 순간 그 관계는 금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의 주역들은 서독인과 동독인들이 서로에 대해서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들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충고를 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언론의 역할이 크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막강하지만 부당한 언론권력”의 심한 공격에 굴복했더라면 독일통일은 실현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에곤 바르는 보수 언론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동방정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역사만을 생각하며 당당히 나아가자는 브란트의 용기와 격려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언론이 갈등을 과장해서는 안 되며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센세이션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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