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털자

지역내일 2005-10-17
흔히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말한다. 이런 법언도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는 통하지 않았다. 정보기관원의 지시에 따라 판결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다. 아니면 영달에 눈이 어두워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에 맞춰 사법정의를 팽개치기도 했다.
물론 올곧은 법관들이 있어 꺾이기를 마다하다하고 스스로 법복을 벗기도 했다. 억압과 질곡 속에 살아야 했던 그 시절 많은 법관들이 소신대로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사법부도 오랜 침묵을 깨고 부끄러운 과거를 말해야 한다.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식장에서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반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다. 그는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법부 수장의 준엄한 자기반성으로서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제 구실 못한 인권보장 보루
법원행정처가 이미 자료수집에 나섰다고 한다. 전국 주요법원에 협조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난 1972~1989년 긴급조치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화염병처벌법 등과 관련한 판결문을 이른 시일 내에 수집해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한 세대 가까이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그 판결문의 갈피 갈피에서 사법정의가 실종된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더러는 피맺힌 원성이 귓가에 맴돌지 않을까 싶다.
군사독재 체재 아래서는 법의 지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총과 칼로 말했다. 그 시절에도 용기 있는 이들이 있어 철권체제에 온몸으로 항거하곤 했다. 이것이 이른바 시국-공안사건이다. 정보기관이나 검찰이 온갖 고문을 자행하여 올가미를 씌우면 어떤 판관은 ‘극형’, ‘극형’을 연발했다. 정보기관원의 주문형량대로 판결했던 것이다. ‘사법살인’이란 말이 나옴직도 했다.
기관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민사재판에도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종의 이권사업으로서 말이다. 그 때는 유능한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법원출입 기관원을 통하는 것이 승소를 이끌어내는 지름길이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인명이 한탄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반평생을 철창에 갇혀 통한의 세월을 보냈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 일가나 후손이 겪는 상처와 고통을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다. 세상도 바뀌었다니 잘못된 재판을 바로 잡아달라고 법원을 찾아 억울함을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심을 청구해도 청구권자와 청구요건이 극히 제한되어 피해회복의 길이 아주 좁다. 그러니 시국-공안사건은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본안에 대해 판단하기도 전에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해 버리고 만다.
열린우리당이 재심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확정판결에 중대한 잘못이 있으면 당사자나 유족의 청구에 의해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을 받는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구세력이 웬일인지 딴죽을 걸고 나서 난리를 핀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법부의 근간을 흔든다는 가당찮은 논리를 내세워서 말이다. 피해자의 잃어버린 명예는 영원히 매장되어도 좋고 시류에 영합한 법관의 더러운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묻는데 왜 사법부만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지 자문하기 바란다. 먼저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말하라.

무오류·불가침 성역은 없다
하 숱한 세월이 흐르다보니 많은 유신판사, 5공판사들이 이미 법원을 떠났을 것 같다. 인간의 기본권리마저 짓밟고 그것을 출세의 디딤돌로 삼은 인사들이 아마 아직도 건재할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도 인적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차제에 전관예우도 철폐되어야 한다. 그 더러운 유착관계로 끌어 모은 돈더미 아래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이들의 피눈물이 괴어있는지 안다면 말이다. 법복의 권위를 내세워 국민을 미물처럼 깔보는 그 교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도 지탄받아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사법부가 언제까지나 무오류, 불가침의 성역일 수는 없다. 경제적 약자, 사회적 소외자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따듯한 언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신임 대법원장의 가식 없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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