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외면하고…
부모 모셔가라면 이사가고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서울시립여성보호센터는 거처를 잃은 부랑인여성 130여명이 가족을 찾기 위해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이곳은 가출한 치매노인서부터 집을 모르는 정신장애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28일 찾아간 보호센터에는 궂은 날씨만큼 궂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식과 함께 옷가게에 갔다가 홀로 버려져 오게 된 할머니, 가족과의 불화를 참지 못해 가출한 할머니, 잊을만하면 센터를 찾는 할머니 등 다양하다.
130여명의 입소자 가운데 80명 안팎이 60세 전후의 노인이다. 치매로 기억이 멈춰버린 입소자가 많아 실제 60세 이상 노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보호센터 조복연 소장은 “가장 따뜻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버림받은 분들이 이곳에 오신다”고 말했다.
◆치매 부모 버리고 이사 = 치매 등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정 모(62) 할머니는 얼마 전 자식과 함께 옷가게에 갔다가 혼자 남겨졌다. 가게 주인이 이틀을 데리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치매에 걸린 정 할머니의 지문을 채취, 서초구 양재동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그러나 아들은 2년 전 이사를 갔으나 이전 신고를 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정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겼으나 아들이 이사 간 곳은 알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가출 노인 대부분은 가족이 외면한 경우다. 조 소장은 “경찰청 182센터가 구축된 이후 납치사건이 아닌 이상 가족이 찾으려고만 하면 모두 찾을 수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소를 찾아 전화를 해도 가족이 아니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며칠 내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모(68) 할머니는 자진해서 집을 나온 경우다. 며느리와 아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며느리가 밥을 차려줄 때마다 “너 언제 죽을래. 빨리 죽어”하고 협박했다고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버티던 김 할머니는 얼마 전 집에 들어갔다. 조 소장은 “김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의 불행한 사연을 듣고 ‘그래도 나는 자식들이 있고 집이 있다’며 집에 돌아갈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임 모(70) 할머니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갈 데가 없으면 주기적으로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친구 집에 가서 머문다며 나갔다가 3주 전 다시 센터에 돌아왔다. 이번만 벌써 3번째다.
◆2명 빼고 모두 병에 시달려 = 이곳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병을 달고 산다. 지난달 센터 의무팀이 입소자의 건강을 검진한 결과 130여명 가운데 단 2명만이 ‘건강’ 판정을 받았다. 적으면 1가지, 많으면 4~5가지의 질환이나 병을 갖고 있었다. 조 소장은 “건강하다는 2명의 입소자도 얼굴색을 보면 완연한 병자”라며 “노인성 질환에다 마음고생까지 더해져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입소자들은 가족같이 대해주는 보호센터 직원들 덕분에 외로움을 덜고 있다. 올 초 입소한 이 모(55) 할머니는 “직원들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친가족처럼 대해줘 많이들 고맙게 여긴다”며 “자식에 얹혀 하루하루를 가시방석에서 사느니 이곳에 있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130여명의 입소자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다. 하루 2차례씩 센터를 돌며 입소자들이 불편해 하는 점이 없는지 점검한다. 조 소장은 “한분 한분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사회도 외면하고…
가출치매노인 제보 거의 없어
가출 치매노인이 늘고 장기실종자가 쌓이지만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치매노인 가출 건수는 2676건, 이 가운데 83건은 수년째 장기 실종 상태다. 치매노인에 대한 독자적인 통계가 없었던 지난해엔 1700건 안팎의 치매노인이 가출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년 새 1000건 가량의 가출 치매노인이 늘어났다.
경찰청의 통계는 접수일을 기준으로 한다. 실종된 날을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 3~5년 전에 일어난 장기 실종 사건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제보가 없어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경찰의 고민거리다.
◆가출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적어 = 지난 5월 경찰청은 모 이동통신 회사와 손잡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한 ‘치매노인 찾기 서비스’에 나섰다. 그러나 시행 6개월째인 24일 현재 성과는 전무한 상태다. 이에 반해 지난해 5월 시행한 동일 방식의 ‘미아 찾기 서비스’는 시행 6개월 만에 7명의 장기미아를 찾는 성과를 거두는 등 현재까지 모두 9명의 아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미아에 대한 제보도 쏟아졌다.
미아찾기센터 관계자는 “성과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실종 치매노인에 대한 제보 자체가 거의 없다”며 “아이들보다 노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실종노인에 대한 정보메시지가 상당수 스팸메일로 분류되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경찰과 제휴한 이동통신 업체는 한때 “스팸메일을 발송하지 말라”는 가입자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출 치매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정부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치매노인 수는 전체 노인수의 8.3%인 36만5000여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체 노인인구의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출 치매노인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반 동안 제보 1건 없어 = 실종 치매노인을 찾는 가족은 하루하루를 애끊는 고통 속에 보내고 있지만 사회의 무관심은 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조영하(여·60) 씨는 지난해 6월 19일 여의도 순복음교회 앞에서 치매기가 있던 남편을 잃어버렸다. 당시 2박3일로 기도원을 갔다 오던 남편 박성무(당시 나이 64세) 씨는 교회 버스에서 내린 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던 것까지는 확인됐으나 그 뒤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조씨는 “또 다시 겨울이 찾아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진다”며 “어디선가 제보 전화라도 오겠지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맘 졸이고 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한건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년간 가출 노인을 찾아주는 일을 해온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산하 ‘노인찾기종합센터’에 따르면 실종자 가족이 접수한 건수는 327명으로, 대부분 장기실종 노인들이다. 이들은 70대가 164명, 80대가 120명, 90대가 11명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사회의 관심이 시급하다. 노인찾기종합센터 박상주 간사는 “가출 치매노인의 문제는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문제일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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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모셔가라면 이사가고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서울시립여성보호센터는 거처를 잃은 부랑인여성 130여명이 가족을 찾기 위해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이곳은 가출한 치매노인서부터 집을 모르는 정신장애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28일 찾아간 보호센터에는 궂은 날씨만큼 궂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식과 함께 옷가게에 갔다가 홀로 버려져 오게 된 할머니, 가족과의 불화를 참지 못해 가출한 할머니, 잊을만하면 센터를 찾는 할머니 등 다양하다.
130여명의 입소자 가운데 80명 안팎이 60세 전후의 노인이다. 치매로 기억이 멈춰버린 입소자가 많아 실제 60세 이상 노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보호센터 조복연 소장은 “가장 따뜻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버림받은 분들이 이곳에 오신다”고 말했다.
◆치매 부모 버리고 이사 = 치매 등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정 모(62) 할머니는 얼마 전 자식과 함께 옷가게에 갔다가 혼자 남겨졌다. 가게 주인이 이틀을 데리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치매에 걸린 정 할머니의 지문을 채취, 서초구 양재동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그러나 아들은 2년 전 이사를 갔으나 이전 신고를 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정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겼으나 아들이 이사 간 곳은 알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가출 노인 대부분은 가족이 외면한 경우다. 조 소장은 “경찰청 182센터가 구축된 이후 납치사건이 아닌 이상 가족이 찾으려고만 하면 모두 찾을 수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소를 찾아 전화를 해도 가족이 아니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며칠 내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모(68) 할머니는 자진해서 집을 나온 경우다. 며느리와 아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며느리가 밥을 차려줄 때마다 “너 언제 죽을래. 빨리 죽어”하고 협박했다고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버티던 김 할머니는 얼마 전 집에 들어갔다. 조 소장은 “김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의 불행한 사연을 듣고 ‘그래도 나는 자식들이 있고 집이 있다’며 집에 돌아갈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임 모(70) 할머니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갈 데가 없으면 주기적으로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친구 집에 가서 머문다며 나갔다가 3주 전 다시 센터에 돌아왔다. 이번만 벌써 3번째다.
◆2명 빼고 모두 병에 시달려 = 이곳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병을 달고 산다. 지난달 센터 의무팀이 입소자의 건강을 검진한 결과 130여명 가운데 단 2명만이 ‘건강’ 판정을 받았다. 적으면 1가지, 많으면 4~5가지의 질환이나 병을 갖고 있었다. 조 소장은 “건강하다는 2명의 입소자도 얼굴색을 보면 완연한 병자”라며 “노인성 질환에다 마음고생까지 더해져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입소자들은 가족같이 대해주는 보호센터 직원들 덕분에 외로움을 덜고 있다. 올 초 입소한 이 모(55) 할머니는 “직원들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친가족처럼 대해줘 많이들 고맙게 여긴다”며 “자식에 얹혀 하루하루를 가시방석에서 사느니 이곳에 있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130여명의 입소자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다. 하루 2차례씩 센터를 돌며 입소자들이 불편해 하는 점이 없는지 점검한다. 조 소장은 “한분 한분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사회도 외면하고…
가출치매노인 제보 거의 없어
가출 치매노인이 늘고 장기실종자가 쌓이지만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접수된 치매노인 가출 건수는 2676건, 이 가운데 83건은 수년째 장기 실종 상태다. 치매노인에 대한 독자적인 통계가 없었던 지난해엔 1700건 안팎의 치매노인이 가출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년 새 1000건 가량의 가출 치매노인이 늘어났다.
경찰청의 통계는 접수일을 기준으로 한다. 실종된 날을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 3~5년 전에 일어난 장기 실종 사건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제보가 없어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경찰의 고민거리다.
◆가출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적어 = 지난 5월 경찰청은 모 이동통신 회사와 손잡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한 ‘치매노인 찾기 서비스’에 나섰다. 그러나 시행 6개월째인 24일 현재 성과는 전무한 상태다. 이에 반해 지난해 5월 시행한 동일 방식의 ‘미아 찾기 서비스’는 시행 6개월 만에 7명의 장기미아를 찾는 성과를 거두는 등 현재까지 모두 9명의 아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미아에 대한 제보도 쏟아졌다.
미아찾기센터 관계자는 “성과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실종 치매노인에 대한 제보 자체가 거의 없다”며 “아이들보다 노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실종노인에 대한 정보메시지가 상당수 스팸메일로 분류되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경찰과 제휴한 이동통신 업체는 한때 “스팸메일을 발송하지 말라”는 가입자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출 치매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정부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치매노인 수는 전체 노인수의 8.3%인 36만5000여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체 노인인구의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출 치매노인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반 동안 제보 1건 없어 = 실종 치매노인을 찾는 가족은 하루하루를 애끊는 고통 속에 보내고 있지만 사회의 무관심은 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조영하(여·60) 씨는 지난해 6월 19일 여의도 순복음교회 앞에서 치매기가 있던 남편을 잃어버렸다. 당시 2박3일로 기도원을 갔다 오던 남편 박성무(당시 나이 64세) 씨는 교회 버스에서 내린 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던 것까지는 확인됐으나 그 뒤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조씨는 “또 다시 겨울이 찾아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진다”며 “어디선가 제보 전화라도 오겠지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맘 졸이고 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한건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년간 가출 노인을 찾아주는 일을 해온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산하 ‘노인찾기종합센터’에 따르면 실종자 가족이 접수한 건수는 327명으로, 대부분 장기실종 노인들이다. 이들은 70대가 164명, 80대가 120명, 90대가 11명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사회의 관심이 시급하다. 노인찾기종합센터 박상주 간사는 “가출 치매노인의 문제는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 문제일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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