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칼럼>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2005.12.22)

지역내일 2005-12-22 (수정 2005-12-22 오후 3:20:19)
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

1896년 음력으로 8월 중순, 그 2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후폭풍으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던 가운데, 갑오경장(甲午更張)까지 겹쳐 나라가 뒤숭숭하던 무렵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라도 무안(務安)의 젊은 선비 한 분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도보로 천리 먼 길인 경기도 포천의 가채리를 찾아갔다.
가채리는 당대의 거유(巨儒)이자 한말의 의병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 1833-1906)이 태어났던 고향이다. 면암이 다른 곳에 이사가 살다가, 64세이던 그 해에 마침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면암의 제자가 되려는 욕심과 자신의 선조 비문(碑文)을 받아오려는 임무를 띠고 먼 길을 여행한 선비는 민재(敏齋) 박임상(朴琳相 : 1864-1944)으로, 그때 33세의 시골 서생이자 향학열에 불타던 젊은 한학자의 한분이었다.
그때부터 109년이 지난 올해 11월 30일, 민재의 증손자인 필자는 강원도 철원에 일이 있어 다녀오던 귀로에 포천시내로 들어오자 교통표지판에 ‘가채리’라는 방향 표지를 발견했다. 드디어 평생의 숙원이던 그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면암 최익현, 그가 누구이던가. 가채리에서 경주 최씨의 후손으로 태어나 14세에 대학자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 큰 학문을 얻고,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여러 벼슬을 거쳐, 30세에는 충청도 신창(新昌 : 지금은 아산시) 현감으로 승진하고 사헌부의 지평(持平)과 장령(掌令)에 오른다. 이때 36세의 나이로 하늘을 찌르던 대원군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렸으니 이른바 ‘무진소(戊辰疏)’라는 명상소였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지 10년째이던 41세에 면암은 또 대원군의 독재를 규탄하는 ‘계유소(癸酉疏)’를 올려 대원군이 끝내 권좌에서 물러나는 대사건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정3품 당상관의 동부승지에 올라 있던 면암은 곧바로 정2품 호조참판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대원군과 고종 부자의 사이를 이간시켰다는 죄목으로 마침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떠나는 불행에 봉착하고, 3년의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다. 다음 해인 44세에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광화문 앞에 도끼를 들고 조약반대를 위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감행하였다. 상소의 요구를 들어주든가 아니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는 무서운 상소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를 죽이지 못하고 머나먼 흑산도로 유배시켜 4년의 세월을 보내게 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온 나라에 이름이 가득하던 면암을 조야에서 숭앙하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저 먼 시골의 선비가 면암을 찾아 16일 만에 선생 앞에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골짜기에 가득한 가을바람 나무 사이로 이는데
공경스럽게 선생님 뒤따르며 천천히 걷노라.
당당한 기상이야 산처럼 무거워서
온 세상에 바르지 못한 의논 허용되기 어렵다네.
(滿壑秋風隔樹生 敬隨杖屨故徐行 堂堂氣像如山重 當世難容鄭衛聲)

‘선생님을 모시고 마을 뒷산인 채산(茝山)에 올라(陪勉菴崔先生登茝山)’라는 제목의 민재의 시다. 위풍이 당당하기로 유명하여 그분의 영정을 보면 모두가 호랑이 상처럼 무섭다던 면암, 그 위세에 눌려 아무도 허튼 수작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구절이 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68세의 고령으로 충청도의 정산(定山 : 지금의 청양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면암은, 74세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이유로 전라도 순창에서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일본의 헌병에 붙들려 대마도로 압송되어 거기서 일본의 쌀인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다 끝내 노환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채리에 들렀더니 ‘채산사(茝山祠)’라는 조그만 사당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을 뿐이다. 당당한 기상으로 천하를 압도하던 면암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고 문을 걸어잠궈 들어갈 수도 없는 쓸쓸한 3칸의 사당 한 채가 있었다. 면암의 혼을 모신 사당이란다.
나라가 망해 36년을 식민통치에 시달렸고, 그 후유증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60년이 다 되는 지금,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혼을 살려내자던 면암의 혼이 그렇게 쓸쓸해서야 되겠는가. 증조할아버지 스승의 고향이자 혼이 서린 가채리, 세상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거기에 ‘척사위정’의 당당한 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100여년전 면암과 민재의 만남이 그림처럼 떠오르고, 필자의 가슴을 꽉 채우는 것이 있었다. 면암 그렇게 외로워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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