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사법살인’ 오명을 씻는 길

지역내일 2005-12-09
‘사법살인’ 오명을 씻는 길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권력자의 뜻대로 조작된 것이라는 국가정보원의 고백에서 느끼는 소회는 공(空)이다. 한 시대가 지나면 모든 궁금증이 저절로 풀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거늘, 왜 그토록 권력에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에 허탈감마저 느껴진다.
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 유지를 위한 강압책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인혁당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조사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 그런데도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고백에 새삼스레 가슴이 허해지는 것은, ‘권력의 사냥개’ 노릇에 충직했던 중앙정보부의 후신이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때문이다.

사법부 책임논의에 불붙인 것이 이번 발표 의미
독재자가 수하의 총에 비명횡사한 뒤에도 추종자들에 의해 똑같은 폭거가 계속되었지만, 정의와 진리의 도도한 물살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30년 세월이 밝혀낸 진실 앞에서 권력과 권세의 덧없음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불법하게 권력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유신을 자행하고, 그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면서, 그 배후조직으로 10년 전 사건을 이용한 수법에서는 용공조작 만능시대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혁당 사건이라는 것은 1964년 중앙정보부가 혁신계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북파공작원 출신자를 남파간첩이라고 조작해 ‘북괴의 지령으로 대규모 지하조직(인민혁명당)을 만들어 국가변란을 꾀한 혐의’로 41명을 검거했다는,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인혁당의 실체에 대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결론은 “장차 합법화될 혁신정당에 대비한 서클 형태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송치돼 왔을 때 서울지검의 담당검사들이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다고 저항한 것만 보아도 사안의 성격을 알만하다. 당직검사를 시켜 무리하게 기소한 이 사건 재판(1심)결과는 징역 10년과 7년이 구형된 도예종과 양춘우에게 징역 3년과 2년이 선고되고, 나머지 11명은 전원 무죄였다.
중앙정보부는 10년 뒤 인혁당 재건 혐의를 씌워 유신반대 운동을 주도한 민청학련 배후로 조작했다. 형식적인 군사재판과 대법원 판결을 통해 형이 확정된 지 20시간만에 8명의 사형을 집행하는 전대미문의 ‘사법살인’이 자행되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이 사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증거와 증언을 찾지는 못했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재판 다음 날 미명에 서둘러 사형을 집행한 것이 누구의 뜻이겠느냐 하는 의문은 입에 담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재자의 폭거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재판을 해주어 독재자를 도왔던 사법부의 책임논의에 불을 붙인 것이 이번 일의 진정한 의미다. 1차 인혁당 사건의 최종심 형량은 도예종 징역3년, 양춘우 등 6명 징역1년, 이재문 등 6명 집행유예였다. 1974년 다시 사건을 만든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에서는 사형 8명, 무기징역 6명, 징역 20~15년 8명으로 늘었다. 데모한 혐의의 민청학련 관련자들에게도 사형 무기징역 같은 극형이 선고되었다.
담당검사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조차 거부했던 사건에 대법원이 무더기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확정해 준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시대를 살았던 법관들은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의 압력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오욕과 회한 뿐”이라고 고백한 대법원장도 있었다. 기관원들이 법원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형량을 주문했던 시대상황을 모를 사람은 없다.

인혁당 유가족의 재심신청에 대한 결론 이제 내려야
그러나 그 오욕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지 않는 한, 오욕과 회한은 영원히 씻어지지 않는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 발표이후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이 제기한 재심신청에 3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법원은 재심요건인 ‘명백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실정법상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잘못된 재판을 옳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침묵과 외면이 길어질수록 고백을 할 용기와 기회도 사라져 간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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