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출발을
함 인 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이제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숱한 바람(風)도, 다수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무수한 쇼크도, 어느 새인가 ‘작년 일’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충격이 와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온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해의 예외도 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수식어를 뗄 수 없었던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면 말이다.
새해가 밝아오건만 왠지 지나온 뒷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비단 나이 들어가는 탓만은 아닌 듯하다. 시작은 언제나 끝맺음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상살이의 순리임이 해를 거듭할수록 절실히 와 닿음 때문일 것이다.
대학의 새 학기는 대부분 퇴임교수를 위한 송별의식으로부터 시작하고는 한다. 평생을 몸담아 온 교정을 마침내 떠나는 자리, 후배교수들을 위해 퇴임의 변(辯)을 읊는 바로 그 순간이면, 지나온 수십 년 세월의 자취가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 30분도 채 되지 않는 퇴임사 속에 지난 30여 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녹아있음이야말로 후학들에게 주는 가장 생생하고도 절실한 교훈인 셈이다.
연변으로 간 퇴임교수 뒷 모습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어느 퇴임교수의 뒷모습.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저는 이제 떠나갑니다.” 짤막한 퇴임인사를 뒤로 하고 이 분이 떠난 곳은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 사는 곳 연변. 이제껏 당신이 누려온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해 떠나신다 했다.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당신이 하실 일은 무료로 영어회화를 가르쳐주는 일. 당시 연변은 중국의 개혁 개방 물결을 따라 외국계 기업이 다수 진출하고 있었는데,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취업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훌쩍 떠나셨다.
그 때 사람의 뒷모습도 앞모습 못지않게 다양한 얼굴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덧붙여 앞모습은 현란한 분장도 가능하고 화려한 치장도 가능하나 뒷모습만큼은 허세도 가식도 허용치 않음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즐겨보는 내게는 남다른 버릇이 하나 있다. 영화의 뒷부분을 먼저 보고난 후 다시 처음부터 영화를 보곤 하는 것이다. 주위에선 “끝 장면을 미리 알고 나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영화 곳곳에 결말을 암시하는 장면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에 심취해있던 탓일까, 한 때는 우리네 인생도 끝을 미리 알고 나면 오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으려나, 이런 저런 망상 속으로 빠져든 적이 있다.
지난해도 우리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덕분에 ‘빨리빨리 병’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고,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하는 병’ 또한 재발을 반복하곤 했다. 이젠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상, 화려한 앞모습 못지않게 진솔한 뒷모습에도 눈길을 돌릴 줄 아는 여유, 그리고 현란한 성과 못지않게 험난한 과정의 소중함을 성찰해보는 성숙함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든다.
삶의 마지막 순간 상상하면
최근 들어 부쩍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볼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그 때마다 삶의 빛깔이 10인 10색이듯 죽음의 여운이 각인각색이었음이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가슴이 묵직해왔던 이유는 마지막 순간 앞에 섰을 때 생의 의미가 가장 겸허하게 와 닿는 역설 덕분이었다. 영화야 필름을 반복해서 되돌릴 수 있다지만 삶이야 어찌 되돌림이 가능하겠는가. 그래도 삶의 끝자락 마지막 순간의 여운을 상상 속에서나마 되새김질해 본다면 오늘 우리의 출발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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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인 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이제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숱한 바람(風)도, 다수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무수한 쇼크도, 어느 새인가 ‘작년 일’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충격이 와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온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해의 예외도 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수식어를 뗄 수 없었던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면 말이다.
새해가 밝아오건만 왠지 지나온 뒷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비단 나이 들어가는 탓만은 아닌 듯하다. 시작은 언제나 끝맺음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상살이의 순리임이 해를 거듭할수록 절실히 와 닿음 때문일 것이다.
대학의 새 학기는 대부분 퇴임교수를 위한 송별의식으로부터 시작하고는 한다. 평생을 몸담아 온 교정을 마침내 떠나는 자리, 후배교수들을 위해 퇴임의 변(辯)을 읊는 바로 그 순간이면, 지나온 수십 년 세월의 자취가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 30분도 채 되지 않는 퇴임사 속에 지난 30여 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녹아있음이야말로 후학들에게 주는 가장 생생하고도 절실한 교훈인 셈이다.
연변으로 간 퇴임교수 뒷 모습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어느 퇴임교수의 뒷모습.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저는 이제 떠나갑니다.” 짤막한 퇴임인사를 뒤로 하고 이 분이 떠난 곳은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 사는 곳 연변. 이제껏 당신이 누려온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해 떠나신다 했다.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당신이 하실 일은 무료로 영어회화를 가르쳐주는 일. 당시 연변은 중국의 개혁 개방 물결을 따라 외국계 기업이 다수 진출하고 있었는데, 우리 조선족 동포들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취업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훌쩍 떠나셨다.
그 때 사람의 뒷모습도 앞모습 못지않게 다양한 얼굴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덧붙여 앞모습은 현란한 분장도 가능하고 화려한 치장도 가능하나 뒷모습만큼은 허세도 가식도 허용치 않음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즐겨보는 내게는 남다른 버릇이 하나 있다. 영화의 뒷부분을 먼저 보고난 후 다시 처음부터 영화를 보곤 하는 것이다. 주위에선 “끝 장면을 미리 알고 나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영화 곳곳에 결말을 암시하는 장면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에 심취해있던 탓일까, 한 때는 우리네 인생도 끝을 미리 알고 나면 오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으려나, 이런 저런 망상 속으로 빠져든 적이 있다.
지난해도 우리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덕분에 ‘빨리빨리 병’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고,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하는 병’ 또한 재발을 반복하곤 했다. 이젠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상, 화려한 앞모습 못지않게 진솔한 뒷모습에도 눈길을 돌릴 줄 아는 여유, 그리고 현란한 성과 못지않게 험난한 과정의 소중함을 성찰해보는 성숙함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든다.
삶의 마지막 순간 상상하면
최근 들어 부쩍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볼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그 때마다 삶의 빛깔이 10인 10색이듯 죽음의 여운이 각인각색이었음이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가슴이 묵직해왔던 이유는 마지막 순간 앞에 섰을 때 생의 의미가 가장 겸허하게 와 닿는 역설 덕분이었다. 영화야 필름을 반복해서 되돌릴 수 있다지만 삶이야 어찌 되돌림이 가능하겠는가. 그래도 삶의 끝자락 마지막 순간의 여운을 상상 속에서나마 되새김질해 본다면 오늘 우리의 출발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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