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분별있는 열정의 화신

‘전태일 평전’ 저자 조영래 변호사, 이번에는 평전 주인공으로

지역내일 2006-01-16
조영래 평전
안경환 지음
도서출판 강 /1만5000원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을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돼 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가.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
1986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권인숙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권인숙이라는 힘없는 한 여성의 소리없는 외침이 ‘공권력에 의한 성고문’이라는 국가를 흔드는 사건으로 변하는 순간 법정에서 읽힌 변론서의 도입부분이다.
당시 피고인 권인숙과 변호인단에서 시작된 눈물은 방청석으로 옮겨졌고, 결국 그 눈물은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맞물려 전두환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조영래 변호사,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많다. ‘전태일 평전’의 숨은 저자.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전신인 ‘정법회’를 만든 사람. 민청학련의 주역. 부천서 성고문사건,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사건,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맡아온 인권변호사 등 그는 한국 현대사라는 탁류 한가운데에서 몸으로 저항해온 지식인의 대명사다.
조 변호사는 세상을 뜬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예비법조인들에게 ‘법조인이 되면 꼭 닮고 싶은 사람’ 중 한명이다. 법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을 묻는 조사에서 조영래 변호사가 현직 법조계 수장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내용이 기사화된 적도 있다. 사법연수원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조 변호사는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여전히 등장한다.
조영래 변호사의 대학 1년 후배인 서울법대 안경환 교수가 5년여기간의 준비 끝에 펴낸 ‘조영래 평전-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은 조 변호사 사후 나온 최초의 평전이다. ‘전태일 평전’ 저자가 주인공이 된 평전인 것이다. 조 변호사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중일 때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전태일의 삶을 복원해 세상에 알렸다. 조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전태일은 신문 사회면 기사로만 묻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 변호사로 인해 전태일은 영원한 노동자의 동지로, 한국 노동운동의 정신적 뿌리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변화를 이끌어낸 조 변호사의 삶은 어떠했을까.
마흔셋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뜬 조영래 변호사. 조영래의 생애는 4·19로 시작한 60년대부터 유신시대, 광주항쟁으로 불붙기 시작한 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를 거쳐 소련이 붕괴된 90년대 초입까지 짧지만 한국 현대사 격량의 한복판에 늘 있었다. 그의 평전은 어찌보면 개인의 전기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기술한 역사책인 것이다.
애연가였던 조 변호사는 1990년 12월 1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 교수는 그를 쓰러뜨린 병을 ‘시대암(時代癌)’이라고 명명했다.
평전을 집필한 안경환 교수는 같은 대학을 비슷한 시기에 다녔지만, 조 변호사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1987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법대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사회적 실천도 법학자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이같은 점은 안 교수로 하여금 조 변호사의 평전을 집필할 수 있게 했다. 안 교수는 스스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점, 법학자로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쌓았다는 점에 용기를 얻어 평전의 저술에 나섰다”고 말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사망한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사람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 변호사 ‘추모 모임’은 매년 조영래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되새기는 토론의 장을 만들고 있다. 조 변호사 사망 10주기인 2000년에는 ‘서울대 법대 공익·인권법 센터’와 함께 국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2004년 4월 19일에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에 조영래 기념홀이 조성됐다. 젊은 후학들에게도 ‘조영래’의 시대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격동의 시대에 열정으로 살았던 사람은 많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열정을 지니되 그 열정을 분별 있는 행동으로 옮기는 삶의 지혜를 보여준 사람은 실로 드물다. 내 짧은 기억과 좁은 경험으로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분별있는 열정의 화신으로 남아 있는, 드물고 드문 지식인의 하나라 바로 조영래다.”
평전을 통해 시종일관 조영래의 삶과 시대를 차분하게 객관화하려 노력한 필자도 속내는 숨기기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 안 교수는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이같은 평가를 에필로그에 남겼다.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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