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만 있고 ‘진로’는 없는 우리 교육풍토 되짚기

지역내일 2006-01-23
진학’만 있고 ‘진로’는 없는 우리 교육풍토 되짚기
대학은 가도 앞길은 깜깜, 마이 웨이는 어디에?

최근 어느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조사는 현재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58퍼센트가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자신의 적성이나 앞날에 대한 희망과 상관없이 오직 성적순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는’ 대학만을 선택한 결과다. 미래에 대한 설계나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진학’만 있는 현재의 진로 선택, 이대로 좋은가?

재수를 하고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남윤하군(19·서울 서초동)은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면서 적성과 관심보다는 점수를 먼저 고려했다.
“사람들이 무슨 공부를 하느냐를 묻지 않고 어느 학교 다니는지에만 관심을 두잖아요. 내가 아무리 소신 있게 공부를 한다고 해도 학교가 좀 뒤쳐진다 싶으면 무시하는 빛이 역력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폼 나는 학교에 입학한 후에 따로 제 적성에 맞는 공부를 부전공으로 하든가, 따로 학원을 다니든가 하려고요.”
남군의 말처럼 대학입시에서 개인의 적성이나 관심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점수와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느냐다.
이렇다보니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입시를 치르거나 겨우 졸업한 후에 다시 편입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또 1학년을 겨우 마치고 도망치듯 군대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말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가 대학생 18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1%(985명)만이 ‘전공 선택에 대해 만족한다’고 응답했으며 66.1%(1226명)는 ‘다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의 전공을 바꾸겠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5.8%(439명)는 ‘적성에 안 맞아서’를 는 전공을 바꾸고 싶은 이유로 들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해도 취업문턱에서 많은 학생들이 좌절감을 맛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의 기간은 평균 11개월가량 걸린다.
직장을 잡은 앞길엔 산이다. 일반 실업률보다 높은 청년실업률만 봐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약 11개월은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성공한 취업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약 6명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직업에 대한 정보도 턱 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직업 수는 1만200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의 숫자는 고작 272종류에 불과하다.

◆‘내 길’ 찾은 젊은이들 = 이런 가운데 자신의 적성에 맞춰 대학의 명성보다는 원하는 학과나 직업학교를 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업계 고등학교의 약진이다.
학부모 이은영씨(43· 서울시 신림동)의 아들도 그런 경우다. 지난해 고3이었던 아들은 성적은 상위권, 대학 진학은 걱정 없었는데, 서울의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욕심은 버릴 수가 없었다.
“과를 바꾸면 서울대에 들어갈 수는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아들이 꼭 전공하고 싶어 하는 학과에 점수를 맞추면 서울대는 포기해야겠고…. 간판인가, 적성인가 기로에서 고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아들의 긴 인생,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낫다고 결론짓고 아들의 선택을 따랐어요.”
대학에 다니다 과를 바꾸기 위해 다시 입시를 치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에 다니는 김영욱 씨(28)는 한의학을 전공하기 전에 전자공학도였다. 고3 당시 미래가 보장되는 인기 학과인 전자공학과를 선택했고 별 어려움 없이 대학 생활을 했다.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입대 전에 잠시 배낭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는데,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가 저와 많이 다르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만을 위한 삶보다는 사회에 기여하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
공교롭게도 군 입대 며칠 전에 귀국했는데, 입대 일주인 전까지 귀국하지 않자 자동으로 군 입대가 1년 연기되었다. 다시 복학도 못하는 상황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얻자 그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한의학을 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 한의학과에 합격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작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김씨는 그래서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라고 주문한다.

정은주 씨(33·경기도 고양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버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경우다. 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다. 취업난 속에서 얻은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정씨는 5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정씨는 편입을 통해 한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만학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남들은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고 험난한 길에 접어들었다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공부하는 동안 참 즐거웠어요. 제 선택에 후회는 안 해요. 어차피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뉴욕에서 의상디자이너로 일하는 박금미 씨(39·미국 앤클라인 디자이너)는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증권회사에 취직해 몇 년 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녀는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 결국 사직하고 관심 있던 복장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박씨는 뉴욕주립대에 진학했으며 결국 디자이너의 꿈을 실현했다.

아이의 미래, 성적순이 아니다
산본고등학교 한윤정 교사(36)는 작년에 고 3담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분야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조차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시기는 대부분 고3이 되어서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서야 앞날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교사는 어렸을 때부터 집과 학교에서 진학이 아닌 진로 찾기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가만 알아도 그 분야의 정보를 검색해 적성을 찾아가는 데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성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어려서부터 아이가 관심 갖는 분야를 관찰하고 그 분야에 대한 정보와 체험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컨설팅 업체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미즈엔>과의 인터뷰에서 과학고나 특목고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그래서 그는 아이의 적성과 10년 후의 세상을 내다보라고 조언했다.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어떤 성향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죠. 그 다음이 미래를 내다보는 부모의 안목입니다. 현재 유행하는 학과가 아니라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미래에 유망한 직업이 무엇일지, 그런 직업이 찾는 인재는 어떤 모습일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찾기, 그 일을 통한 행복 찾기에 다름 아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10년 후, 20년 후의 자녀의 모습을 위해, 출처도 불분명한 배치표와 점수에 맞춰 청춘을 소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취재 박미경 리포터 | 사진 이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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