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관료시스템의 관계 정립
성 한 표
한국과 미국이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을 놓고 청와대 내부가 시끄럽다. 여당 의원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밀문건을 폭로하는가 하면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지난 1일과 2일 폭로한 비밀 문건은 우리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지난 2003년 10월과 2004년 1월에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외교 각서를 노무현 대통령의 사전 사후 재가없이 교환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4일 보도된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은 한미 외교각서 교환 사실 등 중요한 정보가 노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으며, 이를 보고하지 않은 책임이 NSC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정상황실 문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내부 토론과정에서 그때그때 제기된 것을 취합해 토론용으로 적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의 해명 속에서도 청와대 내부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뒷말 무성한 전략적 유연성 협상
문제의 국정상황실 문건은 지난 해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정에 대한 NSC 내부 검토회의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또한 노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연설에 대한 미국 쪽의 경고와도 연결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8일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었다.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이미 한미간에 교환된,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외교 각서를 손에 쥐고 있던 미국 쪽 협상대표들이 노 대통령 연설의 심각성을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NSC의 검토회의가 부랴부랴 열렸던 것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우리 쪽의 양보가 대통령의 양해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공식결론을 얻어 미국 쪽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던 것이고, 이와 같은 NSC, 특히 당시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 통일원 장관 내정자의 태도에 대해 청와대 내부의 비판적 견해가 상황실 문건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청와대 내부 문건 폭로사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 내의 이른바 ‘친미 동맹파’와 ‘반미 자주파’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해석하면서 자주파로 분류되었던 이종석 통일원장관 내정자가 자주파로부터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국가의 중요 정책, 특히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한 의견대립이 정부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이 외교 안보 정책의 책임자,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에 의해 잘 조정되면, 한 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탄탄한 정책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자주파, 동맹파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대립을 발전적으로 통합해 내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주요 정보가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늦춰지고 있었다는 청와대 내부 문건대로라면,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 관료시스템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다. 외교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국정의 여러 중요한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통제되지 않는 관료시스템은 전반적인 현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말 따로 정책 따로
특히 최근의 안보 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실제 정책의 괴리가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달 25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밝힌 “북한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때론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우리 정부는 미국에 항상 협조하고 있다”는 말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올해 안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 회수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방부과 외교부 당국자는 전시 작전권을 올해 안에 돌려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등 손발이 맞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관계와 관련하여 대통령은 자주국방, 자주외교를 강조하지만, 외교부와 국방부는 현실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대통령과 실무참모들 사이의 간격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 비쳐지는 선을 넘어 정부의 이중적 태도로 비난받을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말과 현실정책의 간격을 메우기 위한, 관료시스템과의 관계 정립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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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한 표
한국과 미국이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을 놓고 청와대 내부가 시끄럽다. 여당 의원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밀문건을 폭로하는가 하면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지난 1일과 2일 폭로한 비밀 문건은 우리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지난 2003년 10월과 2004년 1월에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외교 각서를 노무현 대통령의 사전 사후 재가없이 교환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4일 보도된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은 한미 외교각서 교환 사실 등 중요한 정보가 노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으며, 이를 보고하지 않은 책임이 NSC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정상황실 문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내부 토론과정에서 그때그때 제기된 것을 취합해 토론용으로 적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의 해명 속에서도 청와대 내부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뒷말 무성한 전략적 유연성 협상
문제의 국정상황실 문건은 지난 해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정에 대한 NSC 내부 검토회의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또한 노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연설에 대한 미국 쪽의 경고와도 연결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8일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었다.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이미 한미간에 교환된,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외교 각서를 손에 쥐고 있던 미국 쪽 협상대표들이 노 대통령 연설의 심각성을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NSC의 검토회의가 부랴부랴 열렸던 것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우리 쪽의 양보가 대통령의 양해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공식결론을 얻어 미국 쪽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던 것이고, 이와 같은 NSC, 특히 당시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 통일원 장관 내정자의 태도에 대해 청와대 내부의 비판적 견해가 상황실 문건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청와대 내부 문건 폭로사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 내의 이른바 ‘친미 동맹파’와 ‘반미 자주파’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해석하면서 자주파로 분류되었던 이종석 통일원장관 내정자가 자주파로부터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국가의 중요 정책, 특히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한 의견대립이 정부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이 외교 안보 정책의 책임자,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에 의해 잘 조정되면, 한 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탄탄한 정책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자주파, 동맹파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대립을 발전적으로 통합해 내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주요 정보가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늦춰지고 있었다는 청와대 내부 문건대로라면,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 관료시스템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다. 외교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국정의 여러 중요한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통제되지 않는 관료시스템은 전반적인 현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말 따로 정책 따로
특히 최근의 안보 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실제 정책의 괴리가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달 25일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밝힌 “북한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때론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우리 정부는 미국에 항상 협조하고 있다”는 말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올해 안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 회수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방부과 외교부 당국자는 전시 작전권을 올해 안에 돌려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등 손발이 맞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관계와 관련하여 대통령은 자주국방, 자주외교를 강조하지만, 외교부와 국방부는 현실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대통령과 실무참모들 사이의 간격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 비쳐지는 선을 넘어 정부의 이중적 태도로 비난받을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말과 현실정책의 간격을 메우기 위한, 관료시스템과의 관계 정립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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