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칼럼]지나치면 안된다

지역내일 2006-01-18
지나치면 안된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어렸을 적 무성영화나 신파연극을 구경하는 것이 최고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자전거에 확성기를 달고 면사무소 앞 광장에서 어떤 제목의 무성영화가 상영된다고 광고하는 사람은, 으레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면민 여러분!” 이라며 외쳤다. 돌이켜보면 문화와 예술이 별것 아닌 시절이었다. 삼촌들이 중심이 되어 가설무대를 마을의 서당에 만들어 ‘울며 헤어진 부산항’ 등의 신파를 공연하면 괜스레 따라 울면서 함께 즐기던 그 신파 연극이 문화와 예술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21세기도 6년째에 접어들었다. ‘문화산업’ ‘문화의 세기’라며 요란하다. 진정한 예술을 꽃피우자면 표현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은 그 자유가 무제한인 영역이고 그래야만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고 또 진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르기 때문에, 짐승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는 삶을 영위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절제가 있어야 하고 인내와 조절의 아름다움까지 합해지지 않으면 문화와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문화와 예술의 탈을 쓰기만 하면 일체의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떠들며, 구속이나 속박은 물론 일정한 통제조차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재를 받기는 했지만, 얼마 전 어떤 TV프로에서 홀랑 벗은 알몸 출연이 바로 그런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던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패션도 문화이고 예술이다. 그런데 여름철에 거리를 걷다보면 참으로 희한한 의상이 등장하여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많이 노출하면 할수록 더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옷을 입었는지 아니면 천만 걸쳤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의복을 입고 버젓이 대로를 걷는 군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이 벗은 그림이, 짙고 짙게 행하는 섹스 장면이 더 예술과 문화에 가깝다고 여기는 것인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온 몸을 천으로 가려서 살갗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예술이나 문화가 아니듯이, 그냥 태어난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통째로 보여주는 것만이 꼭 예술이며 문화이겠는가. 때문에 예술이고 문화이려면 반드시 ‘조화(調和)’라는 하모니가 따라야 한다. 벗어도 적당하게 가려도 적당하게 하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나, 지금부터 2500년 전에 공자(孔子)는 이 문제에 대한 명답을 분명하게 내놓았다. 『논어』에 “즐기되 음탕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슬퍼하되 지나치게 가슴 쓰리게 해서는 안 된다”(樂而不淫 哀而不傷)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시나 음악 등의 예술은 감상하고 즐거움을 느끼거나 애상의 감정에 빠져야 함이 당연하지만, 너무 즐거워하다 정도(正道)를 잃어버리거나, 슬픔이 지나쳐 화기(和氣)에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관현악이나 성악을 들으며 흔쾌한 마음으로 기쁨을 누리고, 아름답고 멋진 그림을 보며 즐거움에 빠지고, 가무를 즐기면서 쾌락에 빠지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그런 것이 지나치면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의 바른 도에서 벗어나 문화도 예술도 아닌 음탕한 세계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에 잠기고 슬픔과 우수에 빠져 마음이 아파 애절한 지경에 이르는 것처럼, 비극의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지나쳐서 화기(和氣)를 잃게 된다면 예술도 문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정도와 화기 잃지 않는 새해를
지나침이 해로운 것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서로 대립하고 맞서면서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대립하고 투쟁하다가 정도에서 벗어나고 화기에 해가 된다면 어떨 것인가. 문화와 예술이 정도와 화기를 위해 조화와 중정(中正)을 찾듯이, 정치도 중정을 찾아야지 극에서 극으로 달리면 어떤 국민도 지지해주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극한투쟁’이라는 방식이다. 상대방에게 겁을 주려고 건강이 유지될 만큼 단식하는 일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극한투쟁이라야 된다고 계속 굶다가 죽어버리면 어쩔 것인가. 그 대목이 바로 ‘슬픔이 지나쳐 화기를 잃어버림’의 경우다.
요즘 정말 락(樂)과 애(哀)의 조절이 없이 극한을 치닫는 문화와 예술, 극한투쟁이 유행하고 있는 정치판이나 데모 대열을 보면서 적당한 선, 조절이 된 즐거움과 비애가 절실한 때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한번쯤 공자의 말씀에 귀 기울여 정도와 화기를 잃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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