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겉돈다

지역내일 2006-02-10
지난해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한 금융기관의 김 모 부장(56세)은 오늘도 출근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앉았지만 채권추심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일을 하고 시간을 때우는 것도 일년여 했으면 적응할만도 한데 여전히 후선(지원)에서 일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김 부장은“10여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하다가 하루 아침에 부하 직원없는 부장으로 전락해 그만둘 생각도 여러번 했다”며 “그러나 아직 대학생과 결혼정년기 자녀의 학비보조나 결혼 상대 찾는 데에 아버지가 직장을 갖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기업들 도입 외면한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을 줄이면서 노사간 윈윈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임금피크제가 겉돌고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혁신모델로 지목되면서 공공기관 중심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적절한 업무가 없고 성과평가도 어려워 비효율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사기업들의 임금피크제 참여가 저조한 수준이며 앞으로도 크게 확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대략 20여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 기업의 대부분은 공적기관이다.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감정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등 공기관뿐만 아니라 우리은행 하나은행 광주은행 대구은행 경남은행 등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이외엔 대한전선 대우조선해양 정도가 전부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공공기관과 달리 사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으며 사기업의 경우 사무직은 임금삭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노조가 합의하지 않는다”며 “생산직은 50세 이후 나이에 비례해 노하우가 축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형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땅한 일 없고 평가도 어려워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줄만한 적당한 일이 없다는 게 기업의 전반적인 고민이다. 일단 후선에 빼놓고 업무를 배분해 주기 때문에 만만한 직무가 금융권은 채권추심, 비금융권은 사후관리, 마케팅 정도다.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들은 임금피크제 해당 직원을 △채권추심 △마케팅 △직원 교육 △전문 상담 △지점 감사에 배치했다. 신보 기보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은 기업 컨설팅업무를 맡기고 있고 수자원공사에서는 생수생산공장의 팀장으로 임명한다. 대우조선해양이나 대한전선은 기존에 하던 업무를 계속한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부장급 직원에게 공장 생산라인 팀장을 맡기고 있다”며“적절한 직무를 찾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 3년후엔 많게는 임금피크제 해당 직원이 회사마다 수백명까지 늘어 직무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맡길만한 업무가 포화상태로 된다”고 우려했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성과평가를 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 만 55세가 되면 4년동안 정해진 비율로 임금이 삭감된다. 업무의 종류나 성과와는 전혀 상관 없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책상 하나 놓고 그냥 시간만 보내도 월급은 나온다”면서 “이들 업무가 대부분 후선지원업무라서 실적평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퇴유도·자리보전용 변질

임금피크제가 취지에서 벗어나 명예퇴직 유도용이나 자리보전용으로 변질되고 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은 실적이 나쁘면 나이와 관계없이 곧바로 임금피크제에 포함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정년을 늘리고 월급을 줄이는’쪽으로 가는 반면 민간기업들은 2억원 정도의 명예퇴직금을 주고 내보내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일부 민간기업들은 사무직이나 생산직에 한해서만 적용하기도 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경우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받을 수 있는 명예퇴직금이 매우 적다”며 “나이가 되면 당연히 임금피크제로 간 다음에 일자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대구은행은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지 않으면 24개월 정도의 명퇴금을 주고 있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18개월, 24개월 정도의 임금을 한꺼번에 준다. 이에 따라 대구은행 직원들은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우리은행 직원도 지난해 55명 중 36명만 신청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경우엔 임금 이외에도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어 임금피크제가 인기가 있기는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명퇴금을 충분히 줘 임금피크제에 들어오지 않도록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보, 실적평가제로 개선 검토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보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중이다. 우선 고정금과 성과급을 구분하는 실적평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팀단위 평가를 병행키로 했다. 또 임금피크제 시작 시기를 개인성과에 따라 당기거나 미루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4년에서 6~8년까지도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년은 같다.
필요한 직무를 개발하고 직무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은 임금피크제에서 제외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성과측정을 하지 않고 직무도 많지 않아 겉돌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이를 보완해 보다 효율적인 임금피크제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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