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칼럼>흰 고래 정치(2006.02.10)

지역내일 2006-02-09
흰 고래 정치
안 병 찬 언론학 박사


이 달 초에 홍해에서 침몰한 페리 연락선 알-살람 보카치오98호의 이집트인 선장 사예드 오스마르는 ‘살타성악(殺他成惡)’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배에 화재가 발생해 침몰하게 되자 선장은 퇴선명령도 내리지 않고 가장 빠른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먼저 도망쳤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고 선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엇갈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 진상은 더 가려 봐야 할 것 같다. 왕년에 부안 앞 바다에서 서해페리호가 침몰했을 때 언론은 일제히 ‘선장의 도주’를 대서특필했다. 선체를 인양해보니 선장의 시신이 조타실에서 나와 그가 끝까지 조타실을 지킨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패거리 언론’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들어 난 사례였다.

‘살신성인’과 ‘살타성악’ 선장
강원도 속초시 엑스포 공원에는 4m 높이의 ‘유정충 선장’ 기념동상이 서있다. 유 선장은 1990년 3월 어느 날 어선을 몰고 마라도 쪽으로 조업하러 가다가 폭풍 속에 조난하자 ‘퇴선명령’을 내리고 스스로 조타륜을 잡는다. 선원 21명이 구명뗏목에 대피한 뒤 유 선장은 ‘하나호 침몰 중’이라는 긴급조난신호를 보내고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런데 동해지방해난심판원은 “이 전복사고는 황천항해 준비의 소홀함과 부적절한 조선으로 인하여 발생했다”고 재결함으로써 한때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살신성인으로 영웅화된 유 선장의 동상은 오늘도 동해를 바라보며 죽음과 운명에 관한 명상에 잠겨있는 듯하다.
그로부터 1년 뒤 남아프리카 공화국 해역에서 그리스 여객선 오세아노스호가 조난 침몰했다. 선장은 승객 1백70여명이 배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구조헬리콥터를 먼저 타고 탈출했다. 승객을 버린 이 선장에게 신랄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지구학자들은 바다의 넓이는 총 3억6천8백만㎢이고 심도는 평균 3800m라는 계산치를 내놓았다. 그 광대한 바다는 천변의 조화를 품은 채 출렁거리며 인간을 지배한다. 어떤 선장은 암초 밭을 힘겹게 피해 나가면서 “미나리 밭을 나는 노랑나비를 보고 싸리 울타리를 비행하는 잠자리를 잡는다”고 향수에 젖은 글귀를 항해일지에 적은 예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죽음과 운명, 선과 악에 관한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집념을 품은 선장이 바다의 흰 고래를 끝없이 추격하여 격렬한 사투를 벌이다 죽게 된다는 ‘흰 고래’의 얘기는, 고난을 거듭하면서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인간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갈래갈래 흐트러지고 만년세월이 무너지는 듯한’ 파도의 운동은 세상풍파를 떠오르게 만든다. 선장의 영토는 선박이다. 영토의 전권을 잡는 대신 선장은 선객의 절대 안전을 보장하는 책무를 진다. 선장과 배와 바다의 연줄을 권력과 인간과 사바세상의 내력으로 엮어본들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위기 상황이나 긴박한 처지에 빠졌을 때 드러나는 선장의 행동에서 정치권력자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호 선장의 행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선교 지휘소에서 배를 몰고 있는 ‘정치선장’이다. 지난 일이지만, 작년 가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을 때 대통령을 선장으로 비유한 기고자가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노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정치적 손실을 감내하고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방법으로 국민통합과 21세기형 총력체제를 내놓은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썼다.
며칠 전에 자동차 수리공장에 갈 일이 있었다. 한때 북적거리던 공장인데 썰렁하다. 공장 운영자는 경기가 너무 나빠서 운전자들이 어지간히 차체가 찌그러져도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서 한숨을 쉰다. 바로 경제 양극화의 현장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선장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대한민국호를 어떻게 몰고 갈까 걱정하며 바라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당은 난맥상을 노출한 채 여전히 표류하는 형국이다. 당의장 후보로 나선 여당 중진의 입에서 자책의 말이 나온다. 집권당이 위기를 맞은 것은 민생은 뒷전에 두고 국민의 뜻과 유리되어 개혁을 위한 개혁에만 매달리고 자만에 빠져 국민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야심가들은 정치권력을 잡겠다는 욕망에 매달려 끝없이 흰 고래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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