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일부 지식인들, 정말 걱정이다

지역내일 2006-02-28
일부 지식인들, 정말 걱정이다
유승삼 (언론인 KAIST 초빙교수)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우리 법이 이렇다”
1988년 10월16일 인질극을 벌이던 탈주범 지강헌은 경찰에 사살되기 전 이렇게 절규했다. 그는 600만원을 훔쳤다가 검거돼 징역7년에, 상습범이라고 10년 보호감호처분까지 받은 채 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탈주했다. 새마을운동을 한답시고 73억원을 횡령해 기소된 전두환 동생 전경환은 같은 해 3월30일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지강헌이 볼 때 자기보다 1000배도 더 되는 돈을 ‘훔친’ 전경환의 형량이 오히려 낮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강헌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소박한 것이지만 법적 형평성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국민 대부분의 법감정 또한 지강헌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전경환은 지강원의 속을 뒤틀리게 했던 그 7년 형마저 다 살지 않고 2년10개월 만에 대통령 특사로 가석방됐다.

‘유전무죄’ 눈감는 보수 지식인
그 사건으로부터 무려 18년이 지난, 오늘의 사정은 얼마나 다른가.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지강원이 갈파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18년 전의 지강원 사건이 영화로 열렬히 호소력 있게 재연(‘홀리데이’)되고 있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돈 앞에는 형제도 없다는 도덕적 타락상을 보여주어 온 국민의 혀를 차게 한 두산 일가. 10년 동안 286억원의 회사 돈을 빼 돌린 사실이 발각 난 두산 사주 일가에게 1심은 모조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 해 7월, 110억 달러를 분식 회계 처리한 미국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전 회장에게 미국 연방법원이 징역 25년을 선고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보다 못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이 나선 것 같다. 천 장관은 “미국에서는 몇 조원씩 분식 회계를 저지른 기업인은 엄청난 형을 선고 받는다. 반면 우리 사회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남의 집에 들어가 1억원 어치 물건을 절도한 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판사는 아무도 없을 텐데, 200억, 300억원 씩 횡령한 피고인들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의 생각을 대변한 너무나 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수 언론들과 헌법학자, 변호사, 법관 등 일부 지식인들의 거부반응이다. 봐주기 재판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이 그저 대법원장의 지적이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벌 떼처럼 나선다. 그럼 법관이 권력층이나 재벌 봐주기를 계속해도 모두가 입 꾹 다물어야 한다는 말인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은 어디까지나 법의 공정성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것이지 결코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망각한 소치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들어 법관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의 ‘양심’이란 법관의 자의적 해석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법관이 자아로부터 독립해 입법권자인 국민이 정한 정의에 따르도록 스스로를 구속하는 ‘법률적 양심’을 뜻한다는 게 통설이다.

제2의 지강헌이 나올까 두렵다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어야 한다’는 주문을 ‘국민재판’이니 포퓰리즘이니 하며 몰아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대법원장의 말은 재판 결과가 실질적인 입법권자인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원론일 뿐이다. 대표적인 보수적 헌법학자인 김철수 교수의 헌법교과서도 ‘법원은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국민의 수임 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주장과 한나라당의 논평은 서로 베낀 듯이 닮았다. 보수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의 주장은 논리적 주장이 아니라 파당적 주장 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무지의 소치일까. 차라리 무지의 탓이라면 그래도 좀 낫겠다.
걱정이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이나마 사회정의가 실현돼 간다는 국민의 믿음은 사회안정의 마지막 안전판이다. 보수 언론과 일부 지식인 등 여론 지도층의 부도덕한 주장들은 ‘유전무죄·무전유죄’의 현실에 대한 분노를 힘겹게 안에서 삭이고 있는 서민의 가슴을 마구 헤집는 것이다. 이러다가 제2, 제3의 지강헌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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