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 흔들릴 땐 그가 있었다

막강 구재무부 인맥 …‘관치금융의 첨병’ 비판도

지역내일 2001-02-13 (수정 2001-02-13 오후 6:47:01)
과거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의 금리는 정부가 정했다. 예컨대 은행의 자유저축예금 금리
는 몇 %, 정기예금은 몇 %, 이런 식으로 정부가 금리를 정해 발표했다.
‘규제금리’란 제도가 있었던 옛날옛적 얘기다.
규제금리를 발표할 때쯤이면 재무부 공무원들은 호텔에 모여 밤샘 작업을 했다. 상업어음 재할인금
리, 무역금융금리, 은행의 정기예금금리 등 40∼50개나 되는 금리를 일일이 결정하고 표로 만들어 공
표했다. 다음날 신문 1면은 온통 금리인하 얘기로 가득 찼다.
규제금리는 김영삼 정부 초기까지 이어지다가 금리자유화 조치가 완결되면서 없어졌다. 당시 호텔에
서 밤샘 작업하며 규제금리 결정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 가운데 김석동 금감위 조정총괄담당관도 있
었다. 그는 결국 규제금리 인하조치를 마지막으로 해본 공무원이란 영예(?)를 안게 됐다.

무역상에서 공무원이 된 사람
금융정책 결정의 핵심라인에 있는 김석동 조정총괄담당관은 소싯적 무역회사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
다.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졸업후 삼성물산에 입사, 1년만에 그만두고 78년 무역회사를 차렸다가 금
방 말아먹었긴 했지만….
그가 행정고시(23회)에 합격,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건 79년. 중앙행정관료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재무부였다. 처음에는 환율, 외채 외환보유고 등 외환정책을 담당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관리체
제 하에 있었다. 그만큼 외환관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었다. 87년 IMF 체제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외환정책을 담당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한국금융이 어려움에 처해 국가적인 위기상황으로 촌각을 다투는 곳에는 그가 항
상 있었다.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과 근무시절인 90∼94년엔 금리자유화 프로그램을 최일선에서 만
들어야 했다. 당시 재무부 이재국은 대기업 정책도 담당했다.
90년 5월 8일 노태우 정권시절. ‘5.8 부동산대책’이 나오고 정부와 재벌간에 한판 땅싸움이 벌어졌
을 때 그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재벌에 강권을 휘둘러야 했다. 당시 노태우정권을 괴롭힌
문제는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었다. 재벌들은 업무용 이외에도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
더 많은 땅을 확보해 두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5.8 부동산대책’은 초법적인 정책수단이었다.
그 역시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담당하며 최일선에서 초법을 휘두른 장본인이었다.
94년 김영삼 정권 시절,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발표돼 세상을 뒤흔들었을 때 그는 재무부 이재국
총괄서기관으로 금융부문 대책반장을 맡았다. 그 이후 그는 무슨무슨 대책반장만 8차례나 맡아야 했
다.
“국가적인 비상사태로 정신없이 일할 때 부친이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자리를 뜰 수
는 없고... 미칠지경이었죠. 결국 저도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95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한국은행 중립화와 금융감독기구 개편방안 마련 과정도 그의 주도로 이
루어졌다. 당시 그는 미국유학 발령을 받은 상태였다. 당연히 유학은 취소됐다.

"97년초부터 외환위기 시작됐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사안이 있으면 공무원들은 주로 호텔에 모여 머리 싸매고 정책을 만드는 모
양이다. 당시 그는 과거에 규제금리 결정할 때처럼 호텔에 46일 동안 틀어박혀 한국은행 중립화와 금
융감독 조직개편 방안을 만들었다.
현재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돼 있는 금융감독기구의 기본골격이 그 때 나온 것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그가 연구했던 각국의 금융시스템은 3000페이지에 달하는 12권 짜리 책으로
만들어져 정부 내부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IMF 환란이 시작된 97년 1월, 그는 재경원 외환자원과장으로 재직중이었다. IMF를 막지 못한, 이른바
환란의 주범인 셈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얘기했다.
“97년 1월 외환자원과장으로 왔을 때,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단기외채가 60%를 넘
었어요. 대기업 부도 도미노도 이 때부터입니다. 한보 진로 해태 뉴코아 대농 기아 한라그룹까지 30
대 대기업 가운데 8개가 무너졌습니다. 배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걸 지켜본 셈입니다. 97년 한해, 하
루도 편히 자보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배는 가라앉았습니다.”

관치금융 시비에 휘말려
99년 5월 현재 금융감독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대우대책반장을 맡았다. 대우라는 거대 핵폭탄
이 터질 찰나에 또 그가 있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11월 대란설’이 시장을 짓눌렀다. 이 때 정부
가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긴급처방으로 내놓은 게 채권시장안정기금이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기금 조성을 위해 출자금융기관에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
이다. 또 이 기금이 당초 의도와 달리 금리의 인위적인 하향안정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사실
도 비판의 대상이다. 바로 이런 관치금융 시비의 중심에 김석동 조정총괄담당관이 있었다.
요즘 관치에서 시장경제로 금융환경이 바뀌었다고 얘기들 하지만 지난해도 관치금융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산업은행 회사채 신속인수를 통한 현대살리기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과거 한국경제의 최대
관료인맥이자 관치금융의 ‘모피아’로 불린 구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지난해 금융정책의 전면에 포
진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모피아의 대표격을 꼽으라면 대충 이렇다.
금융정책의 사실상 수장인 이정재 재무부 차관은 구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돼 재정경제원 발
족 전 마지막 이재국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구 재무부 관료인맥이다. 정건용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
장도 이재국 사무관 출신으로 이정재 이재국장 당시 금융정책과장 등을 담당했었으며 99년 재경부 금
융정책국장을 지냈다. 이종구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남상덕 금감위 조정협력관 역시 구 재무부 이
재국 핵심 라인으로 불린다. 그 뒤를 잇는 인물이 김석동 조정총괄담당관과 김광수 은행팀장, 재경부
의 최중경 금융정책과장, 윤용로 은행제도과장, 임종룡 증권제도과장 등도 과거 이재국 사무관을 지
낸 ‘잘나가던’ 재무부 사단이다.
김석동 과장은 오는 5월께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같은 유력 기관
에서 근무할 계획이다. 제 날짜에 떠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금융이 흔들릴 때 자리를
지켰듯이 올해 또 무슨 일이 그의 발목을 잡을 지도 모른다. 금융시장이 원만히 돌아가면 오는 5월
에 미국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이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