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인대 기사2

지역내일 2006-03-07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는 중국 최고의 국가권력기관이자 중국헌법상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 국가의 국정방침을 결정하고, 국가입법권을 행사한다.
전인대의 주요 업무는 입법권, 임면권, 결정권으로 헌법의 개정과 기본 법률의 제정 및 개정을 하고, 국가주석과 부주석을 선출하고 국무원 총리와 부총리의 인선을 결정하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최고인민법원장, 최고인민검찰원장을 선출한다. 또한 국가경제, 사회발전위원회 및 실시 상황과 국가 예산 실무상황에 대한 보고의 심의 및 비준 등 국가사회의 다양한 방면의 문제점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전인대는 1954년 이래 10기 40차 대회(현재 진행중인 전인대 포함)가 개최되었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파행 진행된 3,4기를 제외하고 임기 5년 동안 연 1회씩을 개최되어 왔다.



전인대의 역사
1954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1기 전인대 1차 회의가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을 통과시키고, 국가주석에 마오쩌둥을 선출하였다. 개회사에서 마오쩌둥은 "전인대의 시작은 중국인민이 1949년 중공건립이래의 새로운 승리이자 새로운 발전의 이정표"라고 발표,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대표한 희망찬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같은 인물의 손에 단행된 문화대혁명(1966~76) 기간 중에 각급인민대표의 활동이 멈춰버리고, 제 3기 전인대는 1964년 12월~1965년 1월 사이에 1차 회의, 제 4기 전인대는 1975년 1월에 1차 회의만을 개최하는 등 전인대는 심각히 파괴되었다.
1978년 12월 중공 11기 3중 전회로 전인대는 새로운 발전, 새로운 역사의 시기로 들어섰다. 전국과 지방 각급의 인민대표 및 상무위원회는 헌법과 법률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 받아 입법 및 감독업무, 조직 및 제도건설 등의 방면에서 모두 대단한 발전을 이루며 중국의 정치사회주의민주법제건설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1979년부터 인민대표의 조직체계에 대한 법제가 완비되기 시작하였으며, 1982년 이래 인민대표의 업무제도 역시 강화되었다. 제 9기 전인대를 시작으로 민족, 법률, 재정경제 등 9개 부문에 전문가상무위원회를 새로이 설립하고, 관련안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 심사, 비준을 하였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중국이 실행하는 인민민주독재의 국체와 인민대표대회의 정체는 인민분투의 성과이자 역사의 필연적 선택이다. 이는 당의 지도와 사회주의제도를 견지하고, 인민민주를 실현하는 결정적 의의를 지녔다.” 라고 언급하여 전인대의 역할이 나날이 증대할 것임을 시사했다.



후진타오 체제의 제 10기 전인대
제 10기 전인대 1차 회의는 2003년 3월 5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었다. 10기 전인대의 가장 큰 의의는 장쩌민 이후의 새 지도부로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4세대 지도부의 공식 출범이었다. 당시 가장 큰 이슈는 국가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임한 장쩌민과 국가주석 후진타오사이의 권력관계였다. 특히나 장쩌민의 측근인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쩡칭홍 국가부주석, 자칭긴 정협 주석, 황쥐 국무원 부총리 등 상해방 출신들에 둘러싸인 후주석 체제 내 권력이동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많은 분석가들이 장 전주석이 완전한 권력이양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으나 3차 회의(2005.3.5~14)에서 후진타오가 국가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계승함으로써 후진타오는 당․정․군의 권력을 명목적, 실제적으로 모두 장악한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3차 회의 종결 후에서야 비로소 완전한 의미의 후진타오 중심의 제 4세대 지도부 시대의 출범으로 볼 수 있다.
1차 회의의 의의가 세대교체를 통한 후주석체제 출범이었다면, 2차 회의(2004.3.5~14)에서는 사유재산권의 보호조항의 신설을 들 수 있다. ‘공민의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침해할 수 없다’는 사유재산보호조항이 2차 회의를 통해 신설되어 국내외 기업들이 국가에 의한 재산 몰수나 국유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과감히 투자를 하도록 제도적인 보장을 하게 되었다. 3차 회의에서는 반국가분열법 제정이 큰 이슈였다. 10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반국가분열법은 타이완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추진하거나 평화적인 통일의 틀을 파괴할 경우, 중국 인민해방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으로, 대만독립을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중국 제4세대 지도부의 뜻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반국가분열법과 관련 이와 같이 국가의 앞날이 걸린 주요법률안이 전인대를 통해 제정된 것은 개혁․개방 이후 변화된 전인대의 위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고 평가되었지만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이 전인대의 사전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점은 여전히 전인대가 제약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했다.
제 10기 전인대는 후진타오 체제의 국정정책과 통치이념을 반영한다. 후진타오 체제는 빠른 경제성장 정책보다는 안정 속의 개혁과 발전 정책을 추구한다. 후주석이 제시한 조화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실업률 증가, 빈부격차 확대, 부패문제 등 다양화된 이익관계와 빠른 경제, 사회발전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균형과 공평을 고려한 후진타오 체제의 통치이념이다. 이러한 정책과 이념들은 전인대에서 다뤄지는 안건들에 여실히 드러난다. 1차 회의에서는 사회 구성원의 불만 해소와 안정 달성을 강조, 2차 회의에서의 국정과제로 안정적인 경제성장, 도농 격차 지역간 격차의 완화 등이 제시되었으며, 3차 회의에서는 조화로운 사회주의론을 강조, 현재 진행 중인 4차 회의에서는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과 이를 통한 3농문제 해결을 최우선과제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전인대에 대한 비판
전인대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가 않다. 지난 약 50년간 당의 주요 정책결정에 대해 단 한번도 번복된 적이 없어 서방에서는 ‘고무도장’이라는 냉소적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1978년 개혁개방 이래로 현급 직접선거의 확대와 차액선거를 시작하였으나 전인대 대표 선거는 간접선거여서 인민들은 참정권이 박탈되어 있다. 또 작년 전인대부터는 무기명 전자투표 방식이 도입되었으나 반국가분열법안이 기권 2표의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아직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사회주의국가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일부에서는 전인대가 단지 중국 공산당과 언론의 ‘축제’라는 비난도 있다. 양회가 개최되는 동안 베이징에 들어오는 노동자들을 철저히 검열한다. 또한 인민대표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사회문제에 대한 탄원을 할 수 있는 루트는 여전히 막혀있다. 중국 언론은 뜨거운 취재경쟁을 통해 대대적인 보도를 하지만, 대부분이 지도부의 발언이나 정책입안 등 여전히 일반인과는 철저히 격리되어있다. 실제로 인민대회당 앞 톈안먼 광장은 양회기간동안 차량과 일반인 접근이 모두 금지된다.



최아람리포터 annearcho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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