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때마다 드러나는 비밀금고 속 비자금

금융실명제 이후 계좌추적 회피 목적

지역내일 2006-03-31
현금·양도성예금증서가 대부분 … 실명제 차명계좌 처벌규정 없어 한계

검찰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주)글로비스 압수수색에서 벽장 속 비밀금고를 발견하고 비자금 60여억원 상당을 찾아내면서 기업들과 정치인들의 비자금 관리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93년 이후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자금의 거래관계를 밝히기 위한 검찰수사는 주로 계좌추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좌추적이 불가능한 현금 등을 비밀금고에 보관하는 등의 수법이 대형 비리 사건 때 마다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라도 검찰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발각되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이후 사실상 검은 돈 감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적발된 뭉칫돈 사례들 = 지난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인 김운용 민주당 의원의 자택 및 은행 대여금고에서 미화와 유로화, 일본 엔화 등 모두 100만∼150만 달러 상당의 뭉칫돈을 압수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거액 외환 보관 자체는 처벌대상이 아니지만 보관된 외환의 출처 확인 작업을 통해 조성과정에 불법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서울지검은 횡령혐의로 구속된 중견 건설업체 대표이사 H씨가 빼돌린 회사자금 90억여원을 숨겨놓았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20평형대 빌라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대형 종이박스에 들어있던 75억여원의 현금과 20억여원의 유가증권을 압수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도 한나라당에 전달된 500억원대의 불법정치자금이 현금으로 최돈웅 당시 재정위원장실에 보관돼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전·노 전 대통령도 금융실명제 망에 걸려 = 금융실명제를 미뤘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95년 금융실명제의 망에 걸려 구속됐다.
또 지난 2005년 3월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상길 검사장)는 시중은행 가명계좌에 신탁예금 형태로 관리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73억9000만원을 발견, 과징금과 세금을 제외한 16억4000만원을 국고로 환수했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2628억9600만원 중 국고 환수액이 79.6%인 2091억5200만원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10년 동안 거래하지 않은 가명계좌에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자금관리인 이 모씨 등을 조사해 이를 밝혀냈다.
이 계좌는 1993년 2월 실존하지 않는 ‘이두철’이란 이름으로 개설됐다. 자금관리인 이씨는 이 계좌의 실소유자가 노 전 대통령이라고 시인했고, 노 전 대통령도 변호사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계좌가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계좌 추적을 통해 비리가 확인된 차남 현철씨가 구속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차명계좌 근절 등 과제 = 금융실명제 시행 후 성과 이면에는 한계점도 있다. 금융실명제는 금융·사법 당국의 계좌 추적 남발과 근절되지 않는 차명거래, 종합과세 확대 등으로 인해 아직은 ‘미완의 제도’로 여겨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금융실명제에서는 차명 예금이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어 법 취지를 정확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차명 예금의 범위를 축소하고 자금세탁법을 강화해 금융실명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검사는 “실명 확인은 계좌를 새로 만들 때에만 실시하고 중간에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을 갖고 있으면 본인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하다”며 “더욱 큰 문제는 차명계좌가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처벌규정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실명제 도입 과정 = 금융실명제가 지난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긴급 경제명령을 통해 전격 단행된지 13년 7개월이 지났다. 금융실명제는 부정부패의 온상인 ‘검은 돈’을 뿌리 뽑는다는 명제를 내걸고 등장했다.
당시 긴급 경제명령으로 시행되기까지 반발과 우려가 많았다. 1982년에 금융실명제법이 만들어진 이후 11년 가까이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당초 82년 5공 시절 장영자씨 어음 사기 사건을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해 83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이 발표됐으며 82년 9월에는 금융실명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82년 12월 금융실명제를 86년 이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취임 후 또다시 법 시행을 91년 이후로 늦췄으며 90년대 들어서는 경기 악화를 이유로 실시가 유보됐다. 금융실명제가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만큼 시행 후 경제와 정치,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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