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총리의 유럽형과 동남아형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17~18일 이틀 동안 계속된 한명숙 총리 지명자 국회 청문회는 대한민국 수립이후 처음 탄생한 여성 총리가 국민에게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탑 클래스 정치인으로 성장한 한 민주화 운동가의 험난한 전사(前史)에 비추어 본다면 청문회 석상 야당 의원들의 괴롭힘 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긴 세월을 인고와 자기희생으로 쌓아올린 한국 여성의 소문난 미덕인 그 끈질김에 대하여 당대에 사는 사람들이 기본적 예의를 벗어나는 언설을 농하는 모습은 비애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한명숙 총리가 온화함과 덕성스러움을 잃지 않은 것은 참으로 대견하다. 어떻든 간에 한명숙 총리는 청문회의 야당공세에 선방했다. 국무총리 인준 절차의 한 부분인 청문회는 앞으로 이어질 총리 한명숙의 정상급 정치 행로의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류가정 출신, 단단한 학력
정상급 여성 정치인, 이를테면 국무총리나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거나 성취한 여성 정치인들을 나는 유럽형과 동남아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이른바 이념형(idealer Typus)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인데, 그 이전에는 여성이 <정치 싸움터="">(political arena)에 등장한 경우가 아주 드물었던 까닭에 분석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에 영국 대처 수상이 선을 보인 이후 북 유럽의 여러 나라, 노르웨이 핀란드 아일랜드 등에 여성 대통령이 출현하였고, 2005년에는 독일에서 통일이전 동독 출신의 메르켈이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칸츨러(총리)에 올랐다.
흥미 있는 현상은 가톨릭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남성 지배의 프랑스에서 최근 2007년 대통령 선거 사회당의 강력한 후보로서 여성 의원인 세고렘 르와얄(Segoleme Royal)이 인기를 몰고 있는 사실이다. 르와얄은 보수적 집권당이 <최초고용법>(CPE)을 강행한 결과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후유증으로 집권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감으로 남은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내무상의 지지율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대처 이후 르와얄에 이르기까지 정상급에 도전하거나 성취한 여성 정치가의 공통점은 예외 없이 중류가정 출신에다 단단한 학력의 소유자란 점이다. 왕가 혹은 영주의 딸로서 여왕 혹은 공주의 ‘선망 이미지’를 발산하는 기존의 부러움의 여성상을 내버리고 어디까지나 당사자 능력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기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성 남성 정치인의 부패와 현실순응주의에 대한 환멸이 참신한 여성에 대한 갈망 내지 호기심으로 변환된 것이다. 물론 남녀평등이 정치의 영역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외면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편 아세아에서는 동북아 3국(한국, 중국, 일본)에 정상급 여성 정치가의 출현이 지지부진하였던데 비해 동남아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여성이 총리와 대통령에 선출되는 예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특기할 것은 1960년대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지금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경우가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을 입고 정계에 진출하였던 것인데 공주형 여성 정치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성의 정치적 권위와 자산을 물려받은 동남아의 여성 대통령은 거의 모두 실패로 끝난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다.
남성 권위 승계한 사이비 민주
여기서 동남아 형을 일반화하는 데는 하나의 예외, 즉 인디라 간디를 빼놓아야 한다. 그것은 간디가 총명하다는 일반적 평가이외에 그의 부친이자 인도의 초대 수상인 아버지 네루를 도와 인도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던 점 때문이다. 간디의 경우를 제외하고 동남아의 여성 대통령들은 여성의 일반적 지위가 전혀 향상되지 않은 제도적-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남성의 정치적 권위를 일방적으로 승계한 일종의 사이비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남녀평등이란 긴 지평에서 보자면 일종의 변종이자 희극에 불과했다.
한명숙 총리의 정치적 장래를 점치는 데는 그 자신의 능력과 시운이 결정적 변수라 하겠으나 출신 조건으로 미루어서는 동남아형이라기보다는 유럽형이래야 맞다. 유럽형의 정상급 여성 정치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여성 일반의 사회적 지위향상(남성의 여성관의 변화)이 활발하게 진척되어야함은 두말 할 나위없다. 이 점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기성 정치인들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에서는 반드시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여성 총리의 출현! 그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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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고용법>정치>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17~18일 이틀 동안 계속된 한명숙 총리 지명자 국회 청문회는 대한민국 수립이후 처음 탄생한 여성 총리가 국민에게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탑 클래스 정치인으로 성장한 한 민주화 운동가의 험난한 전사(前史)에 비추어 본다면 청문회 석상 야당 의원들의 괴롭힘 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긴 세월을 인고와 자기희생으로 쌓아올린 한국 여성의 소문난 미덕인 그 끈질김에 대하여 당대에 사는 사람들이 기본적 예의를 벗어나는 언설을 농하는 모습은 비애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한명숙 총리가 온화함과 덕성스러움을 잃지 않은 것은 참으로 대견하다. 어떻든 간에 한명숙 총리는 청문회의 야당공세에 선방했다. 국무총리 인준 절차의 한 부분인 청문회는 앞으로 이어질 총리 한명숙의 정상급 정치 행로의 첫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류가정 출신, 단단한 학력
정상급 여성 정치인, 이를테면 국무총리나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거나 성취한 여성 정치인들을 나는 유럽형과 동남아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이른바 이념형(idealer Typus)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인데, 그 이전에는 여성이 <정치 싸움터="">(political arena)에 등장한 경우가 아주 드물었던 까닭에 분석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에 영국 대처 수상이 선을 보인 이후 북 유럽의 여러 나라, 노르웨이 핀란드 아일랜드 등에 여성 대통령이 출현하였고, 2005년에는 독일에서 통일이전 동독 출신의 메르켈이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칸츨러(총리)에 올랐다.
흥미 있는 현상은 가톨릭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남성 지배의 프랑스에서 최근 2007년 대통령 선거 사회당의 강력한 후보로서 여성 의원인 세고렘 르와얄(Segoleme Royal)이 인기를 몰고 있는 사실이다. 르와얄은 보수적 집권당이 <최초고용법>(CPE)을 강행한 결과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후유증으로 집권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감으로 남은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내무상의 지지율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대처 이후 르와얄에 이르기까지 정상급에 도전하거나 성취한 여성 정치가의 공통점은 예외 없이 중류가정 출신에다 단단한 학력의 소유자란 점이다. 왕가 혹은 영주의 딸로서 여왕 혹은 공주의 ‘선망 이미지’를 발산하는 기존의 부러움의 여성상을 내버리고 어디까지나 당사자 능력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기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성 남성 정치인의 부패와 현실순응주의에 대한 환멸이 참신한 여성에 대한 갈망 내지 호기심으로 변환된 것이다. 물론 남녀평등이 정치의 영역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외면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편 아세아에서는 동북아 3국(한국, 중국, 일본)에 정상급 여성 정치가의 출현이 지지부진하였던데 비해 동남아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여성이 총리와 대통령에 선출되는 예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특기할 것은 1960년대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지금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경우가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을 입고 정계에 진출하였던 것인데 공주형 여성 정치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성의 정치적 권위와 자산을 물려받은 동남아의 여성 대통령은 거의 모두 실패로 끝난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다.
남성 권위 승계한 사이비 민주
여기서 동남아 형을 일반화하는 데는 하나의 예외, 즉 인디라 간디를 빼놓아야 한다. 그것은 간디가 총명하다는 일반적 평가이외에 그의 부친이자 인도의 초대 수상인 아버지 네루를 도와 인도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던 점 때문이다. 간디의 경우를 제외하고 동남아의 여성 대통령들은 여성의 일반적 지위가 전혀 향상되지 않은 제도적-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남성의 정치적 권위를 일방적으로 승계한 일종의 사이비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남녀평등이란 긴 지평에서 보자면 일종의 변종이자 희극에 불과했다.
한명숙 총리의 정치적 장래를 점치는 데는 그 자신의 능력과 시운이 결정적 변수라 하겠으나 출신 조건으로 미루어서는 동남아형이라기보다는 유럽형이래야 맞다. 유럽형의 정상급 여성 정치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여성 일반의 사회적 지위향상(남성의 여성관의 변화)이 활발하게 진척되어야함은 두말 할 나위없다. 이 점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기성 정치인들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에서는 반드시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여성 총리의 출현! 그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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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고용법>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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