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예산, 그냥 따놓고 보자
최영희/본지 발행인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날, 서울시청 맞은편 호텔에서 모임이 있었다. 그 시각에 우리멤버 중 한사람의 남편이 시청 정문 앞에서 서울시민의 재산을 독재자의 기념관으로 내줄 수 없다며 ‘박정희 기념관 반대’ 나 홀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눈도 뜰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교통이 마비되어 텅비어버린 하얀 광장을 향해 피켓을 들고 서 있을 그분을 생각하며 모두들 ‘예산낭비’와 ‘국민의 재산’에 대해 열변들을 토했다.
참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들 많다.
국세청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의 100일 릴레이 시위가 진행되고, 어떤 사람은 낭비한 세금을 환수해야 한다고 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시위 대상자들은 이런 ‘돈키호테’와 ‘소영웅주의자’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지만 우리사회는 지금 이런 돈키호테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예산 따는 곳 임자, 운영은 나중 문제
지난해 말, 지방 소도시의 시청강당에서 강연이 있었다. 청사는 가난이 쫄쫄 흐르는 시골학교 건물 같았다. 사무실 역시 학교 교무실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금년부터 짓기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전시한 여성회관 조감도는 규모나 멋스러움과 화려한 디자인을 보니 시청을 창고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 여성단체 간부의 볼멘소리는 “말이 여성회관이지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17%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여성회관이라고 이름 붙였느냐고 항의하니 그렇게 해야 전액 국고지원이 나온다는 답변이었단다. 새로 들어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여유 있는 여성들의 여가선용을 위한 프로그램 몇 개로 일단 예산을 따놓고 보자는 지역출신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의 욕심과 업적주의가 곳곳에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며칠전 한 관공서 앞을 지나가는데 입구에 세워진 돌에 ‘대통령 노태우’가 선명했다. 바로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그에게 어떤 과오가 있건 간에 그의 재임시에 세워진 건물은 그의 이름 석자를 후세에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도 건물(?)은 남는다’고 했던가.
특히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곳곳에 돌로된 거대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20여명도 채 안되는 기초의원들을 위해 의원회관이 건립되고 교통도 불편한 구석진 곳에 ‘○○구 문화관’, ‘○○시 문화관’들이 앞다투어 세워진 후 프로그램을 채우지 못해 잠겨진 날들도 많다.
구민회관, 문화관, 여성회관, 사회복지관, 여성발전센터, 일하는 여성의집 등 다양한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들의 쓰임새는 사실은 주로 전업주부들을 위한 여가 활동과 직업훈련활동으로 대별되고 있다.
구나 시, 즉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것들과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운영부처가 다르다 보니 프로그램 내용이 똑같은데도 지역적 안배가 없이 예산 따가는 곳이 임자이고, 운영성과는 나중 문제다.
설립방식도 문제가 많다. 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한 면적, 직업 훈련 후 수요 예측, 부동산 임대료 비교 등의 연구가 없이 중앙정부의 획일적 편의주의적 정책은 군 단위의 농촌지방에 서울과 똑같은 임대보증금을 준다든지, 소규모 시설로 시작해도 되는 소도시에 기준면적을 대도시와 똑같이 몇 백 평으로 정해 놓고 무조건 시행을 지시하기도 한다. 또 운영비 지원도 배출인원과 프로그램 내용, 성과에 따른 가감없이 일률적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이다.
여성부 출범계기,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일해야
특히 노동부가 주관했던 일하는 여성의 집은 꼭 필요한 곳보다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에 대한 업적 때문에 무조건 유치하려는 로비력으로 결정된 곳들도 있다.
비단 세금낭비가 여성정책에서만은 아닐텐데 뭐그리 쇳소리냐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처럼 펑펑 새는 구멍을 그대로 둔 채 ‘그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이번 여성부 출범을 계기로 여성정책만이라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정리하여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디인지 각 부처와 지자체가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건 중앙정부건 간에 모두 우리 국민의 돈이기 때문이다.
운영하고 있는 단체들도 지역적 고려, 단체 역량 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반납해서 보다 유용하게 국민의 세금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여성들이라도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최영희/본지 발행인내일시론>
최영희/본지 발행인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날, 서울시청 맞은편 호텔에서 모임이 있었다. 그 시각에 우리멤버 중 한사람의 남편이 시청 정문 앞에서 서울시민의 재산을 독재자의 기념관으로 내줄 수 없다며 ‘박정희 기념관 반대’ 나 홀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눈도 뜰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교통이 마비되어 텅비어버린 하얀 광장을 향해 피켓을 들고 서 있을 그분을 생각하며 모두들 ‘예산낭비’와 ‘국민의 재산’에 대해 열변들을 토했다.
참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들 많다.
국세청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의 100일 릴레이 시위가 진행되고, 어떤 사람은 낭비한 세금을 환수해야 한다고 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시위 대상자들은 이런 ‘돈키호테’와 ‘소영웅주의자’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지만 우리사회는 지금 이런 돈키호테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예산 따는 곳 임자, 운영은 나중 문제
지난해 말, 지방 소도시의 시청강당에서 강연이 있었다. 청사는 가난이 쫄쫄 흐르는 시골학교 건물 같았다. 사무실 역시 학교 교무실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금년부터 짓기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전시한 여성회관 조감도는 규모나 멋스러움과 화려한 디자인을 보니 시청을 창고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 여성단체 간부의 볼멘소리는 “말이 여성회관이지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17%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여성회관이라고 이름 붙였느냐고 항의하니 그렇게 해야 전액 국고지원이 나온다는 답변이었단다. 새로 들어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여유 있는 여성들의 여가선용을 위한 프로그램 몇 개로 일단 예산을 따놓고 보자는 지역출신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의 욕심과 업적주의가 곳곳에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며칠전 한 관공서 앞을 지나가는데 입구에 세워진 돌에 ‘대통령 노태우’가 선명했다. 바로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그에게 어떤 과오가 있건 간에 그의 재임시에 세워진 건물은 그의 이름 석자를 후세에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도 건물(?)은 남는다’고 했던가.
특히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곳곳에 돌로된 거대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20여명도 채 안되는 기초의원들을 위해 의원회관이 건립되고 교통도 불편한 구석진 곳에 ‘○○구 문화관’, ‘○○시 문화관’들이 앞다투어 세워진 후 프로그램을 채우지 못해 잠겨진 날들도 많다.
구민회관, 문화관, 여성회관, 사회복지관, 여성발전센터, 일하는 여성의집 등 다양한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들의 쓰임새는 사실은 주로 전업주부들을 위한 여가 활동과 직업훈련활동으로 대별되고 있다.
구나 시, 즉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것들과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운영부처가 다르다 보니 프로그램 내용이 똑같은데도 지역적 안배가 없이 예산 따가는 곳이 임자이고, 운영성과는 나중 문제다.
설립방식도 문제가 많다. 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한 면적, 직업 훈련 후 수요 예측, 부동산 임대료 비교 등의 연구가 없이 중앙정부의 획일적 편의주의적 정책은 군 단위의 농촌지방에 서울과 똑같은 임대보증금을 준다든지, 소규모 시설로 시작해도 되는 소도시에 기준면적을 대도시와 똑같이 몇 백 평으로 정해 놓고 무조건 시행을 지시하기도 한다. 또 운영비 지원도 배출인원과 프로그램 내용, 성과에 따른 가감없이 일률적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이다.
여성부 출범계기,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일해야
특히 노동부가 주관했던 일하는 여성의 집은 꼭 필요한 곳보다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에 대한 업적 때문에 무조건 유치하려는 로비력으로 결정된 곳들도 있다.
비단 세금낭비가 여성정책에서만은 아닐텐데 뭐그리 쇳소리냐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처럼 펑펑 새는 구멍을 그대로 둔 채 ‘그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이번 여성부 출범을 계기로 여성정책만이라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정리하여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디인지 각 부처와 지자체가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건 중앙정부건 간에 모두 우리 국민의 돈이기 때문이다.
운영하고 있는 단체들도 지역적 고려, 단체 역량 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반납해서 보다 유용하게 국민의 세금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여성들이라도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최영희/본지 발행인내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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