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12. 하늘재 아래 북향한 미륵불, 미륵대원

상상력으로 가득한 미륵세상의 폐허

지역내일 2001-02-16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뒤로는 백두대간 부봉(935m)이 에워싸고 앞으로는 월악산(1094m)
중봉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미륵리 동쪽은 포암산(962m), 서쪽은 마역봉(940m)이다.
조령 제3관문―마역봉―부봉―하늘재―포암산으로 이어지는 이 일대 백두대간은 미륵리를 중심
으로 분청사기 막사발 같은 형세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폐사지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입체적인
공간을 간직한 ‘미륵대원’은 바로 이곳에 자리잡았다.
5만분의 1 지형도를 펴놓고 보면, 미륵대원은 막사발 대접에 떠놓은 정한수 표면 한가운데 나뭇
잎처럼 떠 있다. 미륵리에서 발원, 월악산 송계계곡을 이루는 동달천 물줄기는 진안 마이산의 ‘거
꾸리 고드름’처럼 정북으로 솟아올라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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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원의 공식 문화재 명칭은 ‘중원군 미륵리 폐사지’다. 또 수안보에서 이곳 미륵대원으로
이어지는 3번국도 표지판에는 ‘미륵사지’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발굴조사 과정에서 ‘대원사(大院寺)’라고 표기된 명문기와가 출토되었고, 《고려사》
에도 이 절이 위치한 계립령(하늘재)을 ‘대원령(大院嶺)’이라 기록하고 있어 이곳이 미륵대원의
옛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절이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남아 있는 유
구(遺構) ― 석탑, 석등, 자연석에 새겨진 돌거북, 누워 있는 당간지주, 어지러운 주춧돌들, 그리고
북쪽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높이 10.6m의 거대한 미륵불 등 ― 들로 미루어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이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왕세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들러 미륵부처를 만들었고, 동행했던 덕주공주가 송계계곡 북쪽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했다
고 한다. 그러나 망국의 왕자에게 이렇게 엄청난 공력을 이룰 만한 재력과 권세가 있었을까?
이 일대를 발굴조사한 건축사학자 신영훈 선생은 여러가지 정황과 역사적 배경을 추론하여 미륵
대원이 901년에서 937년 사이에 창건되어, 1238년에서 1256년 사이에 몽고군의 침략과 방화에 의해
폐사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삼국시대부터 하늘재와 지릅재를
관장하는 이 요충지에 사찰이나 객원이 경영되었을 것이고 △후삼국시기에 이 지역을 가장 먼저 점
령한 ‘궁예’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고려 건국 후 충주 유씨 세력들이 왕건의
지원을 받아 석굴을 쌓아 미륵대원으로 중창했을 것이라는 설득력있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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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시기를 이렇게 본다면, 미륵대원 일대는 요즘 인기절정인 TV 역사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대주도금과 박술희가 말 타고 백두대간을 넘나들던 주무대가 되는 셈이다.
실제 미륵리와 경북 문경 관음리를 잇는 하늘재는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하기 위해 아달라왕
3년(156)에 개척한 길이다. 남진하려던 고구려와 북진하려는 신라는 이 고개를 두고 첨예한 대결을
보였고, 이런 와중에 고구려의 바보 온달 장군은 인근 단양의 온달산성에서 죽었다.
고려 태조 왕건도 후백제를 칠 때 이 고개를 거쳐갔다. 팔만대장경도 이 고개길을 지나 해인사로
갔다. 대장경은 강화도에서 남한강을 타고 월악산 입구까지 거슬러 올라와 하늘재를 넘고 문경을
지나 유곡(幽谷)에서 낙동강을 타고 해인사로 옮겨졌다.
삼국∼통일신라∼고려시대까지 한반도의 남북축을 잇는 주요 도로의 기능을 했던 하늘재는 조선
시대 문경새재가 뚫리면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미륵대원도 잊혀진 역사 속에 묻혀 있었
다.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미륵대원은 마을과 농지, 그리고 가시덤불이 뒤엉킨
곳이었다고 한다.
미륵부처를 감쌌던 가시덤불을 거둬낸 이는 한 여인이었다. 허씨 성을 가진 이 보살은 꿈에서
이 미륵부처님을 보고 덤불을 일일이 손으로 거뒀다고 한다.
생계는 탁발로 이으며 수년을 공들인 끝에 지금의 미륵부처 모습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큰불이 났지만 불타는 소나무가 반대로 넘어져 미륵불은 다치지 않았고, 큰 홍수도 피해갔다
는 얘기도 전해진다.
미륵대원이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76년 수안보온천과 연계한 문화유적 관광지를 조성
하기 위해 주변을 정비하던 중 지대석, 주춧돌, 건물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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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사적 317호로 지정된 미륵대원의 터는 다른 절들과는 달리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절 구조는
제일 안쪽(남쪽)에 석불이 있고 그 앞으로 석등과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인 1탑식 가람이다. 석
불 주위는 입구(북쪽)만 트여 있을 뿐 3면이 거대한 석축으로 둘러싸여 있다.
본래 이 석축 위에는 나무로 지어진 법당이 올라가 있었다. 석불은 지금처럼 비바람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석굴구조의 법당 안에 모셔져 있었다. 9 × 11m 넓이에 6m 높이의 석축을 쌓고,
그 가운데 10.6m의 커다란 미륵불을 조성하였으니 아주 감동적인 공간을 연출했을 것이다.
미륵불은 돌 다섯장을 이었고, 한장으로 갓돌을 만들어 머리에 씌웠다. 한눈에 고려시대의 대불
임을 보여주는데, 전체적으로 세련되거나 엄숙 장엄한 분위기보다는 친근하고 진솔한 느낌이 든다.
세상의 어지러움이 진리를 더럽히지 못하듯 천년의 풍상(風霜)이 그 상호를 범치 못한 것일까. 몽고
침입 때 불에 탄 폐허 속에 서 있는 이 미륵불의 얼굴은 맑게 빛난다.
석굴에는 본존불로 모셨던 미륵불 외에 이 본존불을 장엄하기 위해 새긴 여래좌상, 이불병좌상,
삼불좌상, 반가상 및 사자상, 도깨비상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5층석탑(보물95호), 3층석
탑, 팔각석등, 방형석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돌거북 등이 남아 당시의 웅장함을 말없이 전해주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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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륵대원은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 미륵불을 둘러싼 서쪽 석축은 커다란 균열이 생겨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히는 석물들도 불안한 상태다. 유적
지 한쪽은 컨테이너 임시건물로 지어진 세계사가 중창불사를 계획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폐허는 폐허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폐허를 폐허답게, 영언히 아름답게 보
존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는 길

도로안내
서울기점 경부고속도로 안성I.C, 중부고속도로 이천I.C 이용,2시간 정도 소요

현지교통
1)청주에서 충주까지 직행버스 10분 간격 운행, 1시간 40분 소요
2)충주에서 수안보까지 직행버스 20분 간격 운행, 45분 소요
3) " 미륵리까지 시내버스 10분 간격 운행, 40분 소요
4)수안보에서 미륵리까지 시내버스 30분 간격 운행, 30분 소요


<참고> : 없어도 됨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는 북상하다가 산간협곡에 숙박지를 마련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날
밤 태자는 꿈에 관음보살을 만난다. 보살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건조하고,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니 포덕함을 잊지 말라”고 했다.
마의태자가 동생인 덕주공주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같은 시간에 공주도 같은 현몽을 받았다고
하였다. 다음날 고개를 넘어 현몽한대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최고봉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석불
입상을 세우고, 마주 보이는 영봉밑에 마애불상을 조각했다.
­ 《상모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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