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 총재’, ‘경제 대통령’, ‘경제 마법사’, ‘시장 지배자’, ‘통화정책의 거장’ 이 모두가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얼마 전 은퇴한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린스펀은 FRB 의장직을 5 번이나 연임하며 18년간 미국 경제의 사령탑 노릇을 해왔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경제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 속에도 물가는 안정되고 실업률은 하락했다. 1000대에 머물렀던 다우지수는 무려 1만대로 수직 상승했다.
어떻게 그린스펀은 이런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는 “그린스펀은 위기 때마다 뛰어난 예지력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잠시 그린스펀 의장의 뒤안길을 돌아보자. FRB의장에 취임한지 불과 두 달 만에 맞이한 이른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는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다. 1987년 10월19일의 월요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위기상황에서 나온 “FRB는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다.”는 그린스펀의 말은 어둠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일거에 금융시장의 불안은 해소되었고 다우지수는 바로 사상 최대의 급등세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96년 12월, 그의 예지력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당시 폭등세를 나타내던 미국 증시에 대해 그는 저 유명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말로 우려를 나타냈다. 주가는 하루 아침에 폭락했고 이후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의 흐름이 결정된다는 ‘그린스펀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경제 문제의 본질을 궤뚫는 그린스펀의 혜안은 금융교육을 강조한 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이끌던 미국 경제는 90년대 후반 들어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해마다 낮아지는 저축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개인파산이 미국 경제의 심각한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예컨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개인 가처분 소득’은 47% 증가했지만 저축률은 1992년 8.7%에서 2000년에는 0%로 뚝 떨어졌다. 반면 1990년 200억 달러 수준이던 신용카드 채무는 2000년에는 600억 달러로 3배 가까이 급증했고, 개인 파산자 역시 69% 나 늘어났다. 이와 함께 미국 사회는 국가경제는 성장을 거듭하는 데 반해 개인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린스펀은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돈의 소중함과 관리방법을 모르는 ‘금융문맹’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린스펀에게 ‘금융교육’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었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금융교육이야말로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근본적인(Fundamental) 수단이다.”2001년 의회가 주최한 한 강연회에서 그린스펀이 한 말이다.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융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돈에 대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평생 후회하는 일을 막으려면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이렇듯 그린스펀이 조기 금융교육을 강조하는 데는 그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주식 중개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린스펀의 아버지, 허버트 그린스펀(Herbert Greenspan) 은 어린 아들의 금융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특히 그는 경제 현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제적 사고’를 키워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은 허버트 그린스펀의 저서 <경기 회복에="" 앞서(recovery="" ahead)="">에 잘 나타나 있다. 책의 서문에는 아들에게 바치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귀가 씌여 있다 “이 책은 너의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끝에 나온 결실이다.
아빠의 작은 노력이 네가 앞으로 비슷한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책에 담겨있는 내용을 떠올리며 너만의 시각을 갖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이 말은 결국 그린스펀의 삶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어린시절 야구와 음악에 심취했던 그린스펀이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북처럼 가슴을 울려서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울림이 되어서 그린스펀의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그린스펀 자신이야말로 조기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더더욱 아이들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 되는 때이다. 이 의미 있는 시기에 아이의 금융교육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부모의 작은 관심이 훗날 우리 경제, 아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미래의 경제 대통령’을 만들지 모를 일이다.
국민은행 연구소 박철 연구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경기>
그린스펀은 FRB 의장직을 5 번이나 연임하며 18년간 미국 경제의 사령탑 노릇을 해왔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경제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 속에도 물가는 안정되고 실업률은 하락했다. 1000대에 머물렀던 다우지수는 무려 1만대로 수직 상승했다.
어떻게 그린스펀은 이런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는 “그린스펀은 위기 때마다 뛰어난 예지력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잠시 그린스펀 의장의 뒤안길을 돌아보자. FRB의장에 취임한지 불과 두 달 만에 맞이한 이른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는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다. 1987년 10월19일의 월요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위기상황에서 나온 “FRB는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다.”는 그린스펀의 말은 어둠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일거에 금융시장의 불안은 해소되었고 다우지수는 바로 사상 최대의 급등세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96년 12월, 그의 예지력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당시 폭등세를 나타내던 미국 증시에 대해 그는 저 유명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말로 우려를 나타냈다. 주가는 하루 아침에 폭락했고 이후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의 흐름이 결정된다는 ‘그린스펀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경제 문제의 본질을 궤뚫는 그린스펀의 혜안은 금융교육을 강조한 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이끌던 미국 경제는 90년대 후반 들어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었다. 해마다 낮아지는 저축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개인파산이 미국 경제의 심각한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예컨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개인 가처분 소득’은 47% 증가했지만 저축률은 1992년 8.7%에서 2000년에는 0%로 뚝 떨어졌다. 반면 1990년 200억 달러 수준이던 신용카드 채무는 2000년에는 600억 달러로 3배 가까이 급증했고, 개인 파산자 역시 69% 나 늘어났다. 이와 함께 미국 사회는 국가경제는 성장을 거듭하는 데 반해 개인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린스펀은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돈의 소중함과 관리방법을 모르는 ‘금융문맹’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린스펀에게 ‘금융교육’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었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금융교육이야말로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근본적인(Fundamental) 수단이다.”2001년 의회가 주최한 한 강연회에서 그린스펀이 한 말이다.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융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돈에 대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평생 후회하는 일을 막으려면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이렇듯 그린스펀이 조기 금융교육을 강조하는 데는 그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주식 중개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린스펀의 아버지, 허버트 그린스펀(Herbert Greenspan) 은 어린 아들의 금융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특히 그는 경제 현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제적 사고’를 키워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은 허버트 그린스펀의 저서 <경기 회복에="" 앞서(recovery="" ahead)="">에 잘 나타나 있다. 책의 서문에는 아들에게 바치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귀가 씌여 있다 “이 책은 너의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끝에 나온 결실이다.
아빠의 작은 노력이 네가 앞으로 비슷한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책에 담겨있는 내용을 떠올리며 너만의 시각을 갖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이 말은 결국 그린스펀의 삶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어린시절 야구와 음악에 심취했던 그린스펀이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북처럼 가슴을 울려서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울림이 되어서 그린스펀의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그린스펀 자신이야말로 조기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더더욱 아이들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 되는 때이다. 이 의미 있는 시기에 아이의 금융교육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부모의 작은 관심이 훗날 우리 경제, 아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미래의 경제 대통령’을 만들지 모를 일이다.
국민은행 연구소 박철 연구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경기>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