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이것이 경쟁력> ② 교훈

GM 회생, 현대차가 희생양 되나

조지아주, 기아차 기공식 연기에 충격 … 레이니 전 미대사, “한국 정부 성격상 예견된 일”

지역내일 2006-04-21
최근 수년간 승승장구하던 한국 자동차업계의 맏형인 현대자동차에 강풍이 휘몰아쳤다. 이른바 비자금 사건 등이 불거진 가운데, 환율 하락과 유가 상승은 이 회사의 수익구조도 악화시킬 전망이다. 본지는 최근 정치경제 상황이 우리 자동차업계의 성장 동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다. 이와 함께 세계 자동차산업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 업계가 살아남을 방안은 무엇인지 살핀다.

현대기아차 사태는 이미 세계적인 화제거리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남부 조지아 주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주의 대표적인 지역신문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com)에서 그러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신문은 지난 5일자(인터넷 판은 9일자) 1면 머리기사에 “그룹 수사 직면한 기아차(원제:Kia, parent scrutinized)로 인해 조지아 주가 속절없이 말려들고 있다”고 적었다.

“한국 정부,
현대차 주시해 왔다”
기아차는 지난 2월 조지아 주정부와 12억 달러가 소요되는 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계약했다. 이 공장이 가동되면 조지아 주는 최소 4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희망에 부푼 터다. 그러나 정의선 사장에게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기아차측이 기공식을 무기한 연기해 달라고 요청, 주정부를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 실은 기아차 입장에서 보아도 조지아 주는 미국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곳으로 그 위상을 높이는 데 더 없을 장소다.
문제는 기아차의 요청이 “조지아 주민들이 그토록 기대하던 바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이라는 평가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작금의 사태는 한국 경제가 아직 시장경제에 진입하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데 따른 것이며, 그 배경으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현 정부가 현대차와 같은 재벌을 예의주시해 왔다”는, 같은 남부 출신인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의 말이 인용되고 있다.
기사는 또한 지금 사태가 현대기아차에게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은 때에 찾아왔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조지아 주를 포함하여 현대기아차는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약속해 놓은 상태이고, 그에 따라 미친 듯이 사세를 확장할 바로 그 시점에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사는 “한국 경제의 성장에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이 수사가 조지아 주의 계획에 차질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인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록 공공성의 측면에서 현대기아차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선할 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레이니 전 대사의 말처럼 “이 사태는 결국 빠른 부의 획득과 민주적 절차를 조화시키기 위해 한국 국민이 감내해야 할 성장통의 일부”이라는 것이 이유다.
기아차사태가 조지아 주정부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여겨지게 된 데는, GM과 포드가 주도 애틀랜타 공장의 폐쇄를 결정한 뼈아픈 사정이 있다. 두 회사가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들의 회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한때 세계 자동차의 메카라고까지 불렸던 디트로이트시는 그러한 분위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디트로이트,
덩달아 공황 상태
이 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 포드는 올해 말까지 4000명을, 이어 2012년까지 3만 명을 내보낼 예정이며 이와 함께 2008년까지 6개 공장을, 이어 2012년까지 8개 공장을 추가로 폐쇄할 계획이다. GM도 순차적으로 3만명을 내보내고 이와 함께 2008년까지 12개 공장을 폐쇄할 계획이다. 그 결과 포드는 연산 120만대, GM은 연산 100만대의 생산능력을 각각 상실할 전망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회사들의 자동차 판매 실적은 신통치 않다. 당장 지난 3월만 해도 GM은 36만대, 포드는 29만대에 못 미치는 월 판매량으로 각각 전년동기대비 14.4%, 4.7%의 감소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가 6.9%, 현대차가 4.3% 성장세를 보인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GM과 포드가 생산 감축에 돌입함에 따라 이들 회사만 바라보던 미국 부품업체들도 덩달아 무너지고 있다. GM의 자회사 격인 델파이와 데이나 등이 이미 파산을 신청했고, 다른 대형 부품업체들도 간신히 버티는 중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디트로이트의 부품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중이지만, 자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부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상황을 일차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탓에 디트로이트는 날이 다르게 생기를 잃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가 3~4% 대의 안정적인 성장 기조를 유지하며 나라 전체가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디트로이트는 도시를 떠나려는 인구로 인해 부동산값마저 하락하는 추세이고, 숱한 공장들이 예고된 폐쇄 일정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노출돼 있다.
디트로이트가 빅3의 본거지이다 보니 이곳 시민들은 자국 자동차를 사는 데서 애국자라는 자부심을 느껴 왔다. 그렇지만 빅3의 기여가 떨어지면서 최근 이런 인식도 바뀌는 추세인데, 놀랍게도 현대차가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지난해 현대차는 디트로이트에 영업점을 내면서 “현대자동차를 사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앨라배마에서 생산된 쏘나타가 그 배경이 됐다. 말하자면 미국 현지에서 모든 부품을 조달하는 100% 미국산이면서 동시에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도 있으니 외제차라는 부담도 덜고 주머니 사정도 고려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를 강조라도 하듯 디트로이트 시가지를 달리는 쏘나타에는 “몽고메리에서 미국 노동자가 만든 차입니다”라는 스티커가 종종 붙는다.
디트로이트의 사례가 이렇다면 비슷한 상황이 초래될 때 우리도 그렇게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불행하게도 이는 우문인 바, 이미 우리는 전적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외국계 자동차를 아무런 부담 없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애국심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자국 자동차의 몰락이 수많은 국민들에게 기나긴 세월에 걸쳐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디트로이트가 그렇다.
현실 안주해
구조적 위기 자초
한때 미국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지금도 생산과 판매량에서 세계 1위의 자동차업체인 GM이지만 2000년 들어 불거진 위기설은 해를 거듭해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는 북미 지역의 연간 55억8000만달러 적자를 포함해 전체 자동차 판매 적자액이 62억달러에 달했다. 금융 분야의 이익을 포함해도 그룹 적자규모는 33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GM은 올해만 해도 총 70억달러에 이르는 비용 절감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그 결과 생산과 판매 모두 대폭 줄어들 전망이어서, 전문가들은 GM이 조만간 도요타에게 세계 1위의 자리를 내놓고 물러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는 GM의 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만큼 수술이 어려워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여건이 누적된 데 따른 것이다.
과도한 복지 혜택은 한때 잘 나가던 이 기업의 안이한 판단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약 1700만 달러어치의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입했다. 노사합의에 따라 발기부전 치료를 받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에 대해 약품 구입비를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합의안에 따라 이 회사는 퇴직 종업원들의 의료보험까지 부담하게 되어 있어, 현재 이 회사가 의료보험을 부담하는 인원은 110만명을 넘는다. 단순계산으로 지난해에 이 회사가 지급한 의료보험료를 자동차 원가에 반영하면 대당 1500달러라는 답이 나왔는데, 이런 원가비중을 유지한 채 경쟁사와 대결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GM은 또한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지 않은 채 잘 나가는 기존 차량을 파는 데만 급급했다. 때문에 신차 개발을 소홀히 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소연료전지차가 최상의 무공해차량이라는 데 매달려 시장의 현실적인 요구를 애써 무시했다. 때문에 신차 경쟁에서도, 고연비 차량 경쟁에서도 밀렸고 나아가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을 일본 업계에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몸부림치는 GM,
아시아 주목
판매 부진이 심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성급하게 내세운 할인판매, 즉 인센티브 제도는 이 회사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가격을 대폭 낮추어도 차가 팔리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적자가 쌓이는 속도만 빨라진 셈이 됐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카를로스 곤 르노 회장이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곤 회장은“자동차를 할인해 파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자동차 한 대당 평균 인센티브가 3500달러, 연간 600억달러인데, 이 금액이면 신차종을 무려 120종이나 개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GM은 고객들이 더 이상 자사 차량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인센티브 제도로 자신의 몰락을 부채질한 셈이다.
사실 이 모든 경우가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비용 절감, 변화하는 시장에 대비하는 노력, 품질이 뒷받침되는 판매경쟁 따위가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사실은 위기에 처한 GM이 그 타개책으로 약한 경쟁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점이다.
GM 등 미국 빅3가 자국에서 할인경쟁에 뛰어든 것은 일찍이 10년/10만 마일 보장 같이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미국 시장에 진입했던 한국 자동차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해외 특히 아시아 등의 신흥 시장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상하이GM은 폭스바겐의 오랜 아성이었던 중국시장에서 지난해 업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방식으로 GM은 우리나라와 인도 러시아 등에서 전력투구하고 있다.
특히 생산성, 경험, 근로자의 지식수준 등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는 한국은 회생이 절박한 GM에게 더없이 중요한 시장이자 기지다. GM은 한편으로 고비용 구조 탈피를 위해 자국 대신 한국 부품업체를 선택하는가 하면, GM대우에 대한 투자와 한국 고객에 대한 홍보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해 GM대우자동차는 전년보다 23.6% 증가한 7조5313억원으로 매출성장률 1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국민들은 한국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지켜보는 중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에 부응하도록 현대차의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 기회에 하나 뿐인 국산 브랜드의 허리를 꺾어서라도 일벌백계의 귀감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전자로 나아간다면 현대차는 응당 그에 부응하는 체질 개선을 이룩해야 하겠지만, 후자로 나아간다면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만회할 대비책이 국민 앞에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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