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에서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길은 무엇일까. 24일 민주당 전북 남원·순창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될 이강래 의원의 경우가 그 해답중 하나다.
이 의원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호남 4인방중 한사람이다. 총선 이후 1년여만에 위원장을 맡지만 이 의원은 ‘2년만에 위원장을 맡는다’고 말한다.
2년만의 위원장은 1999년 3월 치뤄진 서울 구로을 보선을 염두에 둔 말이다. 당시 이 의원은 보선 주자로 나서기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직을 그만뒀다. 당시 청와대측은 ‘이강래 수석을 당으로 보낼 필요가 생겨 이번 인사를 하게됐다’고 보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이 의원은 퇴임 이틀만에 정치담당 총재특보로 임명되는 등 여당후보로 굳어지는 듯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막판 한광옥 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후보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한광옥 실장을 비롯한 동교동계 구주류의 견제에 밀린 것이다.
이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이종찬 전국정원장, 김중권 대표(당시 비서실장)와 함께 ‘신주류 3인방’으로 불릴 정도로 현정권의 핵심실세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는 곧 권력 핵심부에서 밀린 동교동계 구주류의 질시와 집중견제를 불러왔다. 이 의원은 취임 직후 정무수석 물망에 올랐지만 이때도 이들의 집중견제로 구안기부로 가야만 했다.
이 의원은 “신주류 3인방이라 했지만 조직적으로 연결돼있거나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고권력자의 신임 하나에 의존해 권력의 핵심에 자리했던 것이다. 이는 권력자의 영향권하에서는 안전판으로 작용하지만, 그로부터 한걸음만 떨어져도 무방비상태로 전락한다. 대통령이 총재인 당의 후보로 결정됐지만 당내 기득권을 가진 구세력에 의해 후보탈락의 쓴잔을 마셔야했다.
두 번째 좌절은 4·13총선에서의 공천탈락이다. 지역에서의 지지도나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번에도 당내 기득권세력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공천에서 다수 청와대 비서실 출신들이 밀려났다. 청와대와는 다른 권력투쟁의 현장에 적응할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당내 투쟁에서 패배했지만 구로을 보선과 달라진 점은 ‘지역유권자들의 심판’이라는 수단이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최고권력자의 신임에만 의존했다면 4·13총선에서도 패배자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 의원은 유권자의 지지라는 생명줄을 잡고 기사회생했다. 최고권력자의 신임보다 더 강한 기반이 ‘유권자들의 지지’라는 점을 확인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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