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원인은 마비된 현실감각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기하려면 실패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부동산, 한미FTA, 과거사 청산, 비정규직 노동자, 대북지원, 등 수많은 이유를 정치 해설가마다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열린우리당 내부에는 지방선거에 진 이유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없으며, 사고를 친 원흉을 찾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압승한 한나라당도 이긴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지금까지 뾰족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민주당과 민노당도 고정 지지층의 애정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그쳤다. 결국 정책이 아니라 정서가 중요한 선거였다. 유권자들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노무현 정권의 공과를 따지다 보니 지방자치의 현안과 쟁점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노정권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민노당을 지지하거나 기권했다. 군사정권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던 고학력 중산층들도 돌아섰다. 집권당 표는 갈라지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뭉쳐 있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말 따로, 행동과 결과 따로
집권당이 5·31선거에서 참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권의 주도세력이 하는 말은 그럴 듯한데 행동과 결과는 딴판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지지자들은 실망하였다. 하나만 예를 들면 정부는 지방분권과 국토균형 발전을 지향한다고 공공기관을 전국으로 분산시키면서 수도권의 공동화를 막는다고 거대한 개발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전국의 부동산 값이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이 우선회하여도 전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아파트값이 폭등해 횡재한 강남 주민들도 정권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읽지 못하는 여권의 마비된 현실 감각이 선거 패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세분석과 전략, 전술에 대한 토론으로 잔뼈가 굵은 민주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사회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를 냉정하게 돌이켜 보는 자세가 없으면 무능의 대명사가 된 운동권 인사들의 명예회복은 가망이 없다.
민주화 운동 경력자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소수의 동지들과 고난의 행군을 해온 후유증 때문에 자기들의 판단은 항상 옳고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파의 공식 견해를 따르도록 훈련이 된 이들은 외부에서 오는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건설적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원칙과 입장을 고수하며 살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제도권 정치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들은 눈앞에 닥친 정책적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무능력을 갖춘 행정관료에게 매료되고 의지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정책에서는 YS 시대에 교육개혁위원회가 입안한 시장원리의 도입을 강조하는 5·31 교육개혁안을 계승하면서도 이름만 거창하게 ‘혁신’이라고 붙였다.
현실 직시하고 정직하게 개혁을
개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 정권의 실용주의 노선은 행정관료가 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주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참여한 운동권 인사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선거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옛 동지들은 무능하면서 잔소리나 늘어놓는 귀찮은 친척으로 대접받았다. 노대통령이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노선이라고 한 것은 정직한 표현이다. 정권의 정통성은 민주화 운동에서 찾고, 실질적인 정책은 재벌과 관료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좋은 것만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한 집권세력의 어설픈 눈속임 곡예는 들통이 났다.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에게 남은 활로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개혁을 하는 길밖에 없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기하려면 실패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부동산, 한미FTA, 과거사 청산, 비정규직 노동자, 대북지원, 등 수많은 이유를 정치 해설가마다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열린우리당 내부에는 지방선거에 진 이유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없으며, 사고를 친 원흉을 찾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압승한 한나라당도 이긴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지금까지 뾰족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민주당과 민노당도 고정 지지층의 애정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그쳤다. 결국 정책이 아니라 정서가 중요한 선거였다. 유권자들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노무현 정권의 공과를 따지다 보니 지방자치의 현안과 쟁점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노정권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민노당을 지지하거나 기권했다. 군사정권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던 고학력 중산층들도 돌아섰다. 집권당 표는 갈라지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뭉쳐 있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말 따로, 행동과 결과 따로
집권당이 5·31선거에서 참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권의 주도세력이 하는 말은 그럴 듯한데 행동과 결과는 딴판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지지자들은 실망하였다. 하나만 예를 들면 정부는 지방분권과 국토균형 발전을 지향한다고 공공기관을 전국으로 분산시키면서 수도권의 공동화를 막는다고 거대한 개발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전국의 부동산 값이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이 우선회하여도 전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아파트값이 폭등해 횡재한 강남 주민들도 정권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읽지 못하는 여권의 마비된 현실 감각이 선거 패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세분석과 전략, 전술에 대한 토론으로 잔뼈가 굵은 민주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사회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를 냉정하게 돌이켜 보는 자세가 없으면 무능의 대명사가 된 운동권 인사들의 명예회복은 가망이 없다.
민주화 운동 경력자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소수의 동지들과 고난의 행군을 해온 후유증 때문에 자기들의 판단은 항상 옳고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파의 공식 견해를 따르도록 훈련이 된 이들은 외부에서 오는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건설적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원칙과 입장을 고수하며 살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제도권 정치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들은 눈앞에 닥친 정책적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무능력을 갖춘 행정관료에게 매료되고 의지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정책에서는 YS 시대에 교육개혁위원회가 입안한 시장원리의 도입을 강조하는 5·31 교육개혁안을 계승하면서도 이름만 거창하게 ‘혁신’이라고 붙였다.
현실 직시하고 정직하게 개혁을
개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 정권의 실용주의 노선은 행정관료가 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주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참여한 운동권 인사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선거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옛 동지들은 무능하면서 잔소리나 늘어놓는 귀찮은 친척으로 대접받았다. 노대통령이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노선이라고 한 것은 정직한 표현이다. 정권의 정통성은 민주화 운동에서 찾고, 실질적인 정책은 재벌과 관료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좋은 것만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한 집권세력의 어설픈 눈속임 곡예는 들통이 났다. 노 정권과 열린우리당에게 남은 활로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개혁을 하는 길밖에 없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