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에 오염된 월드컵 응원
월드컵 열기가 또 다시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독일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 토고에게 멋진 역전승을 거둔 13일부터 온통 월드컵 월드컵이다.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 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길거리 응원은 이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연상시키는 스포츠 애국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한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벌어지는 거리응원을 보러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이다. 최루탄과 화염병에 맞닿아 있었던 한국의 이미지가 그렇게 달라진 것은 우리가 그만큼 발전하고 성숙했다는 징표일 것이다.
4년 전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해외에서까지 스포츠 애국주의 열정으로 현지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구장 스탠드를 붉은 색으로 물들인 한국 응원단의 규모는 안팎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지구 끝에서 끝으로 달려간 것을 ‘극성’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경제력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붉은 악마들이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건 뭉쳐서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은 월드컵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혹은 지역과 학력, 이념과 계층의 차이로 나뉘고 패거리 지어진 분열의 벽을 넘어, 국민정서가 하나 된 통합을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직・간접 경제효과가 100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있었다. 세계 30위권에서 맴돌던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10위권으로 성큼 뛰어 올랐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것이 단순히 4강 성적과 개최국 정부 프리미엄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서울 중심가에 100만 인파가 모여 밤 새워 축제를 벌여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던 놀라운 사회현상에 감동한 외국 언론의 한국예찬이 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외국 언론은 또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번에는 아닌 것같다. 토고전 승리의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서울광장의 쓰레기 더미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 사진과 나란히 실린, 축제 후 청소를 하는 2년 전 사진을 보는 감회는 참담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흥분을 가누지 못한 나머지 지나가는 차에 올라 탔고, 주택가에서 밤새도록 소란을 피워 주민들의 항의가 잇달았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어떠했는지 아직 보도가 없다. 그러나 TV 뉴스에 잠시 비추어진 영상은 ‘저러다 현지인들과 부딪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안겨 주었다. 거리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현지인들 표정에는 호기심과 여유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 자주 맞닥뜨리면 어떻게 느낄까.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가까운 한국인 밀집지역의 거리응원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운 지금의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서울 강남 중심지에서 일본인들이 그런다면 우호적으로 보아줄 한국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주최국 독일이라고 외국인들에게 무한정 관대하기만 할까. 독일 신세대에 뿌리를 박은 신나치 단체는 외국인에게 매우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고려사항이 아니라도, 남의 나라에서 지나치게 소음을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순수하고 자발적이던 거리응원이 지나친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동통신사 등 여러 업종의 기업들이 제공한 갖가지 홍보물과 음료와 응원도구 등으로 광장은 처음부터 쓰레기로 넘쳐났다. 제공한 기업이 치워 주려니 하는 의존심을 갖게 하였다.
시청률 경쟁을 위한 방송사들의 과잉경쟁도 시민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지상파 방송3사가 모두 월드컵에 올인하는 것은 획일성과 전체주의 논란의 배경이다.
4년 전 서울광장에서는 억수처럼 퍼붓는 비 속에서도 뒷 사람 시야를 가리지 않으려고 우산을 펴지 않았다. 상암구장으로 가는 지하철 역에서부터 경기장 앞에서 긴 줄을 서면서 새치기 한번 못 보았고, 구두 코 한번 밟히지 않았다.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지킨 질서였다.
그 인파를 이용해 돈 벌 궁리를 하는 상업주의만 아니면, 우리의 시민정신은 아직 건강하다. 관련 기업들은 이 번 일이 장사에 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월드컵 열기가 또 다시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독일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 토고에게 멋진 역전승을 거둔 13일부터 온통 월드컵 월드컵이다.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 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길거리 응원은 이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연상시키는 스포츠 애국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한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벌어지는 거리응원을 보러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이다. 최루탄과 화염병에 맞닿아 있었던 한국의 이미지가 그렇게 달라진 것은 우리가 그만큼 발전하고 성숙했다는 징표일 것이다.
4년 전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해외에서까지 스포츠 애국주의 열정으로 현지인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구장 스탠드를 붉은 색으로 물들인 한국 응원단의 규모는 안팎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지구 끝에서 끝으로 달려간 것을 ‘극성’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경제력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붉은 악마들이 주목을 받는 것이다.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건 뭉쳐서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은 월드컵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혹은 지역과 학력, 이념과 계층의 차이로 나뉘고 패거리 지어진 분열의 벽을 넘어, 국민정서가 하나 된 통합을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직・간접 경제효과가 100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있었다. 세계 30위권에서 맴돌던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10위권으로 성큼 뛰어 올랐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것이 단순히 4강 성적과 개최국 정부 프리미엄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서울 중심가에 100만 인파가 모여 밤 새워 축제를 벌여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던 놀라운 사회현상에 감동한 외국 언론의 한국예찬이 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외국 언론은 또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번에는 아닌 것같다. 토고전 승리의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서울광장의 쓰레기 더미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 사진과 나란히 실린, 축제 후 청소를 하는 2년 전 사진을 보는 감회는 참담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흥분을 가누지 못한 나머지 지나가는 차에 올라 탔고, 주택가에서 밤새도록 소란을 피워 주민들의 항의가 잇달았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어떠했는지 아직 보도가 없다. 그러나 TV 뉴스에 잠시 비추어진 영상은 ‘저러다 현지인들과 부딪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안겨 주었다. 거리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현지인들 표정에는 호기심과 여유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 자주 맞닥뜨리면 어떻게 느낄까.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가까운 한국인 밀집지역의 거리응원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운 지금의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서울 강남 중심지에서 일본인들이 그런다면 우호적으로 보아줄 한국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주최국 독일이라고 외국인들에게 무한정 관대하기만 할까. 독일 신세대에 뿌리를 박은 신나치 단체는 외국인에게 매우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고려사항이 아니라도, 남의 나라에서 지나치게 소음을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순수하고 자발적이던 거리응원이 지나친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동통신사 등 여러 업종의 기업들이 제공한 갖가지 홍보물과 음료와 응원도구 등으로 광장은 처음부터 쓰레기로 넘쳐났다. 제공한 기업이 치워 주려니 하는 의존심을 갖게 하였다.
시청률 경쟁을 위한 방송사들의 과잉경쟁도 시민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지상파 방송3사가 모두 월드컵에 올인하는 것은 획일성과 전체주의 논란의 배경이다.
4년 전 서울광장에서는 억수처럼 퍼붓는 비 속에서도 뒷 사람 시야를 가리지 않으려고 우산을 펴지 않았다. 상암구장으로 가는 지하철 역에서부터 경기장 앞에서 긴 줄을 서면서 새치기 한번 못 보았고, 구두 코 한번 밟히지 않았다.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지킨 질서였다.
그 인파를 이용해 돈 벌 궁리를 하는 상업주의만 아니면, 우리의 시민정신은 아직 건강하다. 관련 기업들은 이 번 일이 장사에 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