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관료들 자기반성이 먼저다

지역내일 2006-06-26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근친결혼이 꼽히고 있다. 황실은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대에 걸쳐 가까운 혈족끼리만 혼인을 하다보니 천식이나 간질인자와 같은 열성적 폐해를 가진 자손들이 나왔다.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황실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유전적으로 열성인자가 발현돼 되레 왕통이 약해진 것이다.
한국의 재무관료들이 순혈주의를 답습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재경부 전직과 현직의 고위관료들이 똘똘 뭉쳐 국책은행과 공적자금이 들어간 금융기관의 고위직을 독식, 한국경제의 금융부문을 장악해온 것이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자리를 승계하는 재무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 ‘모피아’라 부른다. 오죽 했으면 범죄조직에 비유할까. 2000년 이후 퇴직한 4급 이상 재경부 관료 81명 가운데 52명이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옮겨갔다고 하니, 금융기관은 재무관료들의 노후 안식처인 셈이다.

순혈주의는 위기 감시시스템의 작동을 막는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경제수석실의 인적 구성에도 순혈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파트를 구성하는 파견인사들 대부분이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어서 선후배간에 견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서로의 잘못을 눈 감아주는 폐단이 나올 수 있다.” 제식구 감싸주기로 우성적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모피아의 순혈주의가 낳은 대표적 폐해로 IMF 외환위기를 꼽고 있다. 정책당국과 금융감독기관, 그리고 민간금융기관이 모두 같은 생각과 이해를 갖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집단에 의해 장악됐으니 위험을 경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모피아의 열성적 폐해로 인해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 ‘순혈주의’ 모피아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감사원이 인수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매각했으며,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책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은 론스타 사건의 배후로 모피아의 대표집단으로 알려진 ‘이헌재 사단’을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로비사건을 이유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출국금지하고,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와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을 구속했지만, 궁극적 타깃은 론스타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외환은행 매각 감사결과에 대해 피감기관인 재경부는 이례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외환은행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어 발생한 LG카드 사태로 인해 외환은행이 부도가 났을 가능성이 높으며, 전체 금융시장의 혼란은 1997년말 위기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또다른 금융위기론을 제기했다. 장문의 보도자료에는 ‘감사원이 뭘 알고 그런 결론을 내리는가’하는 엘리트주의가 물씬 풍기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재경부의 반박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2003년의 경제적 상황을 위기로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론스타와 본계약을 체결할 시점인 그해 8월은 주가도 오르고 외환은행의 현대 계열 부실채권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었다. 2003년을 1997년말 외환위기와 비교하는 것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위기 부풀리기’로 보인다.

공직자윤리법 강화해서 모피아의 폐해 막아야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한 재경부는 다소 억울한 점이 있었더라도 먼저 국민에 사과하는 뜻을 밝혔어야 했다. 반성의 글이 단 한줄도 반영되지 않은 보도자료를 낸 배경에는 재무관료들이 아직도 순혈주의로 똘똘 뭉쳐있어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모피아’의 경제권력 남용이 또 어떤 국가중대사를 그르칠지 심히 우려스럽다”는 정당과 시민단체의 비평에 재무관료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부 견제가 어려운 모피아의 열성적 폐해를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퇴직 직전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연관있는 분야에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금융정책과 연관이 있는 업무를 다룬 관료들은 금융기관 취업을 금지해야 한다. 고문직과 같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편법 취업도 막아야 한다. 로펌이나 회계법인을 통한 로비 가능성도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법 개정보다 중요한 것은 재무관료들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높은 청렴의식이다.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모피아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주도해온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내부의 반성과 혁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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