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에서 2006년 5월 28일은 특별한 날이다. 가장 첨예한 문제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교원단체를 포함하여 학부모단체, 시민단체, 교육혁신위 상임위원들이 함께 워크샵에 참여하여 ‘교장 공모제 합의안’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평교사가 교장이 되었다가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게 하는 보직형 공모제를 2년간 364개 학교 이상 도입하자는 합의안은 사실 그리 파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교총은 교육혁신위가 교장자격증을 일시에 폐지하는 보직제를 관철시킬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전체 학교 중 2% 정도만 시범실시 형태로 보직형 공모제를 운영하고, 해당학교에 수석교사 형식의 대교사제를 도입하겠다는 말에 교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면적인 보직제 도입을 막은 것은 나름의 성과였다. 때문에 교총은 그 시점에서 보직형 공모제를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표정관리에 신경을 쓸 정도였다.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다름 아닌 지자체 선거였다. 5월 31일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대승을 거두었고, 그 파트너인 교총은 의기양양했다. 눈치를 보며 관망하던 교총은 혁신위 교원특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6월 2일을 기점으로 극렬한 반대에 나섰다. 표결이 있던 6월 9일을 2,3일 앞두고 교총은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전교조 본부는 보직형 공모제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하여 반대기자 회견을 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의 장을 맡고 있던 특위의 아무개 위원은 “전교조, 교총이 다 반대하는 것을 천성하고 싶지 않다”며 울상을 지었다. 교육부는 특위에 공공연하게 반대 문건을 뿌렸다. 일이 틀어진 것이다.
공모제를 도입한다면 우리 교육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첫째, 수직적인 교육관료 제도에서 탈피하여 학생에게 봉사하는 교장상이 만들어진다. 승진제 교장이 교육전문직이나 초빙교장으로 근무하는 기간이 중임제 기간에서 제외되는 점을 이용하여, 친목회처럼 교장이 교육청과 학교를 오가는 ‘관료제 교장제도’는 상당부분 종지부를 찍게 된다. 적어도 공모제 교장은 학생, 학부모의 평가를 엄격하게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교육청의 통제에 거수기 노릇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관료제에서 자유로운 교장집단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교육개혁 세력의 탄생을 예고한다. 공모제는 입법절차를 거쳐 2007년도에 400명 내외의 새로운 학교장을 배출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적어도 그 중 50%는 진보적 성향의 젊고 유능한 평교사가 공모제 교장으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육운동 진영의 일대 새판짜기가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그 동안 교육정책의 전권을 쥔 교육부, 교총, 전교조의 교육정책 독과점 구조에 치명적인 파열구가 생기는 것이다.
셋째, 공모제는 ‘함께 그러나 다르게’ 만들어 가는 새 교육 패러다임이다. 젋고 의식있는 교장집단의 탄생은 교육개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다. 입시와 사교육비, 학생정책에 이르기까지 붕어빵처럼 교육청이 찍어대던 시대가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상선, 고춘식교장 같은 전교조 출신 교장 한 두분이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계에 얼마나 큰 충격과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공모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으로부터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이다.
김대유(서문여중 교사, 교육혁신위 전 교원특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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