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우호세력 복원위한 정치실험
FTA속도조절, 방과후 학교 확산으로 서민층 겨냥
“탈당없다” 거듭 강조 … ‘4년차 집권시간표’는 불리한 요소
개각 발표 하루 뒤인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속이 아프다”고 말했다. ‘친정체제 강화’나 ‘레임덕 방지용’ 등 7·3개각의 정치적 해석에 치중한 언론 반응에 대해 답답함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다. 청와대 안에서도 “두명의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을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로 기용한 인사에 담긴 ‘정책기조의 일관성 유지’란 의미를 읽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와 권오규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노 대통령 곁에서 주요 국정현안 추진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3일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개각 발표 직후 “정책기조에 변함이 없다”면서 “눈높이와 시각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리하느냐하는 측면”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김병준 권오규 기용에 담긴 뜻 =
노 대통령이 권 내정자를 임명한 뜻은 한미FTA 속도조절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덕수 전 부총리는 한미FTA 추진 입장이 확고했다는 평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우군인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진영의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우군의 한미FTA 반대론은 청와대의 오랜 고민거리다. 시민사회는 물론 진보적 학계인사들마저도 반대 입장이 여전하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올해 초반부터 “주요 지지세력들의 반대가 더 강해 걱정”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속도조절로 해석될 만한 노 대통령 발언은 이런 가운데 나왔고, 주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대외경제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시간에 쫓겨 내용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협상의 속도뿐 아니라 내용도 충분히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권 내정자의 임명은 이 맥락 위에서 이뤄졌다. 권 내정자도 한미FTA 추진론자이지만, 실용주의적이고 생각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OECD대사시절 유럽국가들의 복지모델 연구에 힘을 쏟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권 내정자의 임명에는 한미FTA를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 정치적 후원세력을 완전히 잃을 가능성을 피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속도조절로 전통적 우군의 이탈을 막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에서도 비슷한 취지가 읽혀진다. 최근 정부가 일관되게 미는 교육정책 중 하나가 방과후 학교 확산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교육감, 교육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어쩌면 승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공교육의 사교육 흡수를 학교 살리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사회양극화 시대에 서민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세금을 통한 부동산 정책으로 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를 고립시키고, 다수 서민을 확보하겠다는 일련의 경제정책 의지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시간과 민심 향방이 관건 =
7·3개각에서 읽혀지는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최근 언급과 행보에는 일관된 흐름이 발견된다.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 직후와 지난주 여당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탈당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은 “여당 안에서 자신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풀이한다. 지금 당에서 손을 떼면 우리당이 과거 민주당으로 복귀하거나 고 건 전총리를 후보로 하는 지역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청와대측 시각이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근본이 흔들리게 되고, 개혁정치를 앞세운 정치실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노 대통령의 가까운 외곽측근들이 최근 당으로 활동반경을 넓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방선거 직후 단행한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도 마찬가지다. 연말연초로 예상되는 여권재편의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국정운영 기조를 지켜갈 틀을 꾸리려는 정치구상이 엿보인다.
7·3개각은 이런 궤도 위에서 이뤄졌다. 국정장악력을 높여 확고한 지지층을 복원하고, 여당 내부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노 대통령의 실험이 어떤 결말을 맺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민심이 멀어져 있고 시간이 노 대통령의 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차염진·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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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속도조절, 방과후 학교 확산으로 서민층 겨냥
“탈당없다” 거듭 강조 … ‘4년차 집권시간표’는 불리한 요소
개각 발표 하루 뒤인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속이 아프다”고 말했다. ‘친정체제 강화’나 ‘레임덕 방지용’ 등 7·3개각의 정치적 해석에 치중한 언론 반응에 대해 답답함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다. 청와대 안에서도 “두명의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을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로 기용한 인사에 담긴 ‘정책기조의 일관성 유지’란 의미를 읽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와 권오규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노 대통령 곁에서 주요 국정현안 추진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3일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개각 발표 직후 “정책기조에 변함이 없다”면서 “눈높이와 시각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리하느냐하는 측면”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김병준 권오규 기용에 담긴 뜻 =
노 대통령이 권 내정자를 임명한 뜻은 한미FTA 속도조절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덕수 전 부총리는 한미FTA 추진 입장이 확고했다는 평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우군인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진영의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우군의 한미FTA 반대론은 청와대의 오랜 고민거리다. 시민사회는 물론 진보적 학계인사들마저도 반대 입장이 여전하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올해 초반부터 “주요 지지세력들의 반대가 더 강해 걱정”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속도조절로 해석될 만한 노 대통령 발언은 이런 가운데 나왔고, 주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대외경제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시간에 쫓겨 내용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협상의 속도뿐 아니라 내용도 충분히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권 내정자의 임명은 이 맥락 위에서 이뤄졌다. 권 내정자도 한미FTA 추진론자이지만, 실용주의적이고 생각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OECD대사시절 유럽국가들의 복지모델 연구에 힘을 쏟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권 내정자의 임명에는 한미FTA를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 정치적 후원세력을 완전히 잃을 가능성을 피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속도조절로 전통적 우군의 이탈을 막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에서도 비슷한 취지가 읽혀진다. 최근 정부가 일관되게 미는 교육정책 중 하나가 방과후 학교 확산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교육감, 교육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어쩌면 승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공교육의 사교육 흡수를 학교 살리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사회양극화 시대에 서민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세금을 통한 부동산 정책으로 소수의 부동산 과다 보유자를 고립시키고, 다수 서민을 확보하겠다는 일련의 경제정책 의지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시간과 민심 향방이 관건 =
7·3개각에서 읽혀지는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최근 언급과 행보에는 일관된 흐름이 발견된다.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 직후와 지난주 여당 지도부와의 면담에서 “탈당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은 “여당 안에서 자신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풀이한다. 지금 당에서 손을 떼면 우리당이 과거 민주당으로 복귀하거나 고 건 전총리를 후보로 하는 지역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청와대측 시각이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근본이 흔들리게 되고, 개혁정치를 앞세운 정치실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노 대통령의 가까운 외곽측근들이 최근 당으로 활동반경을 넓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방선거 직후 단행한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도 마찬가지다. 연말연초로 예상되는 여권재편의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국정운영 기조를 지켜갈 틀을 꾸리려는 정치구상이 엿보인다.
7·3개각은 이런 궤도 위에서 이뤄졌다. 국정장악력을 높여 확고한 지지층을 복원하고, 여당 내부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노 대통령의 실험이 어떤 결말을 맺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민심이 멀어져 있고 시간이 노 대통령의 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차염진·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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