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한 총리에 힘 안실어 … 이해찬 전 총리와 대조
이번 개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분권형 책임총리제 실험’도 사실상 끝이 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한명숙 총리 임명후 “이해찬 전 총리때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며 책임총리제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한 총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개각을 하게 될 경우 제청권을 적극 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개각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한 총리의 의사를 고려했거나 한 총리가 실질적인 제청권을 행사한 흔적은 발견하기 힘들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노 대통령이 한 총리와 사전 협의를 충분히 했다”고 설명하지만 개각 밑그림이 이미 지방선거 전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협의’라기 보다는 ‘통보’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과거 이해찬 전 총리가 각료제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고 ‘행사’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내각의 진용도 한 총리의 입지축소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같은 총리후보로 거론되던 김병준씨가 교육부총리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권오규씨가 경제부총리로 내정되면서 역시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인 김우식 과기부총리까지 부총리 3명 모두 ‘노무현 사람들’로 채워지게 됐다.
이들을 포함해 국무위원 19명 가운데 8명이 청와대 출신이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이들 장관들은 한 총리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직접 ‘교감’하면서 주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 ‘약속위반?’ =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개혁과제의 하나로 ‘권력분산’을 추진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분권형 책임총리제’다.
‘분권’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총리에게 법률적으로 보장된 ‘인사권’은 ‘국무위원제청권’이다.
참여정부 초대 총리였던 고 건 총리는 첫 조각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등 나름의 권한을 행사했다. 그는 퇴임직전 제청권을 행사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취지에 비쳐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를 거부, 갈등을 빚었다.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총리는 인사추천회의에 참석하는 등 장관 인선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퇴임직전 이치범 환경부 장관 제청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총리 시절 총리실 산하 민정수석실에서 장관후보들에 대한 ‘검증’까지 한 사실은 얼마만큼 이 총리에 힘이 실렸던 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장관 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고유기능이다.
이번 개각이 ‘보각’수준이고 ‘김병준 총리’ 카드가 무산된 후 이미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 구상돼 온 점에서 한 총리가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임총리제를 유지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사실상 책임총리제는 이해찬 전 총리 사퇴와 함께 사라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음 총리는 김병준? =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으로 벌써부터 ‘다음 총리는 김병준’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김병준 총리’에 미련을 둔 것이나 여론의 역풍이 예상됨에도 결국 교육부총리로 앉힌 것은 그만큼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징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기용하는 노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대통령과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고 임기마지막까지 국정운영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기류는 ‘김병준 총리’ 카드가 완전히 버려진 게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 교육부총리 내정은 총리 임명을 위한 경력관리와 여론순화를 위한 시간벌기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래저래 한 총리의 입지가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책임총리제’ 실험이 시스템으로 이어질 지 아니면 ‘대통령 입 맛’에 따라 달라질 지 주목된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