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스페인
장행훈 (언론인 언론광장 공동대표)
지난 18일은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무대가 스페인 내전이었다는 정도 외에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역사가들이 지난 2000년 동안에 일어난 25대 내전(內戰)의 하나로 꼽는 대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유럽의 파시즘 진영과 반(反)파시즘 세력이 벌인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특히 세계 지성인들이 파시즘 반대 투쟁에 대거 참여한 사건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태리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휘하의 반정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4만 여명이 국제여단에 참가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발발 70년, 프랑코 사망 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금 내전 처리를 놓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과거사 덮은 민주화에 불만
내전 발발 70주년에 관한 특별한 행사 보도는 없었다. 그러나 프랑코 총통 사망 3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20일 마드리드에서 50km 떨어진 로스 카이도스 계곡에서는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코를 추모하는 미사가 거행됐다. 로스 카이도스는 프랑코 총통이 내전 중 억류한 공화파 전투원들의 노역으로 건립한 거대한 내전 희생자 묘지다. 프랑코의 대형 영묘도 그 속에 안치돼있다. 프랑코의 딸을 비롯해서 프랑코 지지 세력이 대거 미사에 참석, 그의 ‘위업’을 칭송하고 프랑코 시대의 구호를 외쳤다. 작년 5월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의 마지막 동상이 철거됐지만 프랑코 지지 세력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박정희 신화가 아직 건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에 희생된 공화파 지지자 수천 명이 모여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내전 희생자들(공화파)의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5년 이래 역사기록회복협회를 구성하고 프랑코에 의한 학살 희생자의 시신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은 과거사를 덮어둔 채 민주화를 추진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로 어떤 행사를 벌인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을 원치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화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 보수 인민당(PP)의 호세 아즈나르와 마누엘 프라가 처럼 프랑코 시대에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이 2004년까지 정부의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코는 죽었으나 역사의 심판을 받은 프랑코 체제가 스페인을 계속 끌고 간다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역대 스페인 정부는 정치적 파문을 우려해 과거사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2004년 가을 사회당의 자파테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파테로 총리는 우선 내전 희생자 실태조사를 위한 각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착수된 상태다. 우리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정의 복원 뒤에야 화해 가능
스페인 내전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들 이념만 고집하고 타협을 거부한 나머지 내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역사학자 라몬 메넨데즈 피달은 1930년대에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 카톨릭 교회와 진보적인 지식인층의 대립, 권위와 무정부주의의 충돌 환경에서 스페인 지도층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타협 없는 대결집단으로 갈라놓았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어느 쪽도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른 교훈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민주화를 추진한 것은 취지는 좋았지만 내전 희생자가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주장하고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일시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랑스의 월간 <역사>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근호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 총리가 앞으로 할 과업은 살육의 유산을 정리해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희생자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정의를 복원한 다음에야 (두 스페인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한 국가라야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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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인 언론광장 공동대표)
지난 18일은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무대가 스페인 내전이었다는 정도 외에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역사가들이 지난 2000년 동안에 일어난 25대 내전(內戰)의 하나로 꼽는 대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유럽의 파시즘 진영과 반(反)파시즘 세력이 벌인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특히 세계 지성인들이 파시즘 반대 투쟁에 대거 참여한 사건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태리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휘하의 반정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4만 여명이 국제여단에 참가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발발 70년, 프랑코 사망 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금 내전 처리를 놓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과거사 덮은 민주화에 불만
내전 발발 70주년에 관한 특별한 행사 보도는 없었다. 그러나 프랑코 총통 사망 3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20일 마드리드에서 50km 떨어진 로스 카이도스 계곡에서는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코를 추모하는 미사가 거행됐다. 로스 카이도스는 프랑코 총통이 내전 중 억류한 공화파 전투원들의 노역으로 건립한 거대한 내전 희생자 묘지다. 프랑코의 대형 영묘도 그 속에 안치돼있다. 프랑코의 딸을 비롯해서 프랑코 지지 세력이 대거 미사에 참석, 그의 ‘위업’을 칭송하고 프랑코 시대의 구호를 외쳤다. 작년 5월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의 마지막 동상이 철거됐지만 프랑코 지지 세력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박정희 신화가 아직 건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에 희생된 공화파 지지자 수천 명이 모여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내전 희생자들(공화파)의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5년 이래 역사기록회복협회를 구성하고 프랑코에 의한 학살 희생자의 시신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은 과거사를 덮어둔 채 민주화를 추진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로 어떤 행사를 벌인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을 원치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화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 보수 인민당(PP)의 호세 아즈나르와 마누엘 프라가 처럼 프랑코 시대에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이 2004년까지 정부의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코는 죽었으나 역사의 심판을 받은 프랑코 체제가 스페인을 계속 끌고 간다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역대 스페인 정부는 정치적 파문을 우려해 과거사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2004년 가을 사회당의 자파테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파테로 총리는 우선 내전 희생자 실태조사를 위한 각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착수된 상태다. 우리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정의 복원 뒤에야 화해 가능
스페인 내전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들 이념만 고집하고 타협을 거부한 나머지 내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역사학자 라몬 메넨데즈 피달은 1930년대에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 카톨릭 교회와 진보적인 지식인층의 대립, 권위와 무정부주의의 충돌 환경에서 스페인 지도층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타협 없는 대결집단으로 갈라놓았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어느 쪽도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른 교훈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민주화를 추진한 것은 취지는 좋았지만 내전 희생자가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주장하고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일시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랑스의 월간 <역사>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근호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 총리가 앞으로 할 과업은 살육의 유산을 정리해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희생자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정의를 복원한 다음에야 (두 스페인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한 국가라야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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