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제부터가 걱정이다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나를 보고싶으면 하늘을 보라! 태평양 전쟁 말기 최후의 출격을 앞두고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시노자키 대위는 고향의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4월 15일부터="" 며칠간은="" 너무="" 짧았지만="" 나에게는="" 일생의="" 반에="" 값하는="" 세월이었다.="" 레이코,="" 나를="" 보고싶으면="" 하늘을="" 보라,="" 비행기를="" 보라.="" 나는="" 그="" 곳에="" 살아="" 있을="" 것이다….="" 뒷="" 걱정="" 없이="" 출정하는="" 행복에="" 감사하고="" 있다.="" 출격="" 전야에,="" 사랑하는="" 사람이.="">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 하순 어느 날 도쿄 야스쿠니 신사 본전 앞 게시판에 붙어있던 편지 글 일부다. 물론 편지가 주인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시노자키 대위는 전사하였다. 스물 네 살 꽃같은 나이였다. 짧은 휴가를 이용해 언약으로 결혼식을 대신한 신혼부부를 영원히 갈라놓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살아 돌아오지 못 할 길을 가면서도 ‘뒷 걱정 없이 출정하는 행복’을 느낀다니, 그것이 진심이었을까. 인간에게 국가권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부호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쟁 정당화하기 위한 편지들
야스쿠니 신사 게시판에는 언제나 이런 류의 사연이 게시되어 있다.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수백만명 전몰자들이 남긴 편지와 사연들이다. 그 뿐 아니다. 같은 기간 야스쿠니 경내의 특설무대에서는 ‘흘러가는 구름아’란 제목의 연극공연이 있었다. 일장기의 붉은 해를 가운데 두고 ‘神風’이라 쓴 머리띠를 두르는 주인공 배우 사진에 눈길이 닿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가미카제의 실체를 보는 듯 하였다.
<극한의 대지(大地)에서,="" 남명(南溟)의="" 바다="" 깊은="" 곳에서,="" 이국의="" 하늘에서="" 숨져간="" 그들은="" 야스쿠니의="" 벚꽃=""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올해도="" 야스쿠니신사의="" 벚꽃은="" 만개하였다.=""> 연극 팸플릿 선전문구로 보아 극의 내용을 알 만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죽어서 야스쿠니에 벚꽃이 필 때 만나기로 약속하고 출정하였다 한다.
신사 측이 이토록 전몰자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것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수 천만 전몰자 유족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리라. 나라 위해 목숨바친 영령을 제사하는 종교시설로서 그것은 합당한 일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그것 뿐이라면, 외국인들이 콩이야 팥이야 참견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곳에 태평양 전쟁 주범인 A급 전범 7명의 영령도 같이 모셔져 있다는 데 있다. 1978년 일본 우익세력에 의해 일곱 전범 합사(合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누가 그곳에 참배하든 말든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전쟁광 도조 히데키 등 일곱 전범 영령 앞에 최고 지도자가 머리 숙이고 합장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행위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피해를 입은 이웃에게 미안할 것은 없으며, 그 전쟁은 옳았다’고 칭송하는 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광복절 아침을 기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격식을 갖춘 공식참배를 단행함으로써, 일본은 이제 과거사가 정당했다고 내외에 선언하였다. 헬기까지 동원되어 TV 중계방송을 하는 가운데, 연미복까지 갖추어 입은 총리는 보란 듯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선배들이 선택한 일에 존경과 동의의 뜻을 표하였다. 다시 옛날의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시비 걸지 말라는 시위였다.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 공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전범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낸 일본 극우세력의 파워다. 전후 미국은 일본의 극우세력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전범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일본을 통치하던 맥아더 사령부는 일곱 전범의 시신을 화장하여 도쿄 앞 바다 상공에서 재를 뿌려 없앴다. 그런데 숨 죽였던 보수 우익세력이 유골의 일부를 빼돌려 화장장 인근 산 속에 가매장해 두었다가, 1960년 아이치 현 하즈군에 순국칠사(殉國七士)묘를 만들어 성역화 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전범으로 기소되었던 원로 보수정객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배려와 지원이 있었다. 보수 우익 진영의 끈질긴 노력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드디어 야스쿠니 신사에 그들의 위패를 모시는 비원의 성취로서 결실을 맺게 된다.
60년에 걸쳐 전쟁을 정당화해 온 작업은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일본 총 우경화’ 한 막이 내려졌다. 이제부터가 걱정이다. 다음 총리가 확실하다는 사람은 전쟁을 영원히 방기(放棄)하겠다고 맹세한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보수 우익의 적자라는 사람이 지도자의 바통을 이어받을 일본의 행보에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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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4월>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나를 보고싶으면 하늘을 보라! 태평양 전쟁 말기 최후의 출격을 앞두고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시노자키 대위는 고향의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4월 15일부터="" 며칠간은="" 너무="" 짧았지만="" 나에게는="" 일생의="" 반에="" 값하는="" 세월이었다.="" 레이코,="" 나를="" 보고싶으면="" 하늘을="" 보라,="" 비행기를="" 보라.="" 나는="" 그="" 곳에="" 살아="" 있을="" 것이다….="" 뒷="" 걱정="" 없이="" 출정하는="" 행복에="" 감사하고="" 있다.="" 출격="" 전야에,="" 사랑하는="" 사람이.="">
벚꽃이 피기 시작한 3월 하순 어느 날 도쿄 야스쿠니 신사 본전 앞 게시판에 붙어있던 편지 글 일부다. 물론 편지가 주인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시노자키 대위는 전사하였다. 스물 네 살 꽃같은 나이였다. 짧은 휴가를 이용해 언약으로 결혼식을 대신한 신혼부부를 영원히 갈라놓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살아 돌아오지 못 할 길을 가면서도 ‘뒷 걱정 없이 출정하는 행복’을 느낀다니, 그것이 진심이었을까. 인간에게 국가권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부호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쟁 정당화하기 위한 편지들
야스쿠니 신사 게시판에는 언제나 이런 류의 사연이 게시되어 있다.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수백만명 전몰자들이 남긴 편지와 사연들이다. 그 뿐 아니다. 같은 기간 야스쿠니 경내의 특설무대에서는 ‘흘러가는 구름아’란 제목의 연극공연이 있었다. 일장기의 붉은 해를 가운데 두고 ‘神風’이라 쓴 머리띠를 두르는 주인공 배우 사진에 눈길이 닿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가미카제의 실체를 보는 듯 하였다.
<극한의 대지(大地)에서,="" 남명(南溟)의="" 바다="" 깊은="" 곳에서,="" 이국의="" 하늘에서="" 숨져간="" 그들은="" 야스쿠니의="" 벚꽃=""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올해도="" 야스쿠니신사의="" 벚꽃은="" 만개하였다.=""> 연극 팸플릿 선전문구로 보아 극의 내용을 알 만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죽어서 야스쿠니에 벚꽃이 필 때 만나기로 약속하고 출정하였다 한다.
신사 측이 이토록 전몰자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것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수 천만 전몰자 유족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리라. 나라 위해 목숨바친 영령을 제사하는 종교시설로서 그것은 합당한 일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그것 뿐이라면, 외국인들이 콩이야 팥이야 참견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곳에 태평양 전쟁 주범인 A급 전범 7명의 영령도 같이 모셔져 있다는 데 있다. 1978년 일본 우익세력에 의해 일곱 전범 합사(合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누가 그곳에 참배하든 말든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전쟁광 도조 히데키 등 일곱 전범 영령 앞에 최고 지도자가 머리 숙이고 합장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행위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피해를 입은 이웃에게 미안할 것은 없으며, 그 전쟁은 옳았다’고 칭송하는 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광복절 아침을 기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격식을 갖춘 공식참배를 단행함으로써, 일본은 이제 과거사가 정당했다고 내외에 선언하였다. 헬기까지 동원되어 TV 중계방송을 하는 가운데, 연미복까지 갖추어 입은 총리는 보란 듯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선배들이 선택한 일에 존경과 동의의 뜻을 표하였다. 다시 옛날의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시비 걸지 말라는 시위였다.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 공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전범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낸 일본 극우세력의 파워다. 전후 미국은 일본의 극우세력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전범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일본을 통치하던 맥아더 사령부는 일곱 전범의 시신을 화장하여 도쿄 앞 바다 상공에서 재를 뿌려 없앴다. 그런데 숨 죽였던 보수 우익세력이 유골의 일부를 빼돌려 화장장 인근 산 속에 가매장해 두었다가, 1960년 아이치 현 하즈군에 순국칠사(殉國七士)묘를 만들어 성역화 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전범으로 기소되었던 원로 보수정객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배려와 지원이 있었다. 보수 우익 진영의 끈질긴 노력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드디어 야스쿠니 신사에 그들의 위패를 모시는 비원의 성취로서 결실을 맺게 된다.
60년에 걸쳐 전쟁을 정당화해 온 작업은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일본 총 우경화’ 한 막이 내려졌다. 이제부터가 걱정이다. 다음 총리가 확실하다는 사람은 전쟁을 영원히 방기(放棄)하겠다고 맹세한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보수 우익의 적자라는 사람이 지도자의 바통을 이어받을 일본의 행보에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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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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