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낮추고 체력관리 하세요” 조언
평소 인간관계 중요 ... 실력만으론 어려워
월급, 더 받으면 좋겠지만 내가 그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와이지원(전 양지원공구) 류광하 생산본부장은 “월급이 너무 줄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수출입은행 인천본부장을 마지막으로 만 58세로 정년퇴임한 그의 월급은 예년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사코 “너무 많은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타고난 겸손함도 한 몫 하긴 했지만 그는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년간의 변신 = 지난 2005년 3월 정년퇴임 이전에 류 본부장은 수출입은행 인천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1년동안 그는 강한 공구를 만드는 ‘신안다이아몬드’에 컨설팅 전문가로 파견됐다. 신안다이아몬드는 남동공단에 있었다. 수출입은행 인천본부 고객이었다.
수출입은행은 퇴임준비를 위해 1~2년의 준비기간을 줬다. 요즘은 임금피크제를 도입, 3년으로 늘었다. 이 기간동안 중소기업에 파견돼 재무 등과 관련된 ‘컨설팅’업무를 했다. 월급은 수출입은행에서 받았다. 은행은 인력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고 기업은 공짜로 컨설팅을 받게 되니 ‘일석이조’였다.
류 본부장은 그러나 ‘신안다이아몬드’에 가서 “별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에 컨설팅할만한 게 많지 않았다는 것.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컨설팅은 어불성설. 오히려 그는 그곳에서 ‘국책은행’의 때를 벗고 ‘중소기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맞았다.
그는 “중소기업의 분위기, 중소기업의 독특한 기업문화 같은 것을 익히는 중요한 시간들이었다”며 “만약 퇴임전에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퇴임후 중소기업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후를 위한 준비 = 류 본부장이 퇴임 이후를 준비한 시간은 3년. 그의 전략은 ‘△나의 존재를 알리자 △어학이나 기초지식을 다지자 △체력을 유지하자’ 였다.
인천본부장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확인시켰다. 조찬세미나 등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 발표자에게 질문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인천지역의 중소기업 CEO들은 류 본부장의 지위나 직책, 관심사항을 대충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와이지원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그를 알고 있었던 CEO의 제안 때문이었다.
꾸준히 중국문화와 중국어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아침형 인간’으로 살며 체력을 유지해 왔던 것도 무시 못 할 강점이었다.
퇴임 직전 중소기업 실습기간엔 보고 있을 후배들의 눈길이 그를 강하게 채찍질했다. 퇴임전 ‘컨설팅지원업무’에 처음으로 나선 그로서는 ‘성공한 퇴임준비’의 모델로 보여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그는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평소 하고 싶었던 해외영업의 일부분을 맡아 경험을 쌓았다.
◆눈높이를 낮추라 = 류 본부장은 퇴임 후 취직을 위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가 중소기업. 그는 “중소기업에 가면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것. 특히 그는 ‘임원이 적은 회사를 우선적으로 보라’고 주문했다. 퇴임전에 있었던 신안 다이아몬드는 임원이 많아 자신이 할 역할이 크지 않았다.
눈 높이를 낮추라는 것은 기본. 직책과 월급이 퇴임전보다 나쁘다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으라는 제안이다.
류 본부장은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아직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때라는 책임감도 일에 대한 욕심을 키웠다.
그는 “중소기업은 정년이 따로 없다”며 “체력이 있고 회사에서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든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중소기업 애찬가’를 부르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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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간관계 중요 ... 실력만으론 어려워
월급, 더 받으면 좋겠지만 내가 그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와이지원(전 양지원공구) 류광하 생산본부장은 “월급이 너무 줄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수출입은행 인천본부장을 마지막으로 만 58세로 정년퇴임한 그의 월급은 예년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사코 “너무 많은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타고난 겸손함도 한 몫 하긴 했지만 그는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년간의 변신 = 지난 2005년 3월 정년퇴임 이전에 류 본부장은 수출입은행 인천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1년동안 그는 강한 공구를 만드는 ‘신안다이아몬드’에 컨설팅 전문가로 파견됐다. 신안다이아몬드는 남동공단에 있었다. 수출입은행 인천본부 고객이었다.
수출입은행은 퇴임준비를 위해 1~2년의 준비기간을 줬다. 요즘은 임금피크제를 도입, 3년으로 늘었다. 이 기간동안 중소기업에 파견돼 재무 등과 관련된 ‘컨설팅’업무를 했다. 월급은 수출입은행에서 받았다. 은행은 인력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고 기업은 공짜로 컨설팅을 받게 되니 ‘일석이조’였다.
류 본부장은 그러나 ‘신안다이아몬드’에 가서 “별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에 컨설팅할만한 게 많지 않았다는 것.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컨설팅은 어불성설. 오히려 그는 그곳에서 ‘국책은행’의 때를 벗고 ‘중소기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맞았다.
그는 “중소기업의 분위기, 중소기업의 독특한 기업문화 같은 것을 익히는 중요한 시간들이었다”며 “만약 퇴임전에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퇴임후 중소기업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후를 위한 준비 = 류 본부장이 퇴임 이후를 준비한 시간은 3년. 그의 전략은 ‘△나의 존재를 알리자 △어학이나 기초지식을 다지자 △체력을 유지하자’ 였다.
인천본부장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많은 이들에게 확인시켰다. 조찬세미나 등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 발표자에게 질문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인천지역의 중소기업 CEO들은 류 본부장의 지위나 직책, 관심사항을 대충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와이지원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그를 알고 있었던 CEO의 제안 때문이었다.
꾸준히 중국문화와 중국어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아침형 인간’으로 살며 체력을 유지해 왔던 것도 무시 못 할 강점이었다.
퇴임 직전 중소기업 실습기간엔 보고 있을 후배들의 눈길이 그를 강하게 채찍질했다. 퇴임전 ‘컨설팅지원업무’에 처음으로 나선 그로서는 ‘성공한 퇴임준비’의 모델로 보여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그는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평소 하고 싶었던 해외영업의 일부분을 맡아 경험을 쌓았다.
◆눈높이를 낮추라 = 류 본부장은 퇴임 후 취직을 위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가 중소기업. 그는 “중소기업에 가면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것. 특히 그는 ‘임원이 적은 회사를 우선적으로 보라’고 주문했다. 퇴임전에 있었던 신안 다이아몬드는 임원이 많아 자신이 할 역할이 크지 않았다.
눈 높이를 낮추라는 것은 기본. 직책과 월급이 퇴임전보다 나쁘다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으라는 제안이다.
류 본부장은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아직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때라는 책임감도 일에 대한 욕심을 키웠다.
그는 “중소기업은 정년이 따로 없다”며 “체력이 있고 회사에서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든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중소기업 애찬가’를 부르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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