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보수 인사들의 집단성명

지역내일 2006-09-12
보수 인사들의 집단성명
유승삼 (언론인 KAIST 초빙교수)

지난 5일 한 보수 시민단체가 주도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반대 성명과 700명이 넘는다는 서명 동참 명단을 훑어보자니 두 가지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첫째는 그 700여명 가운데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신문기사나마 꼼꼼히 읽고 반대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명단의 면면을 보니 이 방면에는 문외한일 뿐더러 개인적으로 알기에도 평소 신문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지낼 정도로 현실 문제에 무감각한 답답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서명이 과연 얼마나 자발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랐다. 이런 서명에 한번이라도 참여를 권유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개 그 권유라는 게 인터넷의 스팸메일이나 불쑥 걸려오는 텔레마케팅전화 수준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권유를 받고 보면 어떻게 해서 대상이 됐는지가 우선 불쾌하지만 그보다도 이메일로 의견만 물어 놓고는 그대로 명단에 넣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가 더 걱정이다. 서둘러 ‘서명 안 한다’는 답장을 보내 놓았지만 내내 불안하다. 전화를 직접 걸어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한 뒤 꼼꼼히 그 뒷일까지 챙기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명단에 들어가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여러 인사들이 ‘서명한 적이 없다’는 항의를 하고 있다.

요즘 지식인의 다섯 가지 중병
이런 식의 도매금 서명운동은 대개 직업적인 몇몇 ‘꾼’들이 일을 주도한다. 그 비용을 어디서 구하고 섭외 명단과 연락처는 다 어떻게 구하는지 때 마다, 일 마다 빠지지 않고 나서서 각종 연줄을 이용해 다단계식 포섭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그런 일로 사회적으로 제법 명성까지 얻어서 합리적이고 절도 있는 중도 지식인이요 중재자로 자신을 포장하며 행세하고 있는 인사도 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종말’(원제 ‘프랑스 지식인 -연속과 종말’·강주헌 역·예문)에서 오늘날 지식인들은 다섯 가지 중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 자신들끼리만 대화하며 대중과 단절돼 있는 ‘집단자폐증’,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회를 선도한다고 자만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는 ‘만성적 예측불능증’, 이름이 잊혀 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춰 설익은 견해를 번드르르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임기응변증’이 그것이다. 주도자들은 물론 서명자 중에는 이 다섯 가지 중병 가운데 여러 개를 중복해서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과거 시스템에 젖어 살아온 군 출신 인사들의 집단 성명이라면 또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분명하게 작전권 이양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고 오히려 정부의 희망 시기보다도 이양을 앞당기겠다고 주장하는 형편인데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왜 나선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식인의 사회참여와 행동은 소수와 약자의 편에서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울 때 정당화 된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사건과 관련해 ‘나는 고발한다’는 논설을 썼을 당시, 여론의 96%가 드레퓌스에 적대적이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진실과 정의를 위해서는 침묵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그 압도적인 다수 의견에 반대해 나섰기에 에밀 졸라의 행동은 지식인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성명이 자주 있어 왔지만 모두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었거나 힘없는 소수와 약자를 대변한 것이었다.

지식인은 갈등의 조정자여야
그러나 작통권에 관한 이번 성명은 ‘강자의 편에 선 목소리’이다. 작통권 환수는 현재 국민의 20% 이하의 지지를 받고 있고 임기가 겨우 1년 반 남은 레임 덕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집단행동에 나서야 할 만큼 반대의 언로가 막혀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막혀 있기는커녕 여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보수 언론들이 연일 보수 인사들을 동원해 반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어 오히려 그 편파성과 불균형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문외한들까지 나서야 할 계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결국 700여명의 보수인사들은 보수세가 기세를 올리는 소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강자의 편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식인의 용기일 수는 없다. 그건 위세의 과시요 패거리 짓기일 뿐이다. 갈등의 조정자요 타협의 매개자여야 할 지식인들이 스스로 감정적인 군중이 돼 사회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현실이 못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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