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마다 전담팀 구성 … 대정부 로비스트 활동
일부 국책사업 과열경쟁 중 계획 바뀌어 ‘헛물만 켜’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목을 매고 있다. 막강한 재정력을 가진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권한과 기능은 상당부분 지방으로 위임됐지만 재정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지자체들이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지자체간 로비전이 과열·혼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일부 국책사업은 당초 계획이 흔들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국책사업 결정방식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정부 공식입장 없어도 지자체는 유치전 올인 =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시범사업을 두고 일부 지자체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건교부가 이 사업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도 지자체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유치전에 ‘올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대구와 대전을 비롯해 인천, 마산·창원, 전북 익산 등의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전담팀을 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을 오가며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건설교통부는 애매모호한 태도만 보이고 있다. 건교부 광역철도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지역 선정은 물론, 사업규모나 재원조달 방법 등 어느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사업을 시행할 건교부는 빠져있고, 지자체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기형적인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모바일 특구’ 사업은 내용을 잘 못 이해한 지자체들이 유치전을 펼치며 호들갑만 떤 꼴이 됐다.
정통부는 지난 2월 사업비 400억원이상을 들여 모든 모바일 서비스를 기술과 표준의 장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기 위해 모바일 특구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추진일정도 8월말까지 지역 선정기준을 결정하고 12월말부터 사업협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많은 지자체들이 공식·비공식으로 사업계획안을 입수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정통부가 지난달 돌연 사업을 축소해 ‘모바일 필드 테스트베드’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당초 460억원(전액 국비지원)이 예상됐던 사업비도 100억원(40억원만 국비, 60억원은 지자체와 기업 부담)으로 축소됐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기반시설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한 사업이다. 결국 경북 구미와 서울 가산, 경기 수원 정도가 후보지로 남았다.
전담팀까지 꾸려가며 유치를 추진했던 대전과 전북 등 7~8개 이상의 지자체의 유치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정통부 지식정보산업팀 관계자는 “여러 차례 사업설명회를 가졌음에도 지자체들이 이를 잘 못 이해하고 유치를 추진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부는 2007년 국립종합과학관을 영호남에 1개씩 건립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지난 3월 영남에서는 대구, 호남에서는 광주를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후보지로 선정했다. 기획예산처의 용역을 받은 KDI는 현지답사 등을 거쳐 11월 이전에 대상 지역을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부산시가 100만명 서명운동 등 적극적인 유치 공세를 펴자 최근 과기부가 기획예산처에 추가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과기부는 부산에 대해서는 대구·광주와 별개의 과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어서 사업에 혼선을 빚고 있다.
대구시 모 간부는 “당초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에서 탈락한 부산시가 사업진행 중간에 끼어들어 국립과학관 건립 일정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부산을 제외한 대구와 광주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책사업 선정 방식 바꿔야 =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처럼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도 유치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는 열악한 지방재정상황 탓이다.
현재 지자체들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4%정도로 수도권 시·도와 울산시를 제외하면 20~30
%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자체 재원으로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구시 모 간부는 “세원 구조가 기형적이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에 목을 매고 대형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로비를 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권한과 기능은 위임됐지만 재정권을 중앙정부가 그대로 가지고 있어 중앙정부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 일부의 지방세 전환 등 재정배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지방의 중앙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간 과도한 국책사업 유치 경쟁은 불필요한 인적·재정적 낭비만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전시 모 간부공무원은 “지역발전을 위해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를 위한 인력과 시간, 재정적 낭비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이 간부는 또 “유치전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주면 지역 언론이나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국책사업의 선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에 사업 대상 지역을 선정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있는데도 지자체에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시켜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국책사업 선정을 중앙정부가 책임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모 국장은 “정치적인 논리나 물리적인 힘에 따라 국책사업의 진행방식이 바뀌는 사례가 많다”면서 “중앙정부가균형발전차원에서 지역의 특색을 사전에 파악해 후보지를 정하고 사업신청을 받아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사업입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일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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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국책사업 과열경쟁 중 계획 바뀌어 ‘헛물만 켜’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목을 매고 있다. 막강한 재정력을 가진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권한과 기능은 상당부분 지방으로 위임됐지만 재정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지자체들이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지자체간 로비전이 과열·혼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일부 국책사업은 당초 계획이 흔들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국책사업 결정방식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정부 공식입장 없어도 지자체는 유치전 올인 =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시범사업을 두고 일부 지자체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건교부가 이 사업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도 지자체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유치전에 ‘올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대구와 대전을 비롯해 인천, 마산·창원, 전북 익산 등의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전담팀을 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을 오가며 로비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건설교통부는 애매모호한 태도만 보이고 있다. 건교부 광역철도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지역 선정은 물론, 사업규모나 재원조달 방법 등 어느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사업을 시행할 건교부는 빠져있고, 지자체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기형적인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모바일 특구’ 사업은 내용을 잘 못 이해한 지자체들이 유치전을 펼치며 호들갑만 떤 꼴이 됐다.
정통부는 지난 2월 사업비 400억원이상을 들여 모든 모바일 서비스를 기술과 표준의 장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기 위해 모바일 특구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추진일정도 8월말까지 지역 선정기준을 결정하고 12월말부터 사업협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많은 지자체들이 공식·비공식으로 사업계획안을 입수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정통부가 지난달 돌연 사업을 축소해 ‘모바일 필드 테스트베드’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당초 460억원(전액 국비지원)이 예상됐던 사업비도 100억원(40억원만 국비, 60억원은 지자체와 기업 부담)으로 축소됐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기반시설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한 사업이다. 결국 경북 구미와 서울 가산, 경기 수원 정도가 후보지로 남았다.
전담팀까지 꾸려가며 유치를 추진했던 대전과 전북 등 7~8개 이상의 지자체의 유치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정통부 지식정보산업팀 관계자는 “여러 차례 사업설명회를 가졌음에도 지자체들이 이를 잘 못 이해하고 유치를 추진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부는 2007년 국립종합과학관을 영호남에 1개씩 건립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지난 3월 영남에서는 대구, 호남에서는 광주를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후보지로 선정했다. 기획예산처의 용역을 받은 KDI는 현지답사 등을 거쳐 11월 이전에 대상 지역을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부산시가 100만명 서명운동 등 적극적인 유치 공세를 펴자 최근 과기부가 기획예산처에 추가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과기부는 부산에 대해서는 대구·광주와 별개의 과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어서 사업에 혼선을 빚고 있다.
대구시 모 간부는 “당초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에서 탈락한 부산시가 사업진행 중간에 끼어들어 국립과학관 건립 일정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부산을 제외한 대구와 광주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책사업 선정 방식 바꿔야 =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처럼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도 유치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는 열악한 지방재정상황 탓이다.
현재 지자체들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4%정도로 수도권 시·도와 울산시를 제외하면 20~30
%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자체 재원으로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구시 모 간부는 “세원 구조가 기형적이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에 목을 매고 대형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로비를 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자치가 시행되면서 권한과 기능은 위임됐지만 재정권을 중앙정부가 그대로 가지고 있어 중앙정부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 일부의 지방세 전환 등 재정배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지방의 중앙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간 과도한 국책사업 유치 경쟁은 불필요한 인적·재정적 낭비만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전시 모 간부공무원은 “지역발전을 위해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를 위한 인력과 시간, 재정적 낭비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이 간부는 또 “유치전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주면 지역 언론이나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국책사업의 선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에 사업 대상 지역을 선정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있는데도 지자체에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시켜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국책사업 선정을 중앙정부가 책임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모 국장은 “정치적인 논리나 물리적인 힘에 따라 국책사업의 진행방식이 바뀌는 사례가 많다”면서 “중앙정부가균형발전차원에서 지역의 특색을 사전에 파악해 후보지를 정하고 사업신청을 받아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사업입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일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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