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 되기, 유치원에서 배웠다

최인섭 씨의 좋은 아빠 교육 체험기

지역내일 2006-09-08
일방적 의사전달보다 대화를 … 아이 입장서 생각하는 자세 필요

요즘 아버지들, 참 많이 변했다. 자녀의 기억 속에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 그래서 몇몇 유치원이 나섰다. 유치원에서 아빠들을 위한 좋은 아빠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료는 공짜. 여기 일곱 살 유치원생 재우 아빠도 유치원에서 하는 ‘멋진 아빠 되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가 좋은 아빠 되기 생생 체험기.

“아빠는 ‘화맨’이에요. 화를 잘 내거든요. 그리고 아빠는 TV만 봐요.”
최인섭 싸(43·용산구 이촌1동)씨는 아들 재우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배신감마저 느꼈다. 주말이면 늘어져 모자란 잠을 자거나 널브러져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좋은 아빠이고 싶어 나름대로 노력했다. 피곤을 무릎 쓰고 공놀이를 같이 하고 책도 읽어 줬다. 그러면서 내심 ‘나는 좋은 아버지일 거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아이가 그려온 그림 속의 아빠는 좋기는커녕 ‘괜찮은’ 축에도 못 들었다. 화내고 TV만 본다니? 완전 ‘꽝’ 아빠 아닌가? 자신의 노력과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에게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뭐가 부족했을까.’
마침 유치원에서 ‘멋진 아버지 자격증 교실’을 연다는 안내문이 왔다. 토요일 오후에 3시간씩 4주 연속 참여해야 하는 긴 프로그램이었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가야한다. 왜 나도 멋진 아빠가 되고 싶으니까!

나를 알고 자녀를 알자
멋진 아버지 교실 첫 주차, 토요일 오후 3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아버지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머쓱, 쭈뼛. 어색하게 둘러앉은 아빠들에게 강사가 질문을 한다. 이날의 강사는 MBTI 전문가이기도 한 공훈 목사(동막교회).
“본인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 목사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나를 알고 자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의견 충돌이 잦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처음엔 사소한 문제였지만 계속되면 큰 불화가 됩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단절되죠. 이들 대부분은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자녀는 나의 분신이라 할지라도 나와 다른 유전자가 만나 생겨난 사람. 그리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니 당연히 다를 수 있다.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생각이나 행동 양식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사람과는 사소한 견해 차이로도 충돌하기 쉽다. 따라서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또 자녀는 어떤 유형인지 파악해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 목사의 강의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성격유형 검사를 해서 이해의 고리를 찾고 불화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가족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가족 간에도 성격 유형 검사가 필요합니다.”
공 목사의 설명을 들으며 큰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직하고 착한 녀석인데도 뭔가 마뜩찮았던 것이 나와 성격이 달라서인가. 그렇다면 그 녀석도 나에 대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겠구나’ 싶었다. 아내도 마찬가지겠지.

아이와의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해
첫 주차 강의가 신선한 충격이었던 터라 둘째 주가 기대됐다. 원장 선생님이 들어와서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런데 대뜸 아빠들에게 물었다.
“내 자녀의 담임선생님 이름 아시는 아버님?” (물론 나도 모른다.)
“그럼 무슨 반인지는 아세요. 재범이 아버님.” (그래도 아빠들의 삼분의 일 정도는 자신 있는 얼굴이다.)
“가장 최근에 아이와 나눈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었나요.” (그런 사소한 걸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얼굴들.)
“자녀가 어떤 질문을 했고 무어라 대답해주셨나요. 말씀해주실 분.”
아버지들의 고개가 일제히 원장님의 시선을 피해 돌려졌다. 재우는 뭐라고 했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아이는 떠들고 난 그냥 일방적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기억날 리 없다.
“부모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무엇보다 아이와 좋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한가람유치원 김은실 원장 PET 대화법 강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강의를 그가 맡았나보다. 원장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아기 때부터 열린 대화법(PET대화법)으로 대화하면 자녀가 커서 정말 대화가 절실할 때, 부모 자녀 간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너 왜이러니’ 보다 ‘네가 이래서 아빠는 기분이 나쁘단다’ 하는 식으로 ‘너’가 아닌 ‘나’의 관점에서 대화하는 것이 열린 대화법이란다. 이렇게 대화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는 의미로 전달돼 아이를 힐난하는 식의 대화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칭찬에 그치지 않고 왜 잘했다고 칭찬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도 필요하단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말할 때 신문을 보며 건성으로 듣는 적이 많았다. 눈을 맞추며 대화하기보다는 그저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이가 커서 ‘아빠랑은 대화가 안 돼요’라는 말로 내 뒤통수를 치기 전에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린 대화법은 부부 간에도 싸움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니 연습이 필요하겠다.

TV 끄고 아이와 놀자
세 번째 주, 효과적으로 TV 보는 방법을 배웠다. TV의 위해성을 알면서도 딱 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집 현실. 대부분의 가정도 그럴 것이다. 가족 모두의 하루 TV 시청 시간과 즐겨보는 프로그램, TV 보는 태도, 같이 보는 사람들, 보는 이유에 대해서 일주일 간 기록했다. 기록하고 보니 TV를 보면서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긴지 확연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TV대신 무엇을 할 것인가. 효과적인 놀이방법을 배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은 아이도 함께 했다. 재우는 며칠 전부터 아빠랑 유치원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유치원에 가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몇 가지를 해 볼 수 있는 공간과 재료가 마련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책 골라 읽고 주제 잡아 대화하기, 폐품으로 악기 만들기, 아빠랑 찍은 사진 액자 만들기.
그런데 겉도는 가족이 꽤나 많았다. 아빠는 쑥스러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아이는 아빠가 안하던 짓 하니 이상한 건지, 아예 지들끼리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곁에 붙어서 이거하자 저거하자 하는 재우가 너무 고마웠다. 아이가 딴 짓만 해서 영 힘들어하던 한 아빠, 언짢은 얼굴을 하다 원장 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다.
“오늘 이 시간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마시고 시작점으로 잡으세요. 아이들은 금방 진심을 알아줄 거예요.”
몇 주에 걸친 긴 여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아이가 아버지에게 ‘멋진 아버지 자격증’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한 아버지가 묻는다.
“아빠가 이 자격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원장 선생님이 주래서 주는 것 말고 진짜로.”
“응. 아빠는 멋진 아빠 맞아. 오늘은 특히 더 그래. 앞으로도 나랑 잘 놀아줘.”
나도 물었다.
“재우야 아빠 멋져.”
“그러~엄. 너무 멋져. 최고야.”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녀석. 볼을 꽉 깨물어주고 싶다. 그래, 아빠가 부족했다면 다 잊어주라. 노력할게. 우리 서로 사랑하면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 나중에 커서 아빠랑 소주도 한 잔 하고.

유병아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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